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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때 되면 다 큰다."

지난 2년간 박은영(가명, 32)씨는 이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두 돌인 지금까지 아직 혼자서 서지 못하는 딸 한비(가명)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애태웠던 딸이다. 임신 5개월쯤 초음파를 보던 산부인과 의사는 아이의 심장소리가 좋지 않다고 했다.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닐까 마음 졸이며 종합병원에 가니 태어나서 수술만 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열심히 먹어서 은영씨의 체중은 계속 늘었지만 태아는 잘 크지 않았다. 검진을 하러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불안했다. 출산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태어난 한비의 몸무게는 2.44킬로그램이었다.

자연분만 삼일 만에 퇴원한 은영씨는 너무 가벼워서 안는 것도 조심스러운 아기와 함께 집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한비는 많이 울었다. 밤새 울기도 해 산후조리를 돕던 친정엄마가 안고서 자곤 했다. 예방접종을 하러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아이가 너무 못 먹어서 상태가 안 좋다며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고 일렀다.

그 길로 달려간 종합병원에서는 아이를 보자마자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시켰다. 은영씨와 남편은 병원에 남아 저녁 면회시간까지 기다렸다. 면회시간에 맞춰서 가니 위급한 환자가 있어서 면회가 금지되고 있었다. 그 위급환자가 바로 한비였다. 한비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밤 11시, 병원에서는 은영씨 부부에게 수술동의서를 내밀었다.

"즉시 심장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수술동의서를 보는데 수술 부작용이 나와요. 처음엔 가벼운 증상들이 나오다가 밑으로 갈수록 뇌출혈, 하지마비, 사망까지 있어요. 숨이 턱 막히고 덜덜 떨리더라고요. 막 울면서 사인을 했죠."

태어난 지 일주일 만의 심장수술, 꼭 드라마 같아

은영씨는 갑자기 닥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꼭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희망의 빛을 봤다. 수술실 앞으로 걸어오는 담당 의사의 뒤로 후광이 비췄다. 병원 벽면에는 채 2킬로그램도 되지 않던 아기가 수술을 받고 건강해진 모습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물을 닦으면서 은영씨는 우리 한비도 저렇게 되게 해달라고 세상의 모든 신께 기도했다.

기도 덕택이었을까. 심장수술은 잘 끝났다. 병원에서는 막혀 있던 대동맥도 뚫고 심실에 있던 여러 개의 구멍도 메웠다고 했다. 그렇게 은영씨는 다시 웃음을 찾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수술 후 검진을 하던 의사는 "10년 동안 무수히 심장수술을 했지만 이번이 두 번째"라면서 "아기가 뇌출혈이 있다"고 말했다. 

다시 뇌수술까지 해야 했다. 가슴과 머리를 여는 큰 수술을 한 한비는 한동안 병원 밖을 나갈 수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앞뒤로 산소호흡기, 링거를 치렁치렁 단 채 살았다. 손발엔 온통 주삿바늘 자국투성이었다. 은영씨는 콧줄을 통해 분유를 먹는 아기를 보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빨리 낫기만을 바랐다.  드디어 입원 한 달 만에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은영씨는 여전히 작은 한비를 안고 집으로 오면서 다시 병원에 올 일이 없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하늘은 은영씨의 편이 아니었다. 퇴원 후 별 탈 없이 지내던 한비가 어느 날 기지개를 켜는데 갑자기 눈동자 속 동공이 커졌다. 어쩌다 생긴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한 시간에 한 번씩 계속 그랬다. 하루에 열 번도 더 그러니 또 덜컥 겁이 났다. 병원에 문의하니 흔히 말하는 경기라고 했다. 의학용어로는 영아연축. 한해 태어나는 40만 명이 넘는 아기 중 120명 정도가 걸리는 병이었다.

영아연축이 되면 경기가 사라질 때까지 성장이 멈춘다. 아예 퇴보하는 경우도 많다. 뒤집기를 하던 아이가 목을 못 가누게 되는 것처럼. 생후 4개월에 진단을 받은 한비는 그로부터 1년 넘게 누워만 있었다. 독하기로 유명한 치료약을 아이 몸무게의 최대치까지 썼다. 아이의 몸이 경직될 때마다 은영씨의 몸도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한 차례 경기가 멈췄다가 다시 시작됐을 때는 속이 타다 못해 썩어갔다.

"경기가 멈췄다가 재발하면 잘 안 낫는다고 했거든요. 그땐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애가 이렇게 누워서만 지내려고 하나 오만 걱정을 다 했죠."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이가 아픈 티 안 내

사람들은 아기가 심장수술을 했다고 하면 무슨 큰 병에 걸린 줄 안다. 아무리 담당 의사가 "심장병은 감기와 같다. 수술해서 제대로 숨만 쉬게 하면 된다"고 했다고 얘기해도 불쌍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알기에 뇌출혈이 왔을 땐 주변에 얘기를 거의 안 했다. 아이가 경기를 하는 것도 제일 친한 친구 두 명 밖에 모른다. 은영씨는 애가 아프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카카오스토리에도 아이의 예쁜 사진들만 올려놨다.

"돌 때부터는 카스(카카오스토리)도 끊었어요. 아이가 못 걷는 게 알려질까 봐요. 심장 수술하고 같은 병실에 있던 언니들의 애들은 잘 크고 있거든요. 언니들은 애들이 막 뛰어다니고 문화센터에 다니는 사진을 올리는데 한비는 뒤집기 한 후부터는 변화가 없으니까…. 돌 잔치할 때도 애가 혼자서 앉지도 못한다고 할까봐 걱정을 엄청나게 했어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돌 잔칫날 한비는 계속 울어서 두 시간 내내 은영씨에게 안겨 있었다.

심장수술 후에는 아이의 수술자국 걱정을 많이 했다. 여자애인데 커서 목이 파진 옷도 못 입을까봐 애가 탔다. 거금을 들여 수술자국을 없애는 레이저시술도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사람들이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까.

"중간에 다니던 소아과를 바꿨어요. 전에 다니던 소아과 간호사들이 한비 수술자국을 보더니 '생각보다 깨끗하네요'라고 하는 거예요. 의료진들 눈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지 모르지만 저는 아니거든요.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게 싫더라고요."

이렇게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들이 상처가 되곤 한다. 아이가 만날 누워만 있고 엄마를 못 알아본다고 하니까 주변에선 "엄마가 너무 안 안아줘서 그런 거 아니냐"면서 은영씨를 타박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이 상한다. 아이 머리가 흔들릴까봐 돌 때까지 유모차도 안 태우고 안고 다녔던 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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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양방 융합 치료 후,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아픔을 남에게 말도 못하고 속만 끓이던 은영씨는 요즘 조금씩 웃는다. 한방 치료를 겸하고 나서부터다. 한비의 재활치료를 위해 다니던 복지관에서 만난 엄마가 "아이가 한약 먹고 좋아졌다"는 말을 해줬다. 그 엄마의 소개로 소아재활 전문병원인 D병원을 찾았다. D병원에 입원한 후 흔히 말하는 아기 '개인기'를 하나도 못하던 한비가 '잼잼, 빠이빠이'를 하게 됐다. 사람들과 눈도 못 맞추고, 밥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줄 때 빼고는 누워만 있던 아이다. 꼭 인형을 키우고 있는 것 같던 한비가 이제 조금씩 주변에 반응한다.

"입원하고 좀 지나니까 재활치료사들이 '어머니, 한비가 자기를 칭찬하는 걸 아는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고요. 병동 엄마들하고 얘기하다가 웃으면 한비가 따라 웃기도 하고요."

치료 한 달째인 추석 무렵에는 한비가 무릎을 꿇은 채 테이블을 잡고 일어섰다. 그때 은영씨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입원 두 달을 넘긴 요즘은 혼자서 앉아 있는 시간도 많이 늘었다. 주변에 있는 물건들로 이리저리 손을 뻗어서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다. 누군가는 아이가 산만하다고 하겠지만 은영씨는 그 모습이 좋다.

"친구들이 애가 기어 다니고부터는 어디로 튈지 몰라 힘들다고 할 때면 화가 났어요. 엄마가 그것도 못하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죠. 우리 한비는 누워만 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막 움직여주는 게 고마워요."

얼마 전 찍은 뇌초음파에서 경기파가 거의 사라졌다는 진단도 받았다. 신경외과 교수가 "이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한약과 양약을 함께 먹어서 경기가 재발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지금은 한시름 놓았다. 한비가 하루 네다섯 번의 재활치료 수업을 잘 따라가 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먹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새로운 변화다. 씹는 걸 잘 못하고 음식을 삼키곤 하던 한비가 조금씩 씹기 시작했다. 말하는 연습도 계속 하고 있다.

언제 마음고생을 했나 싶다. 병원에 처음 왔을 때 에두르는 법이 없는 김문주 D병원 이사장은 "돌 전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좀 늦었다. 내 목표는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거다"라고 했다. "일반학교에 못 가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그럴 수도 있다"고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은영씨는 3일간 울었다. 지금은 아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비도 노력하면 발전한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도 평범한 진실을 확인하자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인다. 서두르지도 않을 거다. 처음에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엄마들에게 "세 달 입원한 후에 아이가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다들 "꿈도 크다"는 반응이었다. 지금 바람은 한비가 눈을 맞추고 있는 사람이 엄마라는 걸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 곧 그리 될 거라 믿는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한국사회에서 장애아 부모로 사는 법

치료비가 걱정이 되긴 한다. 몇 달씩 입원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입원 한두 번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영유아발달장애바우처를 통해 재활치료비를 일부 지원받고 있기는 하지만 언어 치료 등 지원받지 못하는 부분도 많다. 좀 더 혜택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 장애등록도 했다. 한비는 뇌병변장애 1급을 받았다. 우리 아이가 그 정도로 심한가. 믿기지 않았다. 동주민센터에 장애등급이 제대로 나온 건지 물었다. 담당 공무원은 "아이가 걸어요?"라는 한 마디로 은영씨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받은 장애등급이지만 아직까진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딱 한 번 혜택을 봤다. 왼쪽 뇌가 손상돼 오른쪽 발을 땅에 딛기 힘든 한비에게 필요한 특수신발을 제작할 때 지원을 받았다. 그걸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현재는 장애인콜택시 이용도 쉽지가 않다. 은영씨가 사는 경기도에서는 장애인콜택시를 타려면 최소 이틀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도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또 병원에 갈 때만 지원이 된다. 재활치료를 위해 복지관에 갈 때도 장애인콜택시를 부를 수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눈치를 보는 은영씨로서는 아쉬울 따름이다. 경기를 하는 아이들은 머리가 아파서 소리를 잘 지른다. 한비도 마찬가지다. 비명이 "아프다"라는 말을 대신한다. 어느 날은 1시간 좀 넘게 걸리는 병원에 다녀오면서 소리를 지르는 한비를 달래느라 버스를 다섯 번 갈아타기도 했다. 그래서 갈아타기 힘든 지하철은 아예 탈 생각을 못했다. 최근에야 병실에 있는 엄마들과 인사동에 가면서 한비를 데리고 처음 지하철을 타봤다. 그나마 한비가 지하철 안에서 생각보다 소리를 적게 질러서 눈총을 덜 받았다.

한비가 아프고 나서 은영씨는 주변을 많이 의식하게 됐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비정상을 백안시하는 한국의 문화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영씨의 남편은 장애등록을 반대하기도 했다. "기록이 남아서 나중에 유학을 가거나 취업할 때 불이익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 은영씨도 한비가 일반학교에 가지 못해 사회의 안 좋은 시선을 감당해야 할까봐 걱정이 많다. 그런 한국사회에 한 마디 하고 싶다.

"사람들은 똑바로 걷지 못하고 삐뚤빼뚤 걷는 사람을 색안경을 쓰고 보잖아요. 그런데 장애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어요. 교통사고 같은 거죠."     

이제 세상에 반응하기 시작한 한비를 꼭 안은 채 은영씨는 세상의 편견에 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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