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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그러나 자기 일은 훌륭하게….
▲ 홍대 슬로비 천천히 그러나 자기 일은 훌륭하게….
ⓒ 슬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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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영국의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15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레스토랑 '피프틴(Fifteen)'을 설립했다. 이 레스토랑은 매출수익을 사회에 되돌리는 사회적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회적 기업이다. 피프틴 레스토랑의 채용공고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고 한다.

"불우 청소년의 의미는 광범위합니다. 일단 직업이 없어야 하고, 집이 없거나 가난한 환경  이라면 더욱 환영합니다."

한국에도 피프틴처럼 청소년 자립을 목적으로 요식업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 있다.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 위치한 비영리민간단체 '오가니제이션 요리'(아래 오요리)가 그곳이다. '슬로비(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 : 천천히 그러나 자기 일은 훌륭하게)'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외식사업과 청소년요리대안학교 '영셰프(Young Chef)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요리는 법인체 주식회사 '슬로비생활(아래 슬로비)'을 설립하며 분리했다. 슬로비는 카페 슬로비를 운영하며 건강한 도시락을 판매한다. 한영미 슬로비 대표를 지난 5일 홍대인근의 카페 슬로비에서 만나 청소년목적사업을 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문화로 놀면서 먹고 사는 것... '요리'에 대한 실험

한영미 슬로비생활 대표
 한영미 슬로비생활 대표
ⓒ 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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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대학에서 미술(조소)을 전공했다. 미술을 전시 기획하는 일을 하다가 하자센터가 출범하면서 기획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험적인 일을 하는 하자센터에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는 이미 지나 온 청소년기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다. 청소년 교육에 대한 전문성도 없었고, 청소년들과 무엇을 한다는 것에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하자센터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주저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자센터가 나의 인생을 바꿔주었다."

하자센터는 청소년에게 지속가능한 모델이 있어야겠다는 것에 주목했다. '다시 마을이다' 라는 주제로 마을에는 여러 가지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듯이 사회와 마을을 돌보는 회사가 필요했다. 한 대표는 청소년들과 호흡하기에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하자센터를 잠시 떠났다.

"그 당시는 청소년보다 내가 더 중요했다. 청소년의 삶에 들어가거나 같이 고민하는 것이 잘 안됐다. 그만둘 때도 교육적인 마인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을 한 지) 3년이 넘으면서 관성이 생기더니 기획은 하는데, 설렘이 없고 생명력도 없었다.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뭘까', '필요한 것이 뭘까', '외국에 잠깐 나가서 인생을 바꿔볼 수 있다면'하고 생각하다가 해보고 싶었던 패션디자인에 도전했다. 어학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패션학교에 다녔는데 언어도 어렵고 창작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때의 어려움이 좋은 경험이 됐다."

패션학교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후, 2005년 하자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문화로 놀면서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한 실험의 성공적인 모델을 보여준 '노리단'을 지원하는 일을 하다가 기획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다른 영역의 사회적 창업을 고민하던 것이 요리였다. 요리(외식업)에 대해 잘 몰랐지만, 기획자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노력하고 공부하면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두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하자센터라는 사회적 안전망이 있어서 위험이 적었다. 믿어주고 신뢰해주며, 교육적인 목표가 있는 인프라가 있어서 가능했다. 없었다면 못했을 것이다. 요리를 문화로 접해보는 과정을 사회적창업으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모아졌다. 2007년에 일과 요리 청소년 창업팀을 모집했고, 마침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던 시기였다. 저소득층이나 돌봄기관에 있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요리수업과 케이터링(출장음식)도 하고 현장에서 토론하고 실험을 하는 오요리가 시작되었다."

- 저소득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요리를 통해 불우청소년들을 자립시키는 영국의 레스토랑 피프틴을 사회적기업 롤모델로 삼았다. 일반 청소년들은 부모의 도움으로 얼마든지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자원이 있다. 사회적창업의 미션을 봤을 때, 자원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자원을 만날 수 있게 해주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봤다.

청소년 창업팀이 만들어지고, 변화와 진화가 거듭되면서, 다른 선택을 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2008년 오요리가 고용노동부인증 사회적기업이 되면서 이주여성, 경력단절, 여성가장의 일자리가 생겨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청소년과 여성이 주축이 된 사회적기업이 됐다."

요리학교 '영셰프' 설립으로 빛을 발하는 듯 했지만...

요리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관계를 배우려면 기술만으로는 안된다.
▲ 영셰프 요리학교 요리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관계를 배우려면 기술만으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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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력의 여성과 청소년에게 자립과 창업을 목적으로 요리를 가르쳐줄 셰프는 많았다. 하지만 요리 외에 교육적인 내용을 가르쳐줄 사람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모인 사람들끼리 배우고 성장하며 자립하는 기반을 만들기로 했다. 철학적인 요리의 원칙들을 만든 것이다.

- 청소년 요리학교 영셰프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청소년이 전문적인 기술을 배워, 지속가능한 직업으로서 요리를 할 수 있는 사업공모를 신청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년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업으로 선정이 됐다. 설립동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고, 매우 기뻤다. 청소년 돌봄기관의 도움으로 12명이 왔는데 취약계층의 청소년은 일반 가정처럼 기댈 수 있는 완충기반이 없다. 아이들의 관심은 늘 바뀌고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다. 중간에 절반 정도가 그만뒀다."

투입한 비용에 비해 성과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1년 만에 지원은 중단됐다. 청소년 요리학교 영셰프의 운영에 대한 재정적인 어려움이 겹쳤다. 그 이듬해 전체 경영에서도 위기가 찾아왔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가치관·방법론을 달리하면서 분리됐다. 영셰프 시작할 때부터 정체성을 분명히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식과 교육이 일맥상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소년들을 교육해서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우리의 이상이나 현실적인 것만 가르치면 알아서 먹고는 살겠지만, 문제는 '어떻게'가 중요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슬로비'의 시작

음식재료는 누구로부터 오고, 어떤 음식이어야 하고, 먹는 사람은 누구인가?
▲ 제철, 그때 그때 밥상 음식재료는 누구로부터 오고, 어떤 음식이어야 하고, 먹는 사람은 누구인가?
ⓒ 슬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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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같이 활동했던 사람 일부가 떠나면서 한 대표는 법인체 '슬로비'를 창업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음식재료는 누구로부터 오고, 어떤 음식이어야 하는가. 먹는 사람은 누구이며, 밥상으로 어떤 영향을 받는가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먹거리의 생태계를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을 영셰프들에게 교육하고, 보여주고, 해주고 싶었다.

"일본에 가서 커뮤니티 중심의 카페, 유기농 밥집을 둘러보며 배우고 왔다.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과 '도시에서 천천히 산다는 것'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우리가 세상에 어떤 것을 이야기해보고 싶은가를 모아보는 자리를 통해서 슬로비를 시작했다."

- 영셰프는 1년 만에, 사회적 기업은 3년 만에 지원이 끝났을 때 재정의 어려움은 없었나?
"사회적 기업으로 주목받을 때 성과가 좋아서 대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받아둔 대출금을 종자돈으로 슬로비를 창업했다. 지금도 그 빚을 갚고 있다."

- 올해 5년째 영셰프를 운영하고 있는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지금 오는 청소년들의 처지가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어려운 상황의 청소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안적인 삶을 살아보겠다는 청소년이 많다. 처음에 우리가 생각했던 대상들이 많이 바뀌어서 안타깝다. 취약계층의 청소년에게는 사회적인 여러 장치들이 필요하고,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들을 다 보완하려면 기회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한 아이에게는 한 사람의 교사가 아닌 여러 어른들이 있는 마을이 필요하다"

천천히 그러나 훌륭하게

요리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요리는 도구일 뿐이다.
▲ 영셰프 요리학교 요리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요리는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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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경영에 대한 교육은 왜 하는가.
"학교체제는 2년제다. 1년은 음식을 배우는 것을 기본으로 요리를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최대의 핵심과정이다. 그 다음,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요리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이 관계를 위해서는 기술만 배우면 안 된다. 기술만 배우면 무기가 된다. 무기는 경쟁을 위해서만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치명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요리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요리는 도구일 뿐이다.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경영·경제 논리가 아니다. 더불어서 수익도 창출하지만, 밥상과 사람을 돌볼 수 있는 기획을 해야 한다. 환경수업과 농사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몸을 쓰는 사람은 자기 몸을 잘 돌보고 이해하고 몸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서 명상도 하고, 연극과 밴드수업으로 흥을 돋우기도 한다."

- 영셰프 수료 후에 슬로비에서 경력을 쌓는 의미는 무엇인가?
"(함께) 요리를 하는 것은 1년까지 합의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다 열어놓고 있다. 요리를 하다보면 계속 요리를 할 것인지 고민도 하고, (다양한) 요리를 해보고 싶어진다. 그러면 더 배워서 채워야 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곳을 가봐야 알게 되는 것도 있고, 우리가 지속하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렇게 해보면 수용능력이 생겨서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다."

- 홍대·성북에 이어 멀리 제주에도 슬로비를 만든 이유는?
"전혀 다른 환경의 생활을 경험해보고, 그 재능을 지역사회에 나누려고 열었다. 학기 중에는 제주 슬로비에 시즌학교를 열고 있다. 제주 애월읍에서 지역아이들과 음식도 만들고, 지역요리사에게 배우기도 한다. 2년 차부터는 슬로비 또는 네트워크로 연계된 매장으로 인턴 활동을 한다. 6개월을 기본으로 하루 6시간 일한다. 밀도를 높이고 방법을 다양하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청소년들의 기호와 특성, 진로와 자질을 보면서 (이후에) 매장으로 갈 것인지, 다른 길을 찾아줄 것인지를 의논하고 고민한다."

영셰프 스쿨에 지원한 청소년은 해마다 절반 정도가 중간에 그만뒀다. 그런데 설립 5년 차인 올해는 12명 모두 한명의 탈락자도 없다. 서로 다른 성향의 청소년들이 비슷하게 섞여서 균형이 잡히며 좋은 시너지가 생겼다.

홍대·성북·제주의 슬로비 밥집은 각기 다른 지역 특색에 맞춘 밥상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아직까지 재정적으로 완전하게 자립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직원들과 이벤트도 만들고, 대화와 소통을 하면서 서로 기운을 북돋아주고 있다는 슬로비에는 요리·사람·문화가 천천히,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슬로비 생활 http://www.slobbielife.net
오가니제이션 요리 http://www.orgyori.com



태그:#슬로비, #영쉐프, #하자센터, #요리, #오가니제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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