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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폭발하여 수십명이 사망한 일본 기후현 온타케 화산.
 지난 9월 27일 폭발하여 수십명이 사망한 일본 기후현 온타케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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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온타케 화산입니다. 여전히 화산이 연기를 뿜고 있군요."

일본 북알프스 야리가다케(3180m) 정상에서 일본인 다니가키씨가 담담히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구름 위로 우뚝 솟은 채 뭉게뭉게 연기를 피워 올리는 온타케산(3067m)이 보였다.

지난 10월 1일부터 5일까지 4박5일 동안 '일본 북알프스'의 야리가타케(槍ヶ岳)와 그 주변의 산악 명승지인 카미코지(上高地)를 여행했다. 여행을 앞두고 난생 처음으로 해외산행을 한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그러던 중 9월 27일 전해진 온타케산(御嶽山)의 화산폭발 소식은 날벼락이었다.

화산폭발로 등산객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온타케산은 나의 산행 목적지인 일본 북알프스가 있는 나가노현과 인접해 있다. 회사 동료들은 떠나기 전까지 나를 염려했고 어머니는 출국을 결사 반대했다.

'가는 날이 장날' 첫 해외산행에 화산폭발 소식이라니...

바바다이라 캠핑장에서 바라본 일본 북알프스. 서양 선교사 웨스턴은 3000미터급 봉우리와 만년설, 탁트인 풍광이 유럽의 알프스와 비슷하다 해서 일본 알프스라 명명했다.
 바바다이라 캠핑장에서 바라본 일본 북알프스. 서양 선교사 웨스턴은 3000미터급 봉우리와 만년설, 탁트인 풍광이 유럽의 알프스와 비슷하다 해서 일본 알프스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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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노현 카미코지 국립공원
 일본 나가노현 카미코지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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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반대는 출국 전날까지 계속됐다. 여행 배낭을 점검하는 내게 연신 가지 말라고 호소했다. 결국 나는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이튿날 어머니가 깨기 전에 서둘러 배낭을 메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북알프스로의 여정은 험난했다. 내가 탄 비행기는 인천공항에서 2시간여를 날아 나고야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다시금 전철과 기차를 갈아타고 마츠모토(松本)라는 나가노현의 작은 도시를 거쳐 신시마시마((新島々)까지 이동했다.

신시마시마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일본 북알프스 들머리인 '카미코지'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도합 8시간이 걸려 도착한 '카미코지'는 높은 산에 둘러싸여 금세 어둑해졌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아즈사가와(梓川)강의 물소리만 나를 반겼다.

'일본 북알프스'는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한 나가노현 히다산맥(飛騨山脈)의 3000미터급 높이의 야리가타케, 오쿠호타카케((奧穗高岳, 3190m), 다테야마(立山, 3015m) 등으로 구성된 산무리(山群)를 말한다. 주변의 카미코지와 함께 일본 중부산악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웨스턴'이라는 영국인 선교사가 히다산맥을 등반한 후 그 풍광이 유럽의 알프스와 닮았다고 극찬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카미코지'는 북알프스의 들머리로 강원도 설악산의 입구인 설악동과 비슷한 곳이다. 히다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아즈사가와 강을 따라 울창한 숲길이 수십 km에 걸쳐 이어진다. 카미코지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코나시다이라(小梨平) 캠핑장에 텐트를 폈다. 캠핑장 사무실에 캠핑장 사용신청서를 작성하고 지불한 사용료는 800엔. 우리 돈으로 8천 원 정도였다.

텐트 지퍼소리도 신경 쓰이는 조용한 일본 캠핑장

일본 북알프스 산맥과 아즈사와강이 흐르는 카미코지 코나시다이라 캠핑장. 1박 사용료는 800엔(우리 돈 약 8000원)이다.
 일본 북알프스 산맥과 아즈사와강이 흐르는 카미코지 코나시다이라 캠핑장. 1박 사용료는 800엔(우리 돈 약 80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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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저녁 무렵이지만 캠핑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캠퍼들의 텐트는 아담했다. 대형텐트를 치고 캠핑그릴에 고기를 구우며 시끌벅적한 우리네 캠핑장과는 사뭇 달랐다. 캠퍼들 대부분이 북알프스 등산이 목적인 듯했다.

가족끼리 온 캠퍼들도 있었는데, 조용히 모닥불을 피워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정도였다. 그 고즈넉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텐트 출입문의 지퍼를 여닫을 때마다 소리를 죽이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게 고요한 코나시다이라 캠핑장에서 일본 북알프스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여전히 잔설이 남아 달빛에 빛나는 수천 미터의 산봉우리를 이불삼고 강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꿀같이 달게 잤다.

다음날 아침 새소리에 일찍 눈을 떴다. 아침을 먹고 짐을 정리하며 맞은편에 텐트를 쳤던 젊은 일본 청년에게 야리가타케까지의 등반거리와 시간을 물었다. 그는 10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걸으면 야리가타케 정상 바로 밑에 있는 야리가타케 산장까지 당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내일 비소식이 있어 정상 등정과 일출 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바위산이라 비가 오면 미끄러워 위험하기 때문에 산장관계자에게 위험 여부를 꼭 묻고 등반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내게 "야리가타케는 일본 등산 애호가들이 꼭 한 번은 올라 일출을 보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일출을 보기는 어려운 곳"이라며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일본의 상징 후지산?... "야리가타케가 가장 오르고 싶어하는 산"

일본 북알프스 야리가다케 정상에서 바라본 일본 최고봉 후지산.
 일본 북알프스 야리가다케 정상에서 바라본 일본 최고봉 후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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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오코 산장을 지나 등산로에서 만난 야생 원숭이.
 요오코 산장을 지나 등산로에서 만난 야생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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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을 상징하는 산은 후지산이다. 후지산은 일본의 최고봉(3776m)으로 눈 덮인 정상 모습은 일본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2008년 이후 매년 30만 명 이상의 일본인과 관광객이 후지산을 오른다. 덕분에 201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후지산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사람은 바보다, 그러나 후지산을 두 번 오른 사람도 역시 바보"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이는 신격화된 후지산의 이미지와 달리 바위와 흙투성이인 후지산이 등반의 매력은 떨어지는 점을 비꼬는 말이다.

후카다 규야(深田久弥)라는 일본의 작가는 <일본의 100대 명산>이라는 책을 통해 일반 사람들이 후지산에 올라가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라면 등산에 눈을 뜬 이들은 야리가타케 정상에 서는 것이 바람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이번 북알프스 등반 도중 만난 일본인들은 '등산을 좋아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야리가타케가 가장 오르고 싶어하는 산'이라고 말했다.

일본 북알프스 등산에서 만난 노부부.
 일본 북알프스 등산에서 만난 노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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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나시다이라 캠핑장에서 출발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해발 2000미터 이전까지는 설악산 수렴동의 풍경과 비슷하다. 다만, 산세가 더 깊고 원시적인 느낌이다. 코나시다이라 캠핑장을 시작으로 카미코지에는 약 2km마다 묘진((明神)산장, 도쿠사와(德沢)산장, 요오코(橫尾) 산장이 있다. 산장마다 주변에 캠핑장이 있다.

중년의 산행객들이 압도적인 한국과 달리 북알프스에서 만난 일본 등산객들 열에 아홉은 지긋하게 나이든 노인들이었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 자기 키만한 배낭을 메고 산행을 해 상당히 놀랐다. 산행을 하다 날이 지면 캠핑장을 찾아 텐트에서 잠을 자고 산에 오른다고 했다. 한국처럼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산행하는 모습은 드물었다.

일본에서는 등산 중 무리지어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떠들썩한 '풍류'는 없었다. 산장 쉼터에서 조용히 주먹밥이나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을 해먹는다. 산행 중 만난 일본 등산객들은 대부분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받고 무시할 수 없어 나도 이날 '곤니치와'를 수백 번 외쳤다.

코나시다이라 캠핑장에서 1시간 가량 걸으면 묘진산장(明神館)에 도착한다. 코나시다이라캠핑장에서 요오코 산장까지는 평이한 트레킹 코스로 10km 남짓 거리다. 각 산장마다 화장실이 갖춰져 있고, 간단한 식사와 숙박도 가능하다. 일본인들은 보통 카미코지를 시작으로 2박3일의 일정으로 일본 북알프스에 오른다.

꽃비처럼 흩날리는 낙엽... 달달한 10월의 북알프스 숲길

카미코지에서 야리가다케로 오르는 숲길. 평이한 트레킹 코스로 일반인도 산책하기 좋다.
 카미코지에서 야리가다케로 오르는 숲길. 평이한 트레킹 코스로 일반인도 산책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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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잔디밭에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도쿠사와 캠핑장.
 너른 잔디밭에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도쿠사와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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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 사이사이로 숲길이 울창하다. 길은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가족끼리 오더라도 산행이 부담스러운 이들은 가벼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내가 갔던 10월 초는 단풍이 절정이었다. 산행길 내내 가을바람에 낙엽이 꽃비처럼 흩날리고 계수나무의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도쿠사와 산장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서양식으로 지어진 카페와 푸른 잔디밭에 알록달록한 텐트가 펼쳐진 도쿠사와 캠핑장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아름드리나무로 가꿔진 캠핑장 잔디 위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였다.

카미코지에서 시작된 평이한 길은 요오코 산장 입구에서 끝났다. 요오코 산장 입구에는 올해 일본 북알프스 야리가다케 산행에서 발생한 산악사고 집계표가 게시되어 있었다. '북알프스 남부지구 조난방지대책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1일까지 75건의 산악사고가 발생했다.

이중 부상이 44명, 무사구출이 31건이었다. 올해 일본 북알프스를 오르다 사망한 이들은 14명. 야리가다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설렘 만큼이나 두려움도 조금씩 커졌다.


태그:#일본 북알프스, #카미코지, #야리가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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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이 서서히 물러갈 때, 이 봄날의 꽃이 자신들을 위해 화사하게 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자신을 지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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