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산크리토발에서 버스로 30분거리인 차물라는 아직도 마야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마을이다.
▲ 차물라 마을의 광장 - 산크리토발에서 버스로 30분거리인 차물라는 아직도 마야의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마을이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좁은 승합차 안은 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도 두꺼운 모직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정해진 좌석이 모두 채워지자 운전 기사는 솔 잎으로 가득 찬 포대 자루를 차 안 가득 밀어 넣었다. 문득 나 혼자만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괜한 걱정이 밀려왔지만 버스는 이미 복잡한 시장통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들이 카메라를 피하는 이유

기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마야, 잉카의 후손이라는 인디오들을 좀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었다. 전 세계 어디든 언제나 소수 약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원주민들을 보는 것은 단순히 신기해할 일만은 아니다. 다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마야의 후손인 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접해 보고 싶었다.

좁은 승합차를 타고 도착한 마을 차물라(Chamula)는 그야말로 '변경 지대'다. 동네에서는 어디서든 고개를 돌리면 능선이 보였다. 시골도 이런 시골이 없다고 할 만한 깡촌. 흔한 네온사인 하나 없이, 밤에는 별빛을 가로등 삼아 운전해야 하는 그런 곳이다. 이 마을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광장에 모여 앉은 인디오들은 물건을 팔거나 짐을 나르거나, 둘 중 하나다.

습관처럼 카메라를 들자 어디선가 막대기가 날아와 등을 후려친다. "노 카메라"라고 짧게 얘기한 남자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는 다시 멀어져갔다. 차물라에서는 어디서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면 난리가 난다. 어린 아이들은 싱코페소(5페소, 500원)를 외치며 손을 내민다. 여럿에게 걸리는 날에는 가격은 풀쩍 뛰어 20페소를 내놓으라고 한다.

단돈 500원이니 주면 그만이지만, 달라고 하면 주기 싫은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딱히 마을의 규칙은 아니고 인디오들의 믿음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야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은 카메라에 찍히면 영혼이 달아난다고 믿는단다.

 - 수천개의 촛불 앞에서 모여앉아 콜라를 온몸에 뿌려대는 산후안 교회 내에서 사진촬영을 하다가는 무슨 험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
▲ 산후안(San Joan) 교회 - 수천개의 촛불 앞에서 모여앉아 콜라를 온몸에 뿌려대는 산후안 교회 내에서 사진촬영을 하다가는 무슨 험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광장에 있는 산후안(San Juan) 교회에 들어서면 카메라를 노려보는 눈길은 더 심해진다. 편의상 교회라고 하지만 기묘한 무늬와 묘하게 생긴 녹색 십자가로 장식된 건물은 가톨릭에서 말하는 '교회'와는 다르다. 외국인에게만 부과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 보니 내부는 더욱 가관이다.

이상한 모양의 조각으로 가득 차 있는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보통의 교회에 있는 성인의 모습과 달리, 그을리고 녹아내려 흉흉한 모습의 조각들이 투명한 관속에 들어간 채 벽을 가득 메우고, 그 앞에 놓인 수천 개의 촛불만이 어두운 실내를 밝힌다. 두껍고 검은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을 외는 듯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읊조리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갈 곳을 잃은 촛불은 바닥까지 이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솔잎 위에서는 사람들이 콜라를 몸에 부어 바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가톨릭의 성수 의식 같다. 이들에게 콜라는 신성한 '성수'와도 같다.

생화와 솔잎으로 둘러싸인 세 개의 초록빛 십자가 앞은 그들의 신앙이 불붙인 무수한 촛불의 잔재로 뒤덮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닭이 목이 부러진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연기로 타들어 가는 그 광경 속에서 이들의 언어, 초칠(Tzotzil)어로 중얼거리는 그 모습이 마치 공포영화 속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마야인들이 그랬듯이 이 연기 속 어딘가에 아직도 벌떡벌떡 뛰는 사람의 심장이 올려진 그릇이 나타날 것처럼.

 - 전통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차물라 주민들의 실생활은 참담한 수준이다. 학교를 다녀야 할 어린아이까지 봇짐을 지고 물건을 파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 차물라 주민들의 생활 - 전통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차물라 주민들의 실생활은 참담한 수준이다. 학교를 다녀야 할 어린아이까지 봇짐을 지고 물건을 파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오직 신을 향한 삶... 뒤처진 것 아니다

연기 때문에 눈과 목이 따가워질 때쯤 교회를 빠져나가니, 커다란 솔잎 포대를 등에 진 인디오들이 곁을 지나친다. 좌판이 벌어진 쪽에서는 학교에 있어야 할 꼬마 아이들까지 봇짐을 둘러메고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외부 군대도, 경찰도, 심지어 도움의 손길마저도 거부한 채 살아간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후 4시 이후에 외부인이 차물라에 들어올 경우 목을 잘라버린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돈다.

이들은 자신들의 풍습에 따라, 태양이 제법 따가운 대낮부터 축(Chuc, 남자는 하얀색 양털조끼, 여자는 검은색 염소 털 치마)이라고 불리는 양털을 두른다. 어찌 보면 그들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강력한 표현인 셈이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자꾸만 시계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네 시가 되기 전에는 이곳을 떠나야 하니까.

사진 한 장 편하게 찍을 수 없는 그 거리를 지나치다가 어느 판잣집의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장화와 다 쓰러져가는 검은 널빤지들 사이로 난 문턱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묘하게 평화로워 보여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분명 시선은 마주치고 있지만 그녀의 눈은 어딘가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로지 전통과 신화에 따라 계절도 잊은 채, 단순하고 고요한 삶을 이어가는 그들은 우리와 동시대의 사람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높은 산 위에 올라서서 먼 곳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 교회 안에 신비에 가까울 정도의 무엇인가 꿈틀거리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은 일상보다는 신을 향해 살아가는 일이 먼저라고 믿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위아래를 가늠하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종일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니 그들을 뒤떨어졌다고 하지 말자. 거기에는 우리가 오래 전에 잃은, 신과 자연과의 교감에서 오는 근원적인 평화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랜 풍습대로 몸에 양털을 두른 여인은 다행히도 내 카메라를 보고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 차물라의 여인 오랜 풍습대로 몸에 양털을 두른 여인은 다행히도 내 카메라를 보고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 김동주

관련사진보기


간략 여행 정보
인디오 마을인 차물라로 가고 싶다면 투어보다는 산크리스토발의 중앙 시장 뒤편에서 출발하는 차물라 행 콜렉티보(승합버스)를 타자. 단돈 천 원, 30분이면 도착한다. 차물라에서는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때는 여러 번 주위를 살피고 돈을 요구하면 즉시 주는 것이 좋다. 제법 많은 여행자가 카메라 때문에 인디오들에게 습격을 받는다. 특히 산후안 교회 안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태그:#차물라, #산크리스토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