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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피어오르는 두물머리의 아침, 햇살이 비추자 단풍잎보다도 더 고운 빛으로 물안개가 피어난다.
▲ 두물머리 물안개 피어오르는 두물머리의 아침, 햇살이 비추자 단풍잎보다도 더 고운 빛으로 물안개가 피어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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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하루 사이의 기온 차가 많이 나는 계절은 물안개 피어나기 좋은 시절이다. 물안개 피어나는 곳에서 아침을 맞이할 때, 바람이 잦고 햇살이 붉으면 단풍빛보다도 더 붉게 물든 강이나 호수를 볼 수 있다.

두물머리의 가을, 단풍보다 빛났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그곳에서 나는 단풍빛보다 더 아름다운 가을빛을 만났다. 가을빛. 우리는 흔히 단풍에서 찾지만,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에 계절의 변화가 감지되고 그런 움직임들이 하나둘 포착된다.

여전히 아름답긴 하지만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오로지 변하지 않은 부분들만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 두물머리 여전히 아름답긴 하지만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오로지 변하지 않은 부분들만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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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보다 아름다운 빛, 올가을 나는 두물머리의 물안개에서 그 빛을 보았다. 그리고 이어 군불을 지피는 아궁이에서 그 빛을 보았으며,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갓태어난 햇살이 조금 자라자 붉은 빛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물안개는 여전히 피어오르며 가을이 깊어감을 알려준다.
▲ 두물머리 갓태어난 햇살이 조금 자라자 붉은 빛도 사라지기 시작한다. 물안개는 여전히 피어오르며 가을이 깊어감을 알려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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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쌀쌀하여 군불을 떼지 않으면 춥다고 하신다. 이른 아침 군불을 떼시며, 씻을 물을 데우시는 물골 할머니.
▲ 물골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여 군불을 떼지 않으면 춥다고 하신다. 이른 아침 군불을 떼시며, 씻을 물을 데우시는 물골 할머니.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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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물골 노부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이 넘었으니 사계절이 다 지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의 손길이 담긴 것들을 추수했는데 올해는 할아버지의 손길을 탄 것들은 하나도 없다.

할머니는 여전히 건재하셨다. 주변에 전원주택이 하나둘 생기면서 옛 모습은 잃어갔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이웃이 생겨서 외롭지 않으시다니 다행이다. 이웃도 없이 그곳에서 홀로 지내셔야 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 것이며, 자주 들르지도 못하는 나는 또 마음이 많이 무거웠을 것이다. 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도 될 정도로 할머니는 건강하셨다. 감사한 일이다.

집집마다 굴뚝 연기가 피어나던 시절도 있었건만 이제 이런 풍경들은 쉽사리 볼 수 없다.
▲ 물골 집집마다 굴뚝 연기가 피어나던 시절도 있었건만 이제 이런 풍경들은 쉽사리 볼 수 없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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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의 경계, 그 사이에서 나무는 묵언을 한다. 침묵하며 고요의 세계로 빠져들수록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며 침묵의 겨울이 된다.
▲ 단풍 단풍의 경계, 그 사이에서 나무는 묵언을 한다. 침묵하며 고요의 세계로 빠져들수록 단풍이 들고, 낙엽이 떨어지며 침묵의 겨울이 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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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록의 색깔도 단풍색도 다 빼버리고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낙엽들이다. 자기의 색깔을 주장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 낙엽 연록의 색깔도 단풍색도 다 빼버리고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낙엽들이다. 자기의 색깔을 주장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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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는 나목이 되었고 어떤 나무는 이제 막 단풍을 들이고 있다. 가을은 침묵 혹은 묵언의 계절이다. 자기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에 뭐 그리 말이 많을 수 있겠는가? 나무로서는 새봄에 연록의 새순을 낸다는 미래가 있지만, 낙엽에겐 흙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러니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을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겠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 '묵묵히'. 그리하여 '묵언'인 것이다.

꽉 찬 사람이 말이 적듯이 가을의 빛들도 말이 많지 않다. 초저녁이 되자 시골 마을이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자욱하다. 한두 집이 아니라 제법 많다. 연기가 연탄을 때는 정도가 아니어서 동네 어르신에게 물었더니만 기름값이 올라서 보일러를 화목 보일러로 교체한 집들이 많아진 까닭이란다.

일상의 풍경... 가을이 가득하다

쌀쌀한 가을, 초저녁이 되자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요즘 시골엔 화목을 떼는 집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단다. 유류비와 가스비가 오르자 화목보일러를 많이들 설치했단다.
▲ 시골풍경 쌀쌀한 가을, 초저녁이 되자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요즘 시골엔 화목을 떼는 집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단다. 유류비와 가스비가 오르자 화목보일러를 많이들 설치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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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살기가 어려워진다. 단지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나라 꼴을 이 꼴로 만든 이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말로만 국민 행복을 외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미안한 기색도 없다.

길거리에서 나를 졸졸 쫓아다니던 개, 경계심없이 나를 따라다녔지만 차마 쓰다듬어주지는 못했다.
▲ 개 길거리에서 나를 졸졸 쫓아다니던 개, 경계심없이 나를 따라다녔지만 차마 쓰다듬어주지는 못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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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골의 개는 자유의 몸은 아니지만, 기척만 나면 짖어대며 물골 할머니를 지켜준다. 연신 짖어 경계를 풀어줄 만큼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유기견인 듯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개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지 졸졸 따라다니며 쓰다듬어 달란다. 혹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만 살펴보니 그 개는 사람들보다도 다른 개들을 더 경계하고 있었다. 자기들 세계의 질서 혹은 텃세 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물골 할머니 집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멍멍이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 물골 물골 할머니 집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멍멍이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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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음도 얼고 서리도 내리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여 곧 겨울이 올 듯하다. 그래서일까? 단풍 빛 말고도 가을임을 알리는 모든 풍광이 모두 아름다워 보인다. 물안개 피어나는 두물머리를 비추는 아침 햇살의 빛깔 뿐 아니라 지는 햇살에 그림자 길게 드리워진 견공까지도.


태그:#단풍, #가을, #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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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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