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독재자>의 한 장면.

영화 <나의 독재자>의 한 장면. ⓒ 반짝반짝영화사


* 이 기사엔 영화의 일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이 영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의 독재자>라는 제목이 주는 이중적인 의미처럼 영화는 2014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시대와 개인에 대한 감성을 짚어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그리고 한 가정의 지붕인 아버지라는 존재는? 영화는 이 두 질문에 깊이 천착한 모양새다.

헌법에서 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의는 간명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풀어 말하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이 직접 주권을 갖고 원수를 뽑는다는 의미다. 사상의 자유와 활동의 자유가 있으며, 헌법 안에서 이 모든 자유를 보장받고 국민적 의무 또한 갖고 있다. 

<나의 독재자>에서 무명 연극배우 성근 역을 맡은 설경구는 "연출을 맡은 이해준 감독과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괴롭히고 퍼부었다"며 촬영 뒷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단순한 아버지 역할이었다면 그리 예민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성근이라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무게감과 상징성이 크다는 의미다.

아버지와 아들, 오랜 시간 화해하지 못한 이들의 뒷모습

만년 무명 연극배우였던 성근은 1972년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대역을 국가로부터 제안 받는다. 아버지 배역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아버지를 따랐던 아들 태식(박해일 분)은 점차 김일성을 내면화해가는 성근을 점점 마음으로 거부하게 된다.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감금을 버티던 성근이 어느새 망상증에 빠져 진짜 독재자 김일성이 돼 있었던 것.

22년 후 다단계 판매 임원이 된 태식은 아버지를 부정한다. 자신의 인생 또한 내버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태식을 짝사랑하던 여정(류혜영 분)이 부자 관계의 변수가 되고, 성근에게 국가적 폭력을 가했던 중앙정보부 출신 오계장(윤제문 분)과 허교수(이병준 분)가 또 다른 자극으로 작용한다.

 영화 <나의 독재자>의 한 장면.

영화 <나의 독재자>의 한 장면. ⓒ 반짝반짝영화사


가족을 버린 아버지는 말 그대로 실패한 독재자였다. 영화는 그 아버지라는 존재의 본질을 저버리지 않는다. 성근과 태식의 관계, 여정과 태식의 관계, 그리고 오계장-허교수-태식의 관계를 교차하며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실들을 하나씩 드러낸다.

영화는 유난히 아버지 성근의 뒷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앞이 아닌 뒷모습이야말로 어쩌면 한 인생의 모든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진짜 표정일 터. 영화가 쌓아왔던 묵직한 감정은 이러한 성근이 준비한 일생 최고의 연기를 통해 터진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이름의 '헌법' 안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권리를 누렸던 태식은 서서히 아들로서의 의무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이해준 감독의 복귀, 반쪽 가족을 통해 시대를 바라보다

설경구와 박해일의 좋은 호흡도 영화의 미덕이지만 이해준 감독의 복귀도 반갑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김씨 표류기> 등의 각본과 연출을 맡으며 독특한 감성과 감동을 전했던 이해준 감독은 5년 만에 신작을 내놓으며 관객과 소통을 기다리고 있다.

이해준 감독이 보였던 장기는 설득력 있는 인물 설정이다. 단순히 개성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시대적 상징성을 외면하지 않으며 풀어간다는 게 특징이다. 그것도 꽤 세련된 방식으로 말이다. 앞서 언급한 <천하장사 마돈나>가 성적 소수자의 유쾌한 도전기라면, <김씨 표류기>는 사회에서 밀려난 외톨이에 대한 찬가였다. 두 작품 모두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메시지도 간과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영화 <나의 독재자>의 한 장면.

영화 <나의 독재자>의 한 장면. ⓒ 반짝반짝영화사


이해준 감독은 <나의 독재자>를 통해 시선을 편부모 가정으로 옮겼다. 개인사의 비극뿐만이 아니라 국가 폭력으로도 망가진 한 아버지를 내세웠다. 망가진 아버지를 통해 감독이 그린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었다. 이 또한 이해준 감독 특유의 장기를 발휘한 결과로 보인다.

가족을 저버린 것 같았던 <나의 독재자>의 성근은 실로 위대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걸로만 끝났다면 <나의 독재자> 역시 기이한 가족 영화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대를 바라봤다.

1972년 이후 22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건재하며 오히려 장관 자리에까지 오른 오계장과 짱짱하던 목소리와 공력으로 성근의 연기를 지도했던 허교수가 허름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말년을 보내고 있다는 설정을 기억하자. 곧 독재의 그림자가 엄현하게 현재에도 드리우고 있음을 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설정은 무늬만 민주주의가 돼버린 2014년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 작용한다. 그래서 영화는 묻는다. 차가운 시대의 아픔을 이길 힘이 과연 무엇이냐고. 성근이 태식을 품고 태식이 점차 마음을 여는 과정과 태식이 눈물로 각성하던 순간에 해답의 실마리가 있어 보인다.  

나의 독재자 설경구 박해일 류혜영 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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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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