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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를 받고 그 이후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더라도 무조건 국가배상책임이 있는 건 아니고, 수사·재판시 국가기관의 불법행위가 입증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976년 6월 중앙정보부 대구지부로 강제연행된 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서태열, 장의식씨와 그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심리한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지난 27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서씨는 2억1400여만 원을, 장씨는 2억500여만 원, 그 가족들은 각 2000~3400만 원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의 이유 설시에 부적절한 점이 없지 않다"며 판결 이유를 상세히 제시했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가 유효할 당시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구금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에 대해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않았던 이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재심의 무죄판결 사유, 즉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않는 경우'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를 나눠서 국가배상책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심 결과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확정 받을 경우엔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지만,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돼 무죄를 받았다면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의 인과관계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수사 때의 가혹행위나 위법한 재판 절차 등 국가기관의 위법행위가 없다면 국가배상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위의 서태열, 장의식씨에게는 국가의 불법행위가 있기에 배상 판결이 내려진 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1·4·9호에 대한 이전의 합헌·유효 판결을 폐기하고 위헌이자 무효라고 판결했고,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2·9호를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긴급조치 위반으로 유죄를 받은 이들은 재심을 청구하면 자동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형사보상을 받게됐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이나 위자료 등을 받으려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는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를 입증할 부담을 지게 됐다.

이같은 대법원의 판결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합법을 가장한 국가 폭력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30일 낸 논평에서 "유신정권이 법률도 아닌 긴급조치라는 형식을 빌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감옥에 가두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법을 집행하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만을 논하는 것은 법 형식논리에 빠진 독단으로 실질적 법치주의 원리에도 위배된다"며 "일제 강점기 하 치안유지법을 위반한 피해자에게 고문 등 가혹행위가 없었다는 이유로 일본에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태그:#긴급조치 9호, #위헌, #국가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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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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