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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모습.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모습.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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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선명령은 아예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뤄지지 않은 것일까.

막바지에 이른 세월호 선원들의 공판(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에서 퇴선명령 여부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껏 '퇴선명령은 없었다'가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졌지만, 몇몇 선원들이 법정에서 "퇴선명령은 있었다"라며 검찰과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퇴선명령은 선원들의 살인혐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문제다. 검찰은 지난 5월 이준석 선장 등 4명을 살인죄로 기소하며 공소장에 "피고인들은 승객들에게 대피 또는 퇴선명령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선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할 수 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묵시적 교감 하에 자신들만 퇴선하기로 상호 공모했다"라고 밝혔다. 살인 고의가 있었기에 퇴선명령을 일부러 안 했다는 뜻이다. 법정에 나온 생존자들도 하나 같이 "퇴선명령은 없었다"고 증언했다(세월호 생존자 증언 바로가기).

그런데 4월 16일 세월호 조타실에 있었던 선원들의 진술은 엇갈린다. 당시 그곳에는 이준석 선장과 강아무개·신아무개 1등 항해사, 김아무개 2등 항해사, 박아무개 3등 항해사와 박아무개·오아무개·조아무개 조타수, 박아무개 기관장 그리고 필리핀인 가수 부부 등 11명이 있었다. 이 가운데 중간에 조타실을 떠난 박 기관장과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필리핀인 가수 부부를 제외하면 퇴선명령에 관해 증언할 수 있는 선원은 모두 8명이다.

[했다] "퇴선명령 있었다... 사무장에게 무전으로 전달"

절대 다수인 5명은 퇴선명령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4월 19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때부터 "퇴선명령을 내렸다"라고 말했던 이준석 선장은 법정에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10월 8일 피고인 신문 당시 그는 "김아무개 2등 항해사에게 퇴선명령을 내렸고, 분명히 했다는 보고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 선장이 퇴선명령을 지시했다는 김아무개 2등 항해사의 진술도 마찬가지였다.

"선장인지 누군지 모르지만 (퇴선명령) 지시를 듣고 양대홍 사무장에게 전달했다. 무전기로 사무장을 불렀는데 대답을 안 해서 계속 '사무장, 사무장 감도 있어요? 승객들 탈출시키세요, 탈출방송하세요'를 반복했다(10월 14일 피고인 신문)."

나머지 세 명은 이 광경을 목격했다는 강아무개·신아무개 1등 항해사와 조아무개 조타수다. 강 항해사는 10월 8일 공판 때 "조타실에서 나가기 한 10~15분 전에 2등 항해사가 '퇴선할까요?' 물었더니 선장님이 '그래라, 퇴선해라'는 식으로 얘기했다"라며 "그래서 2등 항해사가 (무전으로) 사무장을 불러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분명히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10월 1일과 10월 14일 각각 신문을 받은 조아무개 조타수와 신아무개 1등 항해사의 진술 역시 비슷했다.

[안 했다] "이준석 선장이 퇴선명령 등을 정확히 지시한 적 없다"

다른 선원들 가운데 두 명은 "퇴선명령은 없었다"라고 말한다. 박아무개 3등 항해사는 10월 6일 피고인 신문 때 "이준석 선장이 선원들에게 비상조치 명령이나 퇴선명령 등을 정확히 지시한 적 없다"라고 말했다.

박아무개 조타수의 경우 10월 20일 "제가 구명벌을 터뜨리러 조타실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조타실에서 승객 탈출이나 퇴선 관련 얘기를 한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또 검찰 조사에선 선장이나 다른 선원들의 퇴선명령 주장을 두고 "적절한 때를 놓쳐 퇴선방송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책임회피를 하려고 거짓말하는 것 같다"라고 진술했다.

현재로서 '퇴선명령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쪽이 한 발 앞서 있다. 일단 상대적으로 많은 선원들의 진술이 같다. 또 조타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박아무개 항해사가 사고 당시 계속 조타실 한쪽에 쪼그린 채 울고만 있었다고 증언했다. 박아무개 조타수는 "구명벌을 빨리 터뜨리러 나가야 해서 다른 사람들이 지시내리고 대화하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안 썼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이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검찰의 살인죄 입증은 어려워진다. 살인의 고의 여부 판단은 피고인의 생각이 어땠는지를 따지는 일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이준석 선장 등 살인죄로 기소당한 선원들이 살인 의도가 있었다고 볼 결정적 '물증'이 없다. 다른 선원들의 진술 등 정황뿐이다. 이 상황에서 재판부가 선원 다수가 주장하듯 '퇴선명령 실패'라고 본다면, 선원들에게 살인할 뜻이 있었다는 검찰 주장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퇴선명령 했어도 문제... 재판부의 결론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모습.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모습. 사진은 해양경찰청이 공개한 구조작업 모습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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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퇴선명령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이준석 선장은 4월 16일, 최초로 해경에서 조사를 받았을 때 "퇴선명령을 안 한 게 아니라 해경이 빨리 나오라고 해서 못했다"라고 했다. 이후 검찰 조사에선 진술을 번복했다(관련 기사 : 마침내 입연 선장... "판단력 떨어지고 무능했다").

퇴선명령이 있었다는 다섯 명 가운데 이준석 선장, 강아무개 1등 항해사, 김아무개 2등 항해사가 살인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 역시 그들 주장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재판부의 결론이 '퇴선명령 실패'로 난다고 해도 선원들의 책임이 가벼워지진 않는다. 강 항해사와 김 항해사는 법정에서 "무전기로 퇴선명령을 지시했는데 양대홍 사무장이 응답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강 항해사는 "퇴선명령이 (승객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걸 알고 있었다"라고, 김 항해사는 "사무장이 응답 없었지만 다른 사무부원들이 들었다고 생각해 더 묻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남은 조타실 선원, 오아무개 조타수의 피고인 신문은 21일부터 시작된다. 10월 27일 결심공판까지 마치더라도 재판부는 판결문에 마침표를 찍는 날까지 선원들의 진술을 따지고 또 따져야 한다. 과연 누가 재판부의 믿음을 얻을 것인가.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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