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독일의 쾰른에 가면 팜스프링(Palm Spring)이라는 수영장을 갖춘 커다란 사우나가 있다. 우리나라의 물놀이 공원과 비슷하다. 입장료가 15유로에 시간제한이 없으니 수영도 하고 사우나도 즐길 수 있어 주말 피로를 풀기에 좋다.

쾰른도 관광지니 당연히 유럽의 각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곳 팜스프링에서 그들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다. 사우나로 모여든 게르만, 앵글로섹슨, 슬라브, 투르크, 아리안 등의 후예들은 커다란 키와 거대한 몸집, 그리고 온몸을 덥고 있는 털을 자랑한다. 과연 이들이 우리와 같은 종(種)의 피조물인가 싶다.

유럽연합의 수장은 독일이다. 프랑스가 보조를 맞춘다. 독일의 총리 메르켈과 프랑스의 전대통령 사르코지의 공동전선을 비꼬는 '메르코지'라는 말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같은 연합에 속해 있지만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의 가맹국들과 동유럽의 가맹국들이 메르코지의 정책노선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권한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유럽연합의 쌍두마차 중 사르코지가 실각하고 들어선 프랑스의 올랑드 내각은 독일의 신자유주의적 행보에 제동을 거는 모습이다.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표지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표지
ⓒ 책과함께

관련사진보기

유럽은 친환경, 사회복지, 인권, 안전, 여성 등의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최첨단 자본주의의 산물인 신자유주의와 거리를 두는 것으로 미합중국과 차별화된다.

하지만 이를 내재적 접근을 통해 유럽의 미래를 예측, 아니 염려하는 책이 출간됐다.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가 그 제목이다.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영국 상원의원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는 유럽연합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제3자의 눈 또한 가지고 있는 저자라고 할 수 있겠다.

유럽연합의 경제

유럽연합의 경제는 최근 5년 동안 계속적인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부채가 늘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실업률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독일은 오히려 유로존에서 혜택을 많이 입은 국가가 되었다. 이유는 임금 억제와 노동시장 개혁에 있다는 것인데, 저임금도 마다하지 않는 동유럽이나 남유럽, 터키 이민자들의 희생적 노동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부채 수준을 감안하면 반드시 성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성장 자체가 목적은 아니며, 성장의 품질과 분배도 중요하다. (중략) 일방적인 성장 또한 좋은 것이 아니다. 소주의 사람들만 만족시키는 성장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치가 없다." (p.83)

저자는 유럽연합에 소속된 국가들 모두가 동반 성장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이 선도하는 친환경적 정책, 즉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도 빠뜨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또 하나의 이슈, 조세회피를 거론하면서 조세도피처 철폐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첫째, 그 돈이 정부나 납세자의 손에 들어가 좀 더 생산적이 목적에 활용되어야 한다. 둘째, 현재 사회의 조직을 위협하는 엄청난 불평등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와 사업에 나쁜 영향을 주는 부정부패를 폭로한다. 넷째, 돈을 불법적으로 은닉하는 것이 일부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허덕이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모델의 위기

덴마크나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 수준은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교육과 의료가 사회를 탄탄하게 받치고 있으니 사회구성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통계청 지표에 따르면, 유럽인구의 24퍼센트가 2011년에 '가난 혹은 사회적 배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p.145)고 한다. 불가리아, 라트비아, 루마니아, 라트비아, 그리스, 그리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또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른바 아로페(AROPE) 수치가 높다고 한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긴축재정을 통해 부자증세나 토목사업 등을 줄이고 재정건전성을 꾀하는 동안, 동안 후진국들의 위정자들이 기괴한 논리로 복지예산을 감축하면서 엉뚱한 사업을 통해 비리를 저지르고 그렇게 축재한 자금을 조세회피처로 빼돌리면서 유럽전체의 화합에 찬물을 끼얹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저자는 북유럽으로부터 배울 점을 거론한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유대를 유지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억제하며, 의사결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의 욕구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럽연합이 경제적, 사회적 문제해결에 더해 문화상호주의라고 본다. 저자는 이를 다문화주의와 차별되는 개념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다문화가 여러 인종과 문화를 유럽연합이라는 전체에 내 던져 놓고 방임하는 것이라면, 문화상호주의는 소수의 인종이나 문화가 유럽연합의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이 병행되어야 하는 적극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유럽연합이 연합과 유로화를 포기하고 각 나라로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순간 세계 경제는 다시 한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저자는 영국이 유럽연합과는 별도로 파운드화를 고집하고 러시아가 유럽의 발칸반도를 자극하며, 동유럽과 남유럽의 재정이 불안하고, 터어키를 문화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계속 소아시아로 둔다면 유럽연합은 어정쩡한 연합체 이상의 유기적 공동체가 되는 것이 요원하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쾰른의 팜스프링에서 본 유럽인들은 겉보기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어느 주말 팜스프링에서 만난 북유럽인들의 평온이 동유럽과 남유럽 발칸반도의 유럽인들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너머 전세계 또한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각 가맹국들 상호간에 평화와 공존을 이룬다면 15~16세기 대항해 시대에 그들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저지른 만행에 조금이나마 속죄의 변을 할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앤서니 기든스 저, 이종인 옮김, 2014년 10월 6일 발행

아로페(AROPE): 어떤 특정한 해에 가난 혹은 사회적 배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심각한 물질적 박탈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 가족 중 누구도 안정된 직장이 없는 가정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 기든스의 통합유럽 프로젝트

앤서니 기든스 지음,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2014)


태그:#유럽, #독일, #발칸반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