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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자1>표지
 <아만자1>표지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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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후배가 있다. 한 남자의 아내이고 두 딸의 엄마며 누군가의 딸이기도 한 사람이다. 후배는 느리고 섬세하며 민망할 정도로 솔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십 년도 훨씬 전, 직장 선후배로 만나 남매처럼 지냈다.

그녀는 업무 대신 연애보고를 열심히 하더니 결혼에 성공해 가정과 직장에 충실하다가 출산과 함께 퇴직했다. 한 해 서너 번씩은 보는 후배다. 만나 실컷 떠들고 웃다 보면 행복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가 말기암에 걸렸다는 의사의 판정 때문이다. 환갑을 지낸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어머니에게도 그 딸인 후배에게도 그리고 내게도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였다. 오래 전 후배가 결혼하고 살림을 차리자마자 한 집들이 자리에서 처음 뵌 고운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만자>라는 만화책이 있다. 왠지 무협만화의 주인공 이름이 연상되지만, 싱겁게도 '암환자'를 발음대로 적은 것이란다. 군대에 다녀오고 학교도 마친 어느 청년이 말기암 판정을 받고 난 후의 일상, 생각 그리고 치료와 고통 등을 대해 묘사하고 있다. 슬프기만 할 것 같은 비극도 낱낱이 해부하니 재미와 감동이 따른다. 암환자에게도 매일 일상이 흐른다.

암과 현대의학

"첫 번째는 초기 암환자들의 수술 후 몸에 남아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없애 재발을 예방하는 것, 두 번째는 진행이 된 암환자들이 수술 전 암의 크기를 줄여 수술을 쉽게 하기 위한 목적, 세 번째는 암의 빠른 진행을 막아 통증을 줄이려는 것으로, 나 같은 말기암 환자들의 통증관리를 위한 방법이라고. 국립암센터 홈페이지에 나와있었다." (1권 p.101)

주인공 '아만자'가 인용한 세 가지 항암치료의 목적이다. 주인공처럼 척추와 위에 암세포는 다 퍼져 있고, 매일매일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전이된 암이 사라진다든가 완치가 된다든가 하는 일은 확률상 제로에 가깝다.

'암환자 5년 생존율이 60%가 안 되는 현실, 이마저도 5년 생존율 90%가 넘는 유방암, 갑상선암 환자들이 포함된 통계다 보니 그 둘을 제외한 생존율은 훨씬 낮다'는 것이다. '5년 이후 생존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니 암환자의 실질 생존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암환자가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아직 몸이 본인 의지대로 움직이고 통증도 덜할 때 적극적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암환자의 자살률이 일반인의 두 배가 넘는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암을 이용한 상술

"그런데 말이지 암환자라는 게 아주 이용해 먹기 편해요. 딱히 검증 받은 건 없는데 살 수만 있다면 믿기지 않아도 그걸 어떻게든 믿으려고 해. 머리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린 걸 알면서도 또 마음으로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길 바라는 거야. 똥을 쳐먹고, 흙을 쳐먹고 암이 낫기를 바라는 거야. 게다가 죽은 사람은 또 말이 없어요. 그걸 먹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찾아 다니는 사람도 없어. 그뿐이야? 암환자는 매년 숱하게 생겨나거든. 아주 (양심 없는 장사꾼들에겐)화수분이지."(2권 p.49)

<암환자2>표지
 <암환자2>표지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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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가 겪는 통증을 포괄적으로 뜻하는 말이 '암성통증'인데, 날카로우면서 쑤시거나 눌리는 듯한 '체성통', 통증 부위가 모호하고 내장 장기가 조이거나 욱신거리는 '내장통' 그리고 신경병증성 통증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암환자가 이러한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할 때 이른 바 '약장수'들이 약을 파는 것이다. 검증도 안되 있을 뿐 아니라 출처도 확일 할 길이 없는 만병통치약을 들이대면 목숨보다 중요할 수는 없는 돈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족, 친지들과 함께 하는 시간

저자 김보통은 <아만자>가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드리는 전상서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아버지가 암으로 겪었을 고통에는 물리적인 것 말고도 극심한 자괴감이 포함되었을 것이 분명했을 것이라면서. 수 많은 암환자들이 '곧 죽는다는 사실'과 '내게만 강림할 지도 모르는 기적'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다가 체력이 고갈되고 그래서 체념으로 삶을 마감하는 사실을 안타까워한다.

저자는 책 속의 '아만자'와 꿈 속 도깨비들의 입을 빌어, 병원에서 보낼 그 시간과 비용으로 꼼꼼하게 계획한 마지막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조심스러운 제안을 하는 듯도 하다. 수 많은 '아만자'들이 육체적 고단함과 곧 마감될 생에 대한 두려움에 고통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은 혼자라는 외로움이 고통을 증폭시킨다고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고 착하고 껍데기보다는 알맹이에 집중할 줄 아는, 본인 말로는 '항상 뭔가 손해 보는 것처럼' 살고 있는 나의 후배는 말기 '아만자'인 어머니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진단 초기 병원에서,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여행지에서 뵈었던 어머니의 고운 모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가슴이 아프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 자기 표현에 서툴지만 눈빛에서 삶에 대한 의지가 불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적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가족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또는 멀리 떠나는 것으로, 많은 이 땅의 '아만자'들이 행복하게 남은 생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 길에 만화책 <아만자>가 작은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후배와 어머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흘러가고 있는 이 순간 순간이 행복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아만자 1,2> 김보통 글그림, (주)위즈덤하우스, 2014년 10월 30일 발행



아만자 1

김보통 글.그림, 예담(2014)


태그:#아만자, #암환자, #김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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