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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뜨거운 태양 아래 무수히 많은 선인장이 지나갔다. 12시간을 달린 버스는 마침내 고요한 새벽에 와하카(OAXACA)에 멈춰 섰고, 생각보다 큰 도시 규모에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시내버스'라는 것을 타본 지가 대체 얼마만인지.

 유난히 두꺼운 벽은 두께가 2m에 달한다는데 지진에 견디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한다.
▲ 산토 도밍고 성당(Temple de Santo Domingo) 유난히 두꺼운 벽은 두께가 2m에 달한다는데 지진에 견디기 위해 설계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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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땅 위로 바짝 마른 풀들이 자리 잡은 와하카는 한 눈에도 중앙 유럽을 떠올리는 풍경을 지녔다. 으리으리하게 늘어선 교회들이 그렇고, 골목마다 가득한 노천카페와 예술을 사랑하는 정서가 그렇다.

중앙광장인 소칼로(Zocalo)에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하나를 택해 걸어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알칼라 거리였다. 식민시절에 지어진 석조건물들이 늘어선 그 거리에는 크고 작은 갤러리와 기념품가게들이 많았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산토도밍고 성당이었다.

 - 멕시코 전역에서 가장 화려하기로 유명한 산토도밍고 성당의 내부는 전부 도금으로 칠해져 있으며, 천정과 벽에는 빈틈없이 성당벽화가 그려져 있다.
▲ 산토 도밍고 성당의 내부 - 멕시코 전역에서 가장 화려하기로 유명한 산토도밍고 성당의 내부는 전부 도금으로 칠해져 있으며, 천정과 벽에는 빈틈없이 성당벽화가 그려져 있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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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도시의 수준을 뽑내기라도 하듯 우뚝 솟은 산토도밍고 성당은 그 위용이 대단했다.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의 내부는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제단의 상당 부분은 실제 금으로 칠해져 있으며, 삼면의 벽이 입체적인 부조로 틈도 없이 채워져 있었다. 빼곡하게 자리잡은 천장의 벽화는 자연스레 바티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 콜로니얼 도시로서 세계문화유산도시에 오른 여타 도시가 그렇듯, 와하카도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 와하카의 거리 풍경 - 콜로니얼 도시로서 세계문화유산도시에 오른 여타 도시가 그렇듯, 와하카도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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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와 이어지는 골목에서는 2층 단층의 아름다운 집들이 이어졌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인적이 드문 거리의 건물들은 가득 비치는 햇살을 받아 너무나도 또렷하게 그 색을 빛냈다. 걸어도 걸어도 이어지는 오랜 석조건물들은 별일 없는 여행자로 하여금 한 몇 달간 이 도시에 머무르게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 이 도시 출신 독재자 디아즈의 지원하에 만들어진 알칼라 극장은 와하카 뿐 아니라 멕시코 전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 마세도니오 알칼라 극장(Teatro Macadonia Alcala) - 이 도시 출신 독재자 디아즈의 지원하에 만들어진 알칼라 극장은 와하카 뿐 아니라 멕시코 전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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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 이르렀을 때는 그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초콜릿 빛깔의 건물 아래 노천카페에서 맑은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커피 한 잔, 골목을 돌아돌아 또 다시 마주친 여행자와는 악수를 나누고 금세 친구가 되어 지나간 일들을 나누고 다가올 주말을 이야기할 것이다. 해가 지면 와하카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건물인 마세도니오 알칼라 극장(Teatro Macadonia Alcala)에 들러 오페라 한편에 취해 키스를 나누는. 그 풍경들 사이에서 나를 꾀는 것은 다름아닌 거리의 음식이었다.

세계 최고의 거리 음식

와하카의 거리 음식은 간식이라기 보다 주식에 가깝다. 노점상은 도시의 격자 도로에서 지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레스토랑 주인이 부러워할 만큼 단골손님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음식 타말레(Tamales)를 비롯해 단맛이 나는 옥수수음료 참푸라도(Champurrado), 종류가 스무 가지도 넘는다는 소스 몰레(Mole) 등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 와하카의 길거리를 장악한다.

 - 남북으로 길게 뻗은 광장의 끝에서 끝까지 온갖 음식과 잡화를 파는 노점상으로 가득채워져 있다.
▲ 소칼로 광장의 노점상 - 남북으로 길게 뻗은 광장의 끝에서 끝까지 온갖 음식과 잡화를 파는 노점상으로 가득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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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장사진이 끊이질 않는 소칼로 광장에 늘어서 있는 거리음식점을 보면 열린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광장의 거대한 나무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펼쳐진 거리의 끝에서 끝까지 늘어선 가게들은 어림잡아도 100여 곳은 되어 보였다.

음식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했지만 시작은 역시 전통의 타코(Taco)다. 잔뜩 달궈진 불판 위에서 방금 구워진 토르티야(Tortilla)에 속을 가득 채워 먹는 타코야 말로 멕시코 음식의 1인자다. 하나에 천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은 그야말로 첨상첨화다.

츄러스, 화이타, 엔칠라다 등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수많은 음식들이 거리를 장식하지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며칠간을 거리를 멤돌았지만 결국 다 먹어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 쵸리소(Chorizo)라도 불리는 멕시코의 돼지고기 소세지는 매콤한 맛이 더해져 우리 입맛에 잘 맞다.
▲ 와하카의 수제 소세지 - 쵸리소(Chorizo)라도 불리는 멕시코의 돼지고기 소세지는 매콤한 맛이 더해져 우리 입맛에 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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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식탐은 거리의 이름을 그대로 딴 와하카의 전통시장, 11월 20일 시장(Mercado 20 De Noviembre)에서 벌어진다. 시장 외곽의 거리에서는 소시지를 주렁주렁 널어놓고 판다. 한 켠에서는 늘어난 고기 집이 매캐한 냄새를 피워대며 고기 굽기에 한창이다. 쵸리소(Chorizo)라고 불리는 멕시코의 소시지는 짜서 도저히 생으로는 먹을 수 없는 유럽의 소시지와 달리, 적당히 매운 맛이 가미되어 내 입맛에는 그만이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둘러봐야 될지 몰라 길 잃은 사람처럼 우왕좌왕하던 차에 말로만 듣던 메뚜기 볶음과 마주쳤다. 여러 개의 바구니에 나누어진 메뚜기가 뭐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혀를 내밀고 손을 휘저어댔다.

아무래도 매운 맛을 뜻하는 듯했다. 콧수염을 잔뜩 기른 남자가 와서 한 봉지 가득 메뚜기를 담아갈 때까지도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고, 최종 미션은 나중에 치르자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시계방향으로 메뚜기 볶음, 옥수수 잎으로 쩌낸 타말레, 멕시코 고유의 소스인 몰레와 몰레소스를 얹은 돼지고기 요리.
 시계방향으로 메뚜기 볶음, 옥수수 잎으로 쩌낸 타말레, 멕시코 고유의 소스인 몰레와 몰레소스를 얹은 돼지고기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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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깻잎에 무언가를 싸놓은 것 같은 타말레(Tamale)는 우리네 만두처럼 푹신푹신한 질감이 일품이다. 한참 입시름 끝에 알아낸 녹색 잎의 정체는 옥수수잎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한 옥수수의 맛과 속에 든 고기의 맛이 어우러져 달달한 만두같은 맛이 난다.

멕시코 최고의 소스라는 '몰레(Mole)'는 또 어떠한가. 우리네 김치처럼, 멕시코 31개 주에서 저마다 다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 낸단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개의 몰레 중 하나를 고르고 야채와 고기를 골랐다. 바로 옆에 놓인 긴 식탁에 앉아서 주문한 것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은 야채를 잘게 썬 국물에 몰레를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적당히 걸쭉한 몰레가 부어진 돼지고기를 허겁지겁 입에 넣어보니 듣던 대로 초콜릿의 단맛과 살짝 매운맛이 곁들여졌다. 그런 내가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없이 엄지 손가락을 세웠더니 그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먹는 것뿐이었지만 왁자지껄한 시장의 분위기가 좋아 덩달아 즐겁다. 끝내 메뚜기 볶음은 시도하지 못했지만 유럽의 예술혼을 가졌다는 와하카의 진짜 예술은 바로 이 음식일지도 모른다.

점점 더 밝아지는 와하카의 밤

 -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와하카는 7개월간 여행을 하면서 흑백사진을 찍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장소였다.
▲ 흑백이 어울리는 도시 -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와하카는 7개월간 여행을 하면서 흑백사진을 찍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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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조류의 울음소리가 고요하게 도심의 숲길을 지나 위로 올라간다. 시내로 들어서기 전의 와하카의 밤은 한적하고 고요했지만 차츰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도착한 소깔로 광장은 향긋한 냄새로 걸음을 멈추게 하던 상인들이 없어졌을 뿐, 여전히 흥겹다.

영롱한 빛을 깜빡이는 가로등은 거리의 화려한 색깔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옷을 갈아 입힌다. 소깔로 광장에서 이어진 어느 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문득 내가 오래된 흑백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흑백으로 사진을 찍는 동안, 그렇게 색을 잃어버린 거리에서 차분한 밤이 깊어간다.

 - 소칼로 광장의 정원(위), 규모로는 가장큰 와하카 대성당(왼쪽 아래), 알칼라 극장의 눈부신 야경(오른쪽 아래)
▲ 와하카의 화려한 야경 - 소칼로 광장의 정원(위), 규모로는 가장큰 와하카 대성당(왼쪽 아래), 알칼라 극장의 눈부신 야경(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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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등롱이 빌딩숲 대신 광장 가득 정원을 비추고, 풀벌레들의 낮은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그곳에다 창을 내고 싶었다. 작은 액자가 올려진, 화려하지 않은 탁자를 놓고 오른쪽으로는 요정의 정원 같은 숲이, 왼쪽으로는 여전히 햇살이 쏟아지는 듯한 착각이 드는 커다란 성당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곳에서 아침을 맞는다면, 새벽에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에게도 안녕을 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쩐지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이 그립지 않습니다"라고 적힌 그 답장이 오리라는 것을. 무엇이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턱밑까지 눈꺼풀이 내려왔을 때처럼 머리 속에서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참 뒤에 정신이 들고 내가 발견한 것은 그녀의 이름만이 반복해서 쓰여진 엽서 한 장이었다. 그 아름다웠던 와하카의 밤, 내 손가락 마디마디로 비가 내렸다.

간략여행정보
멕시코를 방문한 당신이 꼭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는, 수도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달린 뒤 도착한 와하카에서 먹고, 먹고, 또 먹는 일이다. 멕시코 남서부의 고원도시인 와하카는 원주민의 전통과 문화가 진하게 남아있으며 무엇보다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도시를 둘러싼 산맥으로 오랜 시간 고립된 이곳에서 전통음식이 발달한 것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먹거리는 와하카 전역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도시의 중심인 소칼로 광장에서 십자로 흩어져 있는 거리가 중심이다. 촘촘하게 들어선 거리음식점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종일 같은 거리를 멤돌며 양손 가득 타코를 집어 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음식의 재료를 굳이 알려고 하지 말자. 메뚜기와 애벌레는 물론이고 전갈까지, 와하카에서 먹지 못하는 것이란 없다.

좀 더 자세한 와하카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6758449



태그:#와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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