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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 겉 표지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 겉 표지
ⓒ 왕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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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만화로 그렸다는 책.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부터 한홍구의 <대한민국사>까지 그래도 나름 역사책 꽤 읽었다고 자부하는 터라 만화로 그린 한국사에서 무슨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지요.

하지만 만화책을 펼쳐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는 인기 팟캐스트 '이이제이'를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가 만화로 재탄생시킨 책입니다.

'이이제이'는 한때 국내 팟캐스트의 대명사로 인기를 누렸던 '나는 꼼수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대표 팟캐스트입니다. '나는 꼼수다' 이후 김어준이 진행하는 '파파이스' 등과 함께 국내 팟캐스트 상위 순위를 다투는 인기 프로그램입니다.

이이제이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 근현대사를 인물이나 사건별로 정리하여 재미있는 수다와 욕설로 풀어 나가면서 인기를 얻는 방송입니다. 애칭 이 작가, 이 박사 그리고 세작. 세 명의 청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이이제이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담아내는 데 성공한 방송입니다.

많은 청취자들이 한국현대사가 납득할 수 없는 일, 기가 막히는 사건들로 점철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안타까워 하면서 새롭게 역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를 원작으로 새로 만들어진 만화 책이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입니다. 굽시니스트는 디시인사이드 카툰연재갤러리에서 유명세를 누렸으며, 2009년부터 시사 주간지 시사인에 '본격 시사인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인기 작가입니다.

팟캐스트 이이제이와 만화작가 시니스트의 결합

이 책은 2013년 5월부터 팟캐스트 포털사이트 '팟빵'에서 현대사 팟캐스트 '이이제이'를 만화로 연재하였던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는 팟빵 연재 당시 만화작가 굽시니스트 특유의 풍자와 해학에 날카로운 식견까지 더해져 깊이 있는 만화로 재탄생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방송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만화로 잘 정리하여 표현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설명과 정보가 추가되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팟캐스트 이이제이는 106회까지 업로드 되었습니다만,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는 깡패특집, 이승만 특집, 대선특집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서는 깡패를 주제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실패하는 일이 흔치 않습니다. <친구> 같은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야인시대>, <무풍지대> 원조 깡패들의 시대를 담은 드라마들도 인기리에 방송되었습니다.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팀이 초창기 에피소드로 '깡패특집'을 선택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주제로 방송을 시작하여 팟캐스트 청취자들을 확보한다는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깡패 문화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더군요. 에도시대 도박조직에 기원을 둔 야쿠자, 야쿠자와 사무라이 엘리트들을 결합시킨 정치깡패 조직 겐요사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국내에도 유입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영화 <장군의 아들>에 등장하는 하야시와 김두한이 깡패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깡패와 정치인이 동업자였던 시대

대깡패시대는 하야시와 김두한, 이정재와 시라소니, 이정재, 곽영주, 이기붕이 연결된 정치깡패 전성시대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임화수, 유지광 등도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아이러니한 역사의 한 장면 중 하나는 이정재가 키운 경찰간부 곽영주가 경무대 경찰서장을 지낼 때 박정희의 진급 심사를 하였다는 일화입니다.

"이 무슨 빨갱이 남로당 섀뀌가 아직도 군복을 입고 있어?!! 거물 빨갱이 동생이잖아!!"

곽영주가 박정희의 진급을 막지는 못했지만 남로당 연루와 전처 문제를 거론하면서 진급에 심하게 반대를 하였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박정희가 5.16쿠데타에 성공하고 난 뒤 곽영주는 여러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아 교수형에 처해지지요. 아무튼 이승만 정권시절은 이기붕 등 정치인의 사주와 비호를 받은 정치깡패들이 국정을 농단하던 '깡패 전성 시대'였다고 합니다.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부분은 제2장 이승만 특집입니다. 팟캐스트 이이제이가 이승만 특집으로 청취자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로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이승만의 생애를 자세히 알고 있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승만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 반민특위를 해산하고 친일파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 3.15 부정 선거로 대통령에서 쫓겨나 해외로 망명하여 타국에서 죽었다는 것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자, 그럼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를 통해 이승만의 실체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이승만은 공부는 잘했던 모양입니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할 때 사서삼경을 두루 독파하여 수재로 명성을 얻었고, 열 세 살에 과거시험에 응시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과거시험 폐지 이후 친구의 권유로 배재학당에 입학하는데, 이 때도 6개월 만에 영어 조교사가 되어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는군요. 이승만의 박사학위를 두고 배재학당 졸업 후 독립협회 간부로 투신하고 만민공동회를 통해 청년 연사로 명성을 얻었다고 합니다.

고종 폐위 음모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는데 주시경이 조달해준 권총을 들고 탈옥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후에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가 5년 7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답니다.

양지만 좇는 기회주의자 이승만

"이승만의 수감생활은 비교적 늘늘한 것으로 동료 수감자들을 모아 강의를 하기도 하고, 옥내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하고, 영한사전을 손보기도 하고, 아들이 놀러오기도 하고, 특히 동료 수감자 40여 명을 기독교로 전도하기도 하는 등 신앙생활에 큰 도약이 있었습니다."(본문 중에서)

국권이 무너지는 시기에 감옥을 나온 그는 출옥과 동시에 상동청년학원 교장으로 초빙되지만 한 달을 못채워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미국 밀사 임무를 띠고 가지만 미국에서의 행적은 자신의 사적인 유학생활을 위해 노력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이 책에는 음지는 피하고 양지만 좇는 이승만의 인생 행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컨대 독립운동가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일본의 앞잡이 스티븐스를 미국 본토에서 암살하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살인범 통역을 할 수 없다'며 피해버렸다고 합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이 저격 사건을 비난하기까지 하였으며, 다음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마저도 '국제적으로 테러리즘 민족'으로 낙인찍힌다며 비난하였다고 합니다.

훗날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승만이 활동무대를 하와이로 옮겼을 때도 안창호와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독립운동가 박용만의 일본 군함 이즈모도호 폭침 계획을 증언하여 그를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3.1 운동 이후에 상하이 통합 임시정부 지도자로 추대되었지만, 이때도 이승만에 대한 반대가 극심하였다고 합니다. 신채호, 안창호, 박용만, 여운형, 이동휘 등 주요 독립운동가들이 이승만을 반대하는 가운데 조소앙은 이승만을 지지, 미국에서는 서재필이 이승만을 서포트했었다고 합니다. 이 무렵 신채호의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신랄합니다.

"미국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이승만은 이완용이나 송병준보다 더 큰 역적이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아직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으려 하지 않소."(본문 중에서)

이승만의 외교활동이라는 것이 고작 이런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물러 난 뒤에는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장을 자임하면서 미주의 돈줄을 움켜쥐고 임시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였으며, 백범이 임시정부를 안정시킨 후에는 서로 다른 노선을 견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호화스러운 미국생활 어떻게 가능했나?

일제하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미국생활을 하던 이승만이나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궁핍한 생활을 하였을 것이라는 게 보통 사람들의 짐작일 겁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승용차를 대여섯 번 갈아 치울 정도의 경제력"을 과시했는데, 임시정부의 채권을 판매한 돈으로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이 책에는 군데군데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양념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최능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독립운동가 최능진은 박정희 가문의 충성스러운 집사 정수장학회 이사장 최필립의 아버지입니다. 최능진은 5.10 단독 선거에서 이승만과 경쟁하다가 후보등록에 실패하고 반란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6.25 전쟁 때는 정전과 평화통일을 주장하였다가 나중에 총살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최능진은 그의 아들 최필립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남의 집안 일이기도 하지만 참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이야기 하나 더 알려드리면, 이승만이 제헌의회 개회식의 임시의장을 맡았을 때 "개회에 앞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기독교 국가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독자들도 잘 아시다시피 권력을 잡은 이승만은 반공을 국시로 내걸고 친일파와 손을 잡으며 '반민특위'를 와해시킴으로써 친일청산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군정의 친일파 행정, 치안 조직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지요. 결국 건국 이후 이 나라를 친일파 기회주의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이승만의 국정농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집권 이후에 거듭되는 실패는 결국 4.19를 거쳐서 5.16 군사 쿠데타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은 '이승만 특집'을 만화로 담아내는 데 할애하고 있는데, 이승만의 외교 실패, 장기집권 음모, 한국전쟁 실패 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수장학회 최필립 아버지는 이승만에 맞섰던 독립운동가

특별히 눈에 띄는 관점 중에 하나는 한국전쟁을 '편가르기 전쟁'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였다는 점입니다. 한국 전쟁의 성격을 여러 측면에서 규정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남쪽과 북쪽 각각에 대한 소속감과 남북의 분리를 명확히 하는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3년밖에 안 된 정부 밑에서 사람들이 과연 어떤 국민이나 인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애국심을 내재화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라는 그냥 한반도 조선을 의미했지, 아직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의미하지 않았음이라." (본문 중에서)

예컨대 이런 사람들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쪽과 북쪽, 네 편과 내 편으로 확실하게 편가르기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통해 피아를 식별하고, 이후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전쟁이 되었다는 것이며, 분단을 토대로 각각의 국민과 인민이 완성되었다는 겁니다.

한국전쟁 동안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기막히는 일은 대전까지 피난을 가서도 '서울시민들에게 생업에 충실하라'고 거짓말을 하였다는 사실이지요. 뿐만 아니라 이승만이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다리를 폭파하는 바람에 4000명의 피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승만이 세월호 선장보다 수천 배는 더 한심한 짓을 하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승만을 광복 이후 60년을 유지해 온 반공정권, 친미정권, 권위주의 정권, 기독교 확장의 토대를 닦은 인물로 기록합니다. 오늘날 뉴라이트와 같은 자들이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것은 이승만이 닦아놓은 토대를 지키고 유지하려는 연장선에 있다고 평가합니다.

한편 이 만화책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과정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간략하지만 핵심을 짚어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DJP 연합을 통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를 여러 자료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이제이 팟캐스트와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는 방송과 만화의 약점을 서로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시사만화가 굽시니스트의 재기발랄함이 더해져서 젊은 독자들에게 한국현대사의 명과 암을 흥미있게 전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이제이의 만화 한국현대사 1 - 깡패의 탄생, 이승만부터 김대중까지 대선 전쟁

굽시니스트 글.그림, 이이제이 원작, 왕의서재(2014)


태그:#이이제이, #만화 한국현대사, #이승만, #역사, #깡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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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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