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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한 마을에서 자란 다섯 명의 친구가 있다. 어른이 되자 그 친구들은 의기투합하여 동업으로 장사를 시작한다. 이제 그들의 앞날을 점쳐보자.

1번, 10년 넘게 잘 유지될 것이다.
2번, 잘 되도 깨지고 안 되도 깨질 것이다.

여러분의 선택은? 아마, 2번을 꼽는 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동업, 다시 말해 협동조합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념이다. 하물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만나서 사업한다면?

열 길 물속보다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 아니겠느냐마는, 협동조합은 그 운영체계상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요하다. 기존의 주식회사와는 너무 다른, 출자금과 상관없는 1인 1표의 의결권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은 모두가 평등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반면에, 그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크기의 목소리로 의견을 내므로 조율이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협동조합과 관련된 책들을 읽다 보면 안건 하나를 통과시키기 위해 새벽까지 회의해야 한다는 기존 조합원들의 불평 아닌 불평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렇기에 초기의 준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빛만으로도 통할 수 있는 핵심 멤버들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협동조합 초기 준비 단계, 핵심 멤버 키우기

매번 모임마다 조별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부여한다. 예를 들면, 우리 지역에 가장 필요한 협동조합의 형태를 선택해서 기획해오기 등
▲ 협동조합 연구회 조별 토론 장면 매번 모임마다 조별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부여한다. 예를 들면, 우리 지역에 가장 필요한 협동조합의 형태를 선택해서 기획해오기 등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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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의 이름을 정하는 등의 일로 밤 새워 토론할 필요가 없는 사이. 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방향 만큼은 이해하고 함께 걸어갈 사이. 이러면 좋겠지만, 첫 만남에서 나는 그들과 눈빛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1편 기사 : 협동조합 첫 모임 신청자 스무 명... 시작은 괜찮습니다)

초롱초롱한 그녀들(연구회 회원의 80%가 자매님들로 구성)의 눈망울은 나를 투시하듯 바라봤고, 그 눈빛 속에는 협동조합의 모든 걸 알려달라는 학구열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사실은, 저도 같이 공부할 회원입니다"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단지 그네들보다 조금 일찍 관심을 가지고 몇 권의 책을 읽었을 뿐, 협동조합은 생짜 초보였다.

협동조합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하였는데, 우리는 말 그대로 서로를 처음부터 알아가야 했다. 대부분은 안면이 있는 분들이었으나 나는 신부님을 제외하고는 그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을 거의 몰랐다. (고백컨대, 나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때만 성당을 찾던 옅은 신앙심의 신자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첫 모임의 시작으로 준비했던 협동조합 관련 동영상 강의(주수원의 협동조합 A to Z)를 서둘러 틀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동영상을 보는 동안에도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나한테 질문이라도 하면 어쩌지? 1강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말았다. 당연히, 질문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어진 자기소개 시간. 자신을 규정짓는 한 단어로 스스로 소개하는 방식을 기억해 냈다. 한 성격 하는 B형 남자라는 내 소개를 시작으로 각자 자신을 설명했다. 나무, 물, 골목대장, 중증결정장애, 무표정 등등 각자가 스스로 표현하는 시간이었는데,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담은 단어를 떠올리며 유창하지는 않았으나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단어는 그대로 그들과 나의 별명이 되었다.

모임을 꾸려갈 때 별명은 매우 중요했다. 독서토론의 첫 번째 책이었던 <마을의 귀환>을 보면, 마을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별명을 부르고, 공동체라는 형식으로 모여 사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그 이유를 관계 형성의 유연함으로 설명한다.

"사회에서는 장난치거나 편하게 말 붙이기 힘든 관계도 마을에서는 별명 덕분에 쉽게 다가갈 수 있어요."(22P. 삼각산 재미난 마을 편)

그렇게 별명을 부르기 시작하니 한결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어머니 또래까지는 아니어도 막내 이모님급의 분들께 마땅한 호칭 선택이 어려웠으나 스마일님, 라온아띠님, 협동님, 이렇게 별명을 부르니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신부님 또한, 흔쾌히 '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를 원하셨다. 그렇다고 별명만으로 가까워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았다.

책 한 권이 끝날 때마다 각자가 준비해 온 음식으로 책거리 뒤풀이를 진행한다. 늘 조용하고 평상심을 잃지 않는 표정을 지니셨지만, 다단계로 아파트 한 채를 날려버린 과거가 있으신 협동님은 묵무침을 준비해오셨다. 시크한 도시녀 쿨캣님은 골뱅이무침을, 앳된 새댁 같은 리베님은 천연 어묵탕을 준비해왔다.

협동조합을 연습하기 위한 과제로 조를 나누어 기획안을 작성토록 했을 때의 일이다. 한 조의 기획이었던 '꼬꼬쿱'(마을 치킨 협동조합)에 빠져든 회원들이, 직접 생닭을 튀길 준비를 해온 것이 아닌가! 연습은 실전처럼 해야 한다는 명언과 함께. 그렇게 튀겨낸 빵가루 치킨을 나누어 먹으며 기획안 평가를 했던 적도 있다. 음식을 나누고, 연구회 시간에 하지 못했던 대화도 나누며, 회원들은 서로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신뢰에 기초한 인간관계, 협동조합의 기본정신

연습 삼아 진행한 협동조합 기획인데, 드라마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있다.
▲ 가칭' 꼬꼬쿱'의 유기농 후라이드 치킨 준비 과정 연습 삼아 진행한 협동조합 기획인데, 드라마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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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바뀔 때마다 조를 새롭게 편성하여, 회원들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누구네 집 찬장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생각과 다른 타인의 생각을 경청하고, 그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게 서로를 존중할 때 신뢰는 생기고, 그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가 진정한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이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협동조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침묵은 해가 된다. 미세한 부분이라도 그냥 넘기게 되면, 나중에 더 큰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타인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제 할 말을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애먼 곳에 쏟아붓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봐왔다.

지금껏 우리의 교육은 주입식 그 자체였기에, 모르는 것을 질문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당당히 밝히는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더구나 어렵게 한 질문이 웃음거리가 되거나 자신의 의견이 무시라도 당하면 마음속 빗장은 더욱 단단해졌다. 우린 그렇게 교육 받았고, 그렇게 길들여졌다. 토론할 수 있는 유전자는 소멸되었고, 의문을 제기하는 감각기관은 퇴화되었다.

그래서 협동조합에는 많은 수다가 필요하다. 눈치 보지 않고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과 작은 의견도 담아낼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재미있게 수다 떠는 시간속에서 협동의 의미가 자연스레 가슴에 새겨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 토대 위에 사업적 기초를 쌓는다면, 그 협동조합은 탄탄한 구조물이 되어 온갖 시련을 견뎌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뭉쳐, 건설해 가는 것이 협동조합의 근본이지만,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협동조합의 기본 가치를 생각하며 함께 차근차근 준비해 가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이 끝날때마다 각자가 준비한 음식들을 먹으며 지난 과정들을 복기해 본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 책거리 뒷풀이 장면 한 권의 책이 끝날때마다 각자가 준비한 음식들을 먹으며 지난 과정들을 복기해 본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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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협동조합 첫 모임 신청자 스무 명... 시작은 괜찮습니다)


태그:#협동조합, #꼬꼬쿱, #마을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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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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