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 야구계가 어느 때보다 시끄럽다. 올해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구단을 중심으로 감독 교체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계약기간을 남겨둔 감독들이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연이어 등 떠밀리듯 쫓겨났다. 재계약에 성공한 감독은 여론에 밀려 6일 만에 자진사임했다. 팬들이 나서서 구단 측에 특정감독의 영입을 요구하고 이를 성사시키는가 하면, 선수단과 프런트가 정면으로 충돌하여 팀 내분까지 벌어진 구단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이 정도로 큰 사건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것도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라운드에서는 가을의 축제인 포스트시즌이 아직 한창이다. 하지만 넘쳐나는 사건사고에 밀려 가을야구에 대한 관심이 다소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국내 야구계에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삐뚤어진 관행이 곪아서 터진 까닭이다.

각 구단별 내부 파열음... 이제야 터진 고름

최근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각 구단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일맥상통한다. 바로 '한국형 프런트 야구'의 부작용이 불러온 후유증이라는 점이다.

근래 한국 프로야구는 소위 프런트 야구의 시대라고 할 만큼 프런트의 비중과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과거의 야구는 현장 중심이었고 전권을 보장받은 감독이나 현역 선수들을 위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프런트로 대표되는 전문화된 '조직'이 철저한 시스템에 의하여 구단을 운영한다. 이는 프런트 야구 본래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의 경우, 일찌감치 프런트 야구가 뿌리내린 지 오래다. 메이저리그는 최고 실무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단장이 구단 운영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선수 구성 등에서 전권을 행사한다. 감독은 구단의 지원 하에서 선수들의 기량향상과 실전에서의 경기력을 책임진다. 소위 '분업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국형 프런트 야구는 미국과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 폐쇄성이다. 1990년대 이후 많은 국내 구단들이 프런트 야구를 시도했지만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던 이유다.

선수들 살피는 송일수 감독 20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시범경기 두산 베어스 대 한화 이글스의 경기. 6회말 두산 송일수 감독(오른쪽)이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선수들 살피는 송일수 감독 1군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결국 1년 만에 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됐다. 사진은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시범경기에서 두산 송일수 감독(오른쪽)이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 ⓒ 연합뉴스


두산 구단은 지난 2013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한 김진욱 전 감독을 경질하면서 송일수 감독을 선임했다. 하지만 올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다시 1년 만에 그를 경질했다. 많은 이들은 두산 구단이 64세의 고령에다 1군 감독 경험이 전무했던 송 감독을 선임하자 자격기준을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구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송 감독은 결과적으로 선수단과의 소통이나 용병술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부진했고, 구단은 감독을 경질하며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정작 송 감독을 임명한 프런트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KIA는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선동열 감독과 2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팬들의 반발을 샀다. 여론악화에 부담을 느낀 선동열 감독이 자진사임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처음부터 구단의 책임이 가장 컸다. 선 감독 낙마의 결정적인 빌미가 된 '안치홍 논란'만 해도 그렇다. 이미 군 입대를 결정한 주축 선수를 구단이 억지로 잔류시키려다가 감독과 선수 모두에게 상처를 안긴 꼴이었다.

꼴찌 한화는 당초 김응용 감독의 후임으로 내부 인사를 승격시키려다가 팬들의 여론에 부딪혀 결국 김성근 감독 영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프런트가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모기업 고위층의 결정과 팬들의 여론 사이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했을 뿐이다.

최악의 상황인 롯데, 프런트 기득권이 문제인가

가장 최악의 사태는 현재 롯데에서 터졌다. 김시진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자진사퇴한 롯데는 현재 감독이 공석인 상황이다. 그런데 선수단과 구단 프런트의 누적된 갈등이 폭발하며 내홍이 깊어졌다.

선수단은 지난 28일 오전 0시, 구단 프런트인 이문한 운영부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실상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실명이 공개된 당사자들은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조치까지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하는 등 사태는 점점 악화됐다. 이를 지켜보던 팬들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구단의 개혁을 요구하는 집단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롯데 프런트의 기득권이 지나치게 강하고, 팀 내 파벌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현장의 고유권한인 코치진 구성이나 선수 엔트리 변동이 현장 책임자인 감독의 동의 없이 프런트 주도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 선수들도 감독보다 프런트와의 친분에 따라 구단 측의 눈치를 보는 일이 잦아지며 팀 내 갈등의 빌미를 초래했다.

2년 동안 김시진 감독에겐 사실상 실권이 없는 식물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지난 5월에는 친(親)구단 측 인사로 대표되는 권두조 수석코치 퇴진을 둘러싸고 선수단이 집단행동에 나서서 요구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최근 차기 감독후보로 거론된 공필성 코치나, 구단 프런트의 주축인 이문한 운영부장을 둘러싼 논란은 그 연장선상에 있는 사태이다.

과거에도 구단마다 크고 작은 분쟁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선수단과 프런트가 공개적으로 그리고 전면적으로 충돌한 경우는 없었다. 자칫하다간 대대적인 인적쇄신, 나아가 롯데 구단의 존립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심각한 상황이다. 근본적으론 롯데 구단의 수뇌부가 제대로 된 관리 감독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서 벌어진 사태다. 무능한 프런트 야구가 팀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프런트 야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삼성이나 NC·넥센처럼 현장과 프런트의 이상적인 공존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도 분명히 있다. 다만 프런트가 현장 및 팬들과 공통의 목표의식을 가지고 상호 공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이나 다른 목적을 쫓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내분이 발생한다. 프런트가 야구를 좀 안다고 선수기용 등 현장의 고유권한까지 섣불리 침해한다든지, 선수와 팬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팀은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프런트 야구의 핵심은 전문성에 따른 분업화, 그리고 책임감에 있다. 메이저리그는 프런트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만큼 앞장서서 책임을 지는 문화도 자연스럽다. 이번 메이저리그 내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LA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돈 매팅리 감독이 책임을 지기 전에 선수단 구성의 전권을 행사하던 네드 콜레티 단장이 먼저 전면에서 물러났다. 대신 LA 다저스는 앤드류 프리드먼을 새로이 구단 운영 부문 사장에 앉혔다. 책임지지 않는 한국의 프런트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한국형 프런트 야구는 합리적인 시스템에 의한 운영이 아니라, 소수의 '갑질'을 중심으로 굴러간다. 소통과 균형이 실종된 기형화된 프런트 야구에 더 가까운 것이 씁쓸한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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