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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반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사고가 일어난 4월 16일로부터 6개월이 지났고, 그럼에도 여전히 사건의 진상규명은 제자리걸음이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누군가는 "이제는 그만 잊자"고 다그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끝나지 않은 일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10월 발간된 책 <눈먼 자들의 국가>는, 말하자면 그런 '기억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인을 비롯한 12명의 글을 담은 이 책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당시 상황과 그 이후의 시간들을 순차적으로 짚어낸다. 시인과 소설가, 사회학자와 언론학자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그들이 본 현실을 조망한다.

작가들의 눈으로 돌아본, 4월 16일 이후의 한국

뜨겁지 않게 이 글을 마칠 수 있을까. 차갑지 않게 지금을 말할 수 있을까. 지난달 16일,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배 안에서 한 여고생은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친구에게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울기는 어떻게 구하더라?"

그러곤 그 농담을 끝으로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다. 요즘 나는 자꾸 저 말이 어린 학생들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네고 간 질문이자 숙제처럼 느껴진다. 이 경사를 어찌하나. 모든 가치와 신뢰를 미끄러뜨리는 이 절벽을, 이윤은 위로 올리고 위험과 책임은 자꾸 아래로만 보내는 이 가파르고 위험한 기울기를 어떻게 푸나. (본문 17쪽 중에서)

본문에 실린, 작가 김애란씨가 쓴 글의 일부분이다. 지나치게 냉소적이지 않으면서도 분노에 찬 글을 쓰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책장을 넘기는 내내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이라는 제목처럼, 지난 봄에 기울어가던 배가 드러낸 사회의 민낯과 슬픈 현실을 특유의 간결한 문장으로 담았다.

시인 김행숙씨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시 구절을 인용하면서, '가짜 평온'으로 문제를 무시한 채 일상을 계속 전진시키려는 움직임을 꼬집는다. 그러는 동시에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고백을 어렵게 토해내듯 묵직하고 짧은 문장으로 옮겨적었다. 줄이자면 사고가 보여준 공적영역의 무능, 유가족을 향한 폭력 등 모든 것이 '오작동'이라는 이야기다. 힘없는 국민들이 참담하게 지켜보았던 것을 일컬어 "이것이 국가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냐고 묻고 있었습니다"라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가 아닌 사건'

<눈먼 자들의 국가>의 표지사진.
 <눈먼 자들의 국가>의 표지사진.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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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민규씨는 더욱 신랄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을 보여준다.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문장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프게 와닿으면서 현실을 향해 날린 비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고 직후에 유가족에게 둘러대느라 거론된 '에어포켓'과 '구조에 투입된 수백척의 함정'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선거가 여당의 승리로 끝나고 그들의 태도가 돌변했음을, 진상규명의 과정이 점차 흐려져가는 것을 거론한다. 누군가는 잊혀지기를 바라는 많은 것들을, 하나씩 차례로 다시 꺼내보이는 셈이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하나의 큰 '사건'을 일상적인 '사고'로 몰아가려는 프레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뒤에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여기는 누구도 내릴 수 없는 배라고도 표현한다. 화물을 더 싣겠다고 불법적인 증축을 계속한 선박을, 탐욕에 눈이 멀어 근본적인 수리를 하지 않고 전진만 계속하려는 국가의 모습에 빗댄다.

작가 황정은씨의 표현은 더욱 절절하다. 그는 지난 여름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안산에서 여의도까지 꼬박 하루를 걸었던 기억과 광장에서 방치되고 있는 유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것을 쓰고 있는 오늘은 세월히 가라앉고 백육십 일째가 되는 날이다. 세월의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누군가의 이웃처럼 누군가의 부모처럼 혹은 누군가처럼, 평범하게 돈 벌어 자식 키우고 살던 사람들이 여름 땡볕에 새까맣게 타고 단식으로 여윈 채 거리에서 버티고 있다.

(중략) 이것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물을 것이 없고 아무것도 물을 수 없다고 썼으나 그 문장은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월은 질문없는 삶들, 무감한 삶들이 결정적으로 일조하고 말았고 여태도 일조하고 있는 참사다. 4월 16일에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고 그 날 이후 내내 거대한 괴물처럼 마디를 늘려가며 꾸역꾸역 이어지고 있는 참사다. 아무도 이것에서 달아날 수 없다. (본문 94~95쪽 중에서)

그는 어느날 갑자기 일상이 망가진 채로 거리로 나온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쌍용차 노동자들, 콜트콜텍 노동자들, 강정과 밀양으로 이어지는 닮은 삶들을 둘러본다. 세월호 참사와 이후 상황에 깊이 절망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광장에 나온 유가족을 보며 자신의 생각과 문장을 고쳐야겠다고 느낀 바를 썼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은 물음, 혹은 애타는 요구에 가까운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거대한 상처 이후에 이 사회에 대한 신뢰를 다시 가져도 좋을지, 누구든 좋으니 부디 응답해 달라고 말이다.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이제 '눈을 떠야 한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수학여행, 혹은 가족과 여행을 떠나다가 사고를 겪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월호에 탔다는 이유만으로 사고를 겪었고 300명이 넘는 인원이 사망했다. 선장과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뒤 탈출했고, 해경과 정부는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한 채로 그들이 가라앉는 동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공공성의 기능이 부실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우리가 굳건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실은 무기력하다고 드러난 '사건'이었던 것이다.

사고의 원인에 대한 물음이 정부를 향하자 누군가는 죽은 사람들을 탓하고, 유가족을 불순한 인물로 몰아갔다. 집단이 아닌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외부세력'으로 타자화하면서 자신의 정당성과 권위를 지키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충격적인 사건과 더불어 공권력의 무능과 집권세력의 오만함이 드러난 셈이었다. 그들을 믿었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바라던 것은 그런 허탈한 모습과 훨씬 거리가 멀었는데도.

본문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멋대로 '사고'로 규정짓고, 책임을 느끼고 '사과'를 한다면서 선거가 끝나자 유가족을 비난하는 정치인들의 언행을 비판한다. 작가들이 세계를 그려내는 도구인 '단어'를, 정치집단이 파렴치한 자기정당화를 위해 변질시킨 행위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듯 저자들이 굳이 현실정치를 직접 거론하며 비판한 이유는 결국 정치인들이 작가들에게 위기감을 던져준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가 보여준 모습은 이미 그 자체로 한 편의 '정치풍자코미디극'과 같았으니 말이다. 상상력의 발현이나 과장된 캐릭터 설정없이도 사람들을 분노하고 슬프게 한 정치인들은 문학과 현실의 경계가 어디인지 묻게 만들었다.

'사람'보다 '물질적 자산'을, 그래서 '안전'보다 '효율'을 우선시하는 나라에서 사고는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포장된다. 책의 제목인 <눈먼 자들의 국가>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이 아닌가. 끔찍한 사건마저 모두 묻고 넘어가자는 목소리가 퍼져가는 오늘날, 작가 박민규씨는 이에 대답하듯 적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고.

"가만히 있으라"며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적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려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그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윤에 '눈먼 자들의 행렬'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말처럼 눈을 감고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열 두명의 저자가 쓴 <눈먼 자들의 국가>는 세월호 참사를 담은 '기록'이면서 2014년 사회를 '기억'하기 위한 책이기에, 눈이 멀어버린 것처럼 어두워지는 이 세상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라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눈먼 자들의 국가> (김애란,김행숙,김연수,박민규 외 8명 / 문학동네 / 2014. 10. 06 / 5500원)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문학동네(2014)


태그:#눈먼 자들의 국가, #세월호 참사, #김애란 작가, #박민규 작가, #김연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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