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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 이아무개(33)씨가 작동검사 중인 해치커버와 코밍(coaming,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갑판 위 선미 조타석 주변에 세워놓은 프레임) 사이에 끼여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이 사고 직후 원광대학병원으로 옮겨진 이씨는 10월 29일 오후 유명을 달리했다. 10월 25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 이후 불과 4일 만에 현대중공업그룹에서 또 다시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서는 지난해에도 산재사망사고로 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위해 제대로 된 산업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올해가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현대중공업그룹에서만 11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은 비단 현대중공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고위험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면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

ⓒ 진보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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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여수시 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공장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발생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사고로 17명의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이 중 15명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그보다 앞서 2012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는 산재로 3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었는데, 사망자 중 2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또한 2013년 1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로 1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 역시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최근 사례만이 아니다. 2008년 4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 2011년 이마트 탄현점 사내하청 노동자 질식사 등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도 사례들은 숱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련의 산재사고 피해자 대다수가 사내하청 노동자, 즉 비정규직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통계자료는 없다. "노동부에서 통계 자체를 그렇게 뽑지 않는다. 통계의 한계다"라는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국장의 지적처럼, 고용노동부가 해마다 산재 발생 현황을 산출하지만 업종이나 사업장 규모별로만 통계를 낼 뿐, 고용형태별로는 통계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전 산업에 걸친 간접고용 증가 추세와 사업장 규모별 산재 사망 현황 등을 근거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망률이 원청업체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월등히 높다'고 추정할 따름이다.

실제 지난해 산재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사업장은 5~49인 미만(736명)과 5인 미만(422명)의 소규모였으며, 지난해 발생한 전체 산재 사고의 81.5%가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여기서 말하는 소규모 사업장을 하청업체로 볼 수 있다.

또 지난해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낸 보고서 '조선산업의 사내하청 산재 집중, 현황과 대책'에 따르면, 2001~2009년 현대중공업과 같은 조선산업 산재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은 원청이 0.49인 데 반해 사내하청은 1.72배로 3배 이상 높았다. 왜 그럴까.

원청에 비해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율이 높은 이유

최근 거제 대우조선해양 공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경남권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와 노동건강문화 공간새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위원회는 28일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은 최근 산재사고가 난 대우조선 작업 현장 모습.
 최근 거제 대우조선해양 공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경남권역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와 노동건강문화 공간새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위원회는 28일 고용노동부 통영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진은 최근 산재사고가 난 대우조선 작업 현장 모습.
ⓒ 대우조선하청노동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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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이윤추구를 우선시하는 기업의 무분별한 행태를 꼽을 수 있다. 인건비 절감 차원으로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 활용을 늘리고 있는 것. 실제 고용노동부가 2010년 8월 말 기준으로 3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수를 조사한 결과, 원청 노동자 대비 사내하청 노동자 비율이 2008년 5월 기준 27.9%에서 32.6%로 4.7%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 업체는 사내하청을 통해 비용절감 뿐만 아니라 힘들고 유해한 환경의 일을 맡겨 산업재해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보고서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하도급업체 근로자 보호강화 방안'(2007년 11월)에 따르면, 2007년 약 51개 원청업체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관리자의 40.8%가 "유해위험 작업이기 때문에 하청을 준다"고 답한 바 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따르면, 원청업체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해도 법적 책임은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 사업주, 즉 하청업체에게 돌아간다. 원청업체가 책임은 있으나, 비용을 들여 작업장 안전 시설을 개선하거나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안전보건 교육을 할 의무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원청 눈치를 보는 하청업체의 열악한 상황에 있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입찰 가격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낮추거나 쪼개야 최저가 입찰로도 이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원청업체가 갑의 지위를 이용해 무리한 요구를 해도 계약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대로 하청 노동자들에게 전가돼 무리한 작업, 미진한 안전교육으로 이어지고 결국 사고 발생 위험도를 높이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셋째는 법과 제도적 미비함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유해 작업 도급 금지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산업안전법 제28조에 따르면, 안전·보건상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작업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가 없으면 그 작업만을 분리하여 도급을 줄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도급 가능한 작업은 도금, 수은·납 등 중금속 제련·가공 작업 등 일부만 해당할 뿐이다. 지난 대림산업 사고에서 보듯 고밀도 폴리에틸렌 같은 위해·위험할 수 있는 화학 물질을 다루는 설비·보수 작업은 도급 금지 업종에 해당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서 다루었던 산업안전법 제29조이다. 이 법에 의하면 산재에 대한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하청업체에 전가된다. 실제 지난 2008년 무려 40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에서 원청업체에 부과된 벌금은 2천만 원에 불과했다. 또 2011년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매 가스 교체 작업을 하던 4명의 하청 노동자가 질식사한 사건에서도 원청인 탄현점 지점장과 이마트 법인에 부과된 벌금은 각각 100만 원씩이었다.

이처럼 원청업체에는 '도의적 수준'의 책임만을 요구하고 하청업체에 법적 책임을 전가하는 제도는 원청업체가 작업장 안전관리에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대책없는 정치권, 거꾸로 가는 정부

이에 대해 정치권은 대책이 없다. 오히려 새누리당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2012년 사내하도급법안을 제출하였지만, 오히려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불법 파견을 사실상 사내하도급으로 합법화하여 사내하청을 더욱 양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어 2011년 정부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지만 이것 역시 간접고용 문제의 제도적 해결을 회피하는 용도로 남발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문제를 원청이 책임지는 구조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 문제는 지속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지난 7월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고용, 노동분야 주요 정책방향'을 내놓는 등 간접고용을 확대하려고 하는 등 친기업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파견이나 사내하청 등의 문제가 오히려 확대될 것으로 우려하는 노동계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원청 책임 확대, 도급금지 업종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업체의 책임 범위를 '실질적인 산재예방'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산업안전법 29조에서 원청의 책임을 ▲ 안전교육 ▲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 원하청이 구성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등으로 확대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엄격한 법 집행과 불법 도급 근절도 함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우선적으로 산업재해율의 고용형태별 통계자료가 있어야 한다. 현재 제출되는 자료들은 여러 정황과 나름의 근거를 통한 노동계의 추정과 주장이 담긴 고용형태별 산업재해율이다. 따라서 어떤 주장을 하기에는 객관성과 보편성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사내하청의 산업재해 문제는 경영계조차 인정하는 공공연한 사실인 만큼 좀 더 정확한 객관적 통계자료와 전 산업에 걸친 실태 파악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전 사회적으로 그 객관 현실에 대해 공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원청의 책임 확대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도급, 파견, 용역 등 불필요한 간접고용을 제한하는 방식의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확대된 간접고용은 인건비 절감을 통한 기업의 단기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산업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고용형태가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지금은 저임금과 노동자간 불평등을 양산하여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고용 사용에 제한을 두고, 그 기준에 따라 현재 확산되어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진보정책연구원 홈페이지(www.uppi.or.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 한국사회노동연구소 구도희 연구원이 쓴 '산업재해의 사각지대 사내하청' 내용 참고 및 인용.
* 글쓴이는 진보정책연구원 노동분야 담당 연구원 박철우입니다.



태그:#현대중공업, #산업재해, #하청노동자, #간접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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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책연구원은 통합진보당의 싱크탱크입니다.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래 10년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책을 연구하며 진보의 발전을 위해 매진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매주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진보적 시각으로 분석하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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