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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7일 월성원전 취수구 작업을 하다 숨진 잠수사 권아무개씨의 유족과 동료들이 16일 오후 한수원 본사에서 시신을 수습하게 해 달라며 농성을 벌였다.
 지난 9월 27일 월성원전 취수구 작업을 하다 숨진 잠수사 권아무개씨의 유족과 동료들이 16일 오후 한수원 본사에서 시신을 수습하게 해 달라며 농성을 벌였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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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3호기의 취수구 청소작업 도중 숨진 잠수부의 가족과 동료들이 20일이 넘도록 시신수습조차 해주지 않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며 16일부터 서울시 강남구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잠수부 권아무개(54)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취수구 격벽 설치 및 펄 제거 작업 사전조사를 위해 4개의 취수관 중 3번 취수관 쪽 6m 깊이의 물속에 들어갔지만 5분 만에 통신이 끊기면서 숨졌다. 월성원전 3호기는 냉각수를 빨아들이는 취수구 펌프가 왼쪽에 1·2번, 오른쪽에 3·4번 등 4개가 있다.

유족들은 권씨가 작업에 들어가기 전 작업지점과 가까운 거리에서 가동 중인 3호기 펌프의 작동을 중지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 당했다고 주장했다. 작업지점과 불과 1.5m 앞에서 프로펠러가 돌고 있어 위험하다며 1호기나 4호기 펌프를 대신 가동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한수원 측은 원전 가동을 위해서는 펌프의 작동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작업에 참여했던 동료는 "작업 전 회의를 하면서 3번 펌프 대신 멀리 떨어진 4번 펌프를 가동해 달라고 건의했으나 힘들다면서 조류가 위험할 정도는 아니니 1·2번 쪽으로 몸을 돌려서 주의하면서 작업하라는 지시를 받고 물속에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그는 "우리같은 잠수부들은 시스템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감독관의 지시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작업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해외 원전의 경우 냉각로 펌프 주변 작업을 할 경우에는 펌프 작동을 중단한 후 작업을 하지만 월성원전은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울진원자로의 경우에도 펌프 작동을 중지한 후 수중작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또 "원전정비업체인 한전KPS가 취수관 내부로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망을 설치하지 않고 작업을 하도록 해 사고가 났다"며 인재라고 주장했다. 한전KPS는 한국전력 자회사로 한수원의 하도급 업체이다.

동료잠수사인 고경영(45)씨는 "권씨는 자격증도 있고 베테랑이어서 유능한 잠수사"라며 "미리 안전조치를 요구했지만 어쩔 수없이 물속에 들어가 호스가 프로펠러에 말리면서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권씨가 숨진 후 시신 일부만 수습한 채 방관하고 있다며 한수원을 비난했다. 사고가 난 후 한수원이 설정한 구역에서만 시신을 수습하도록 하고 취수구 안쪽에는 확인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한수원의 처사에 대해 강하게 분노했다. 시신을 수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자 한수원의 한 간부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도로공사가 책임져야 하느냐"며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또 한수원 본사에서 농성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한전KPS가 고용한 노무사로부터 "한수원 앞에서 농성하면 산재 적용을 받지 못하거나 산재금액이 줄어드니 시위하지 마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권씨의 아들 권아무개군(19)은 "아버지가 작업 도중에 돌아가셨는데 시신이라도 수습해 장례를 치러드려야 덜 억울해하지 않겠느냐"며 "국민 목숨을 담보로 원전을 가동하는 한수원의 태도가 가증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7일 월성원전 3호기 취수구 작업을 하던 잠수사 권아무개씨가 사고로 사망한 후 시신이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다며 동료들이 16일 한수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9월 27일 월성원전 3호기 취수구 작업을 하던 잠수사 권아무개씨가 사고로 사망한 후 시신이 제대로 수습되지 못했다며 동료들이 16일 한수원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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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관여할 바 아니다" 외면

하지만 한수원 측은 책임을 한전KPS측에 돌렸다. 한수원 관계자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한전KPS가 알아서 유족들과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신 수습만이라도 해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관여할 바가 아니다"며 입을 다물었다.

이에 대해 한전KPS측은 유족들과 성실히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석용 한전KPS 홍보팀장은 "권씨가 작업에 들어가기 전 펌프 가동을 중지해 달라고 했다는데 담당자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며 "고인의 진술이라고 하지만 경찰이 조사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이 시신 수습을 요구한데 대해서도 "유족들이 사고현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말은 들었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서울에 올라와 시위를 하니 당혹스럽다. 공기업이라 협상의 여지가 좁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족들이 한수원 앞에서 농성에 들어가자 한전KPS측은 유족들에게 시신을 수습하는데 협조하겠다는 공문을 보낸 뒤 이날 오후 3시부터 사고가 난 취수구 주변을 수색했다. 하지만 2시간 만에 작업을 끝마쳤다.


태그:#월성원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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