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고들 한다. 비록 과정이 조금 미흡하더라도, 그 결과가 괜찮으면 흔쾌히 용서가 된다는 뜻이다. 반대로 과정이 제아무리 훌륭했을지라도, 결론이 신통치 않으면 곧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거나 내내 놀림감이 되기도 하는, 매우 운 나쁜(자초하는 것이긴 해도) 작품이 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결말에 대한 시시비비는 이제 공공연한 일이 되었다. 우리는 때로 불쾌한 마음으로 영화 <미스트>의 기괴한 마무리를 돌이켜보기도 하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나 <지붕 뚫고 하이킥> 등의 충격적 결말을 두고두고 곱씹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결말이 과정을 깡그리 잡아먹은 아주 좋은 예들로 꼽히곤 한다.

생을 마감한 이봄이, 하지만 허무한 끝은 아니었다

'내 생애 봄날' 이봄이의 죽음은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어주었다. 그의 지난 5년 간의 삶 또한 같은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었다.

▲ '내 생애 봄날' 이봄이의 죽음은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어주었다. 그의 지난 5년 간의 삶 또한 같은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었다. ⓒ MBC


그렇다면 이제 막 막을 내린 MBC 수목드라마 <내 생애 봄날>은 어떤 쪽일까. 한마디로 말해, 이 드라마가 내린 결론은 많은 이들의 바랐던 바를 채우기에는 조금 부족할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시 이별을 맞이해야 했으며, 그 빈자리는 여느 때보다 더욱 커진 상태가 되었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모두가 하하 호호 웃으며 행복해하는 결말은 이 드라마에는 없었다. 이봄이(최수영 분)는 가족들의 바람을 뒤로 한 채 인공심장 이식 수술을 거부했고, 대신 자신의 장기를 누군가에게 남기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강동하(감우성 분)는 또 다시 아내를 잃게 되었으며, 아이들은 새로운 엄마를 맞이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가족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슬픔에 빠졌음이 분명하다. 

그간의 행복은 그저 꿈이런가. 돌아보니 모두에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아스라이 피어오르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행복. 그러나 죽어가는 이봄이에게 강동하가 전한 말에 의하면, 모든 것이 사막 위의 먼지바람처럼 허무하게 스러져 버린 것만은 결코 아니었다.

<내 생애 봄날>의 가치는 삶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는 데 있다. 진정한 이타의 삶, 진부한 표현이라지만 실상은 그 속내를 깊이 알지 못하는, 바로 그것에 대해서 말이다. 연민이 사랑으로 변하고, 그 사랑이 다시 포괄적인 의미의 인간애로 발전하는 과정. 이 드라마의 전개 과정은 너무나 드라마틱했지만, 누구나 쉽게 전하기는 어려운 깊은 감동을 전해 주었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 이봄이가 남긴 따뜻하고 아름다운 유산

'내 생애 봄날' 삶의 영속성에 대한 깨달음 때문일까. 수술실로 향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강동하의 표정이 오묘하다.

▲ '내 생애 봄날' 삶의 영속성에 대한 깨달음 때문일까. 수술실로 향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강동하의 표정이 오묘하다. ⓒ MBC


<내 생애 봄날>의 내용은 얼핏 평이해 보였고, 그 과정은 심심하게 전개되었으며, 결론 또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흡족한 것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토록 조용하게만 보였던 이 드라마가 담아낸 것들은 그 어느 드라마들에서보다 적지 않았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게 될 수도 있는 급박한 순간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순간들, <내 생애 봄날>에는 그 모든 것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어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선물이 아니라 재앙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 생애 봄날>은 그런 것들을 맞닥뜨린 이들의 다채롭고 복잡 미묘한 감정선을 매우 섬세하면서도 성공적으로 풀어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혹은 그것을 벗어나 각 개인으로서, 뜻밖의 순간들에 대처하는 성숙한 자세는(때로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충분히 귀감이 될 만했다.

이봄이는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행복한 해피엔딩은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드라마 곳곳에서는 새로운 관계가 그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서로를 되돌아보기 시작했으며, 그 '가족'에 생물학적인 의미는 물론, 그것을 벗어난 관계까지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내 생애 봄날>의 결말을 어떻게 생각해야만 할까. 하지만 그것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이 드라마는 우리의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 것만 같다. '삶과 죽음에 크게 의미를 두지 말라'고. 그것이 지나간 후의 '발자취를 기억하라'고. 그리고 '사랑과 존중, 이해와 존경, 연민과 이타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라'고.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MBC 내 생애 봄날 강동하 감우성 최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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