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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원에 가봤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 또는 친구와 함께. 그리고 귀엽고 재밌고 신기한 동물들을 보며 즐거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쯤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이 정말 행복할까?' 자문해본 적 있는가? 혹은 너무 슬픈 표정이나 열악한 환경의 동물을 보고 가엾다 느낀 적은?

많은 동물들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감각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 생명이 살아가는 데 동물원 환경은 이상적일까? 나는 이런 물음을 품고 '행복한 동물원을 찾아서'란 탐방 기사를 시작했다. 부디 모든 생명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바라며.... 기자 주

ㄷ파크 동물원 입구
 ㄷ파크 동물원 입구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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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찾아간 동물원은 부산 초읍에 위치한 'ㄷ 파크'다. 어릴적 기억에 '성지곡 동물원'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는데 2014년 4월 새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8만 5334㎡(2만5814평) 대지에 123종 1200마리 동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사 홈페이지에 '부산 유일 자연친화형 동물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이점은 지난 8월부터 '야간 개장'을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가봤다.

입장권은 주간 기준 성인 1만9000원, 청소년 1만7000원, 어린이 1만5000원이며 야간은 30% 할인된 가격이다. 소셜 커머스를 통하면 10% 더 싸게 이용할 수 있다. 여타 동물원(※서울동물원 성인 3000원)에 비해 너무 비싼 입장료도 개장 때부터 제기된 여러 논란 거리 중 하나다.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여는 야간 동물원은 '주미나리에'라고 하는 빛축제와 함께 한다.

아직 밝은 오후 5시 30분경,
'앵무새가 있는 올라가는 길'을 통해 동물원 관람을 시작했다. 입간판을 지나자마자 우측에 창살 형태 케이지 안에 듀컵 코카투와 썬 코뉴어 앵무새 여러 마리가 보였다. 썬 코뉴어들은 보는 내내 움직임이 없었는데 그보다 몸집이 큰 듀컵 코카투 두 마리는 케이지 내부를 이동하며 부리로 창살을 깨무는 행동을 반복했다.

다른 앵무새 종에 관한 표지판들이 띄엄띄엄 길 난간에 붙어 있었지만 처음 본 두 종 외 진짜 새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거대한 '워킹 사파리' 입구. 직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린코어 빌리지' 건물이 보였는데,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점과 동물인형 판매점, 4D 영상체험 등이 입주해 있었다. 이때까지는 동물원에 왔단 사실을 좀처럼 체감할 수 없었다.

플래시 금지-유리창 두드리지 않기... 지켜지지 않는 규칙들

▲ 철창 속 듀컵 코카투 듀컵 코카투 두 마리는 케이지 내부를 이동하며 부리로 창살을 깨무는 행동을 반복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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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워킹 사파리 투어 시작 전 그린코어 빌리지 건물 한 벽면에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정확히는 그 안에 씌어진 글귀가.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이다.

고새 사위가 어둑해져 동물원 곳곳에 설치된 주미나리에 조형물들이 현란한 빛을 발했다. 사파리로 가는 길 역시 전기 간판과 작은 유색 전구들로 반짝였다. 사파리에서 처음 만난 동물은 훔볼트 펭귄이었다. 파란 물색 페인트로 칠하고, 내 손 다섯 뼘 깊이의 물이 채워진 수족관 안이었다. 7마리의 펭귄이 헤엄치고 있었는데 옆에 선 연인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예쁘다. 수영하는 것 봐."
"한 마리 키울까?" 

이어 또다른 여자 관람객 두 명. 카메라를 든 한 명이 앞에서 기다리고, 다른 한 명이 수족관 유리를 계속해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펭귄의 얼굴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였다.

펭귄 옆은 캥거루. 구부린 자세가 내 허리쯤 오는 비교적 작은 체구였다. 우리는 나무 울타리에 철망을 덧대 틈새를 촘촘히 하고, 그 철망에도 조명 장식을 달았다. 무리 중 한 마리가 바깥 세상이 궁금한 듯 철망 틈새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듯한 아이와 부모가 기념 촬영을 하는데 플래시가 번쩍했다.

동물들이 놀랄 수 있으므로
'플래시 금지', '유리창 두드리지 않기', 소리 지르지 않기' 등 '야간 관람 에티켓'이 적힌 안내판들이 곳곳에 있었지만 이에 아랑곳 않는 방문객들을 관람 내내 볼 수 있었다. 

조명 장식이 달린 철조망 우리 속 켕거루
 조명 장식이 달린 철조망 우리 속 켕거루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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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 옆에는 특이하게 개 6마리가 있었다. 동물원에는 일상에서 쉬이 볼 수 없는 동물이 대부분인데 낮은 울타리 안에서 사람을 향해 한껏 친밀감을 드러내는 녀석들이 새삼 반가웠다. 그런데 한편으로 본 동물원 개장 당시 잠시 전시되었다 논란 끝에 퇴출 당한 뉴트리아를 대신한 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 잠깐, 현재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돼 무차별 포획되고 있는 뉴트리아에 대해 짚고 가자. 뉴트리아는 본디 남미에 사는 초식 위주의 잡식성 동물이며, 기본적으로 온순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한국에 데려온 건 1980년대 뉴트리아의 털과 고기로 수익을 창출코자한 국내 일부 농가였다.

하지만 기대처럼 경제성이 없자 사육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났고, 버려지거나 탈출한 뉴트리아들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며칠 전 서울대 모 연구원이 뉴트리아 박멸을 위해 그들의 항문을 봉합하고 스트레스로 인한 카니발리즘을 유도하자는 주장을 해 논란이 일었다. 생명에 대한 이렇듯 비정하고 저급한 사고(思考)가 단지 지식인 한 명만의 것이 아니란 사실이 우려스럽다.

수족관 안 온몸에 녹조 핀 악어거북

동물원에서 만나니 새삼 더 반가운 개
 동물원에서 만나니 새삼 더 반가운 개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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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개들 맞은편엔 그물무늬기린이 있었다. 두 마리 기린이 우리 내 촘촘히 심긴 나무 사이로 걷고 있었다. 아프리카 초원이 고향인 그들 곁에 그나마 진짜 나무와 흙이 있음이 다행스러웠다.

관람 중 동물원 측 직원이 근처 미어캣 우리에 표지판을 설치했다. 미어캣이 '주행성 동물이라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야간개장 방문객들이 동물들을 잘 볼 수 있게 불 밝힌 우리 안에서 미어캣들은 깨어 돌아다녔다. '주로 숲속 나무구멍이나 땅굴 같은 어두운 곳에서 생활한다'는 옆집 몽구스도 마찬가지.

오후 7시가 가까워오자 안내 방송이 들렸다. 양떼몰이 공연과 영화 상영 시각 임박을 알렸다. 워킹 사파리 관람을 잠시 멈추고 '하늘목장'이란 곳으로 갔다. 하루 세 번씩 개가 양떼를 모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연으로 5분여 동안 짧게 진행됐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이 주변에 모여 있었다. 

양떼목장 옆에는 무릎보다 낮은 둥근 울타리 안에 병아리와 네댓 마리 토끼가 있었다. 수십 마리 병아리들은 추워서인지, 무서워서인지 한몸처럼 바짝 붙어 있었고, 사방이 개방된 우리 안에 동물들이 몸을 숨기거나 휴식을 취할 만한 개별 공간은 없었다.

한 여인이 아이를 들어올려 병아리를 손으로 잡도록 돕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병아리 한 마리가 우리 밖으로 나와 잠시 소란이 일기도 했다. 근처에 있던 사육사가 뒤늦게 나타나 병아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동물들을 만지는 관람객들에게 '주의해서 만질 것'을 당부했다.

사면이 개방된 낮은 울타리 속 작은 동물들
 사면이 개방된 낮은 울타리 속 작은 동물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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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목장에는 양, 병아리, 토끼 외 파충류와 양서류가 있는 '드래곤캠프', 새들이 있는 '버즈캠프', 염소와 돼지, 말과 개가 함께 있는 '동물농장', 그리고 '미니말 라이딩 체험장'이 있었다.

이중 드래곤캠프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특히 악어거북이란 종은 전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협소한 수족관 안에서 온몸에 녹조가 핀 상태였다. 나란히 붙은 마타마타거북과 뱀목거북, 늑대거북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자연과 닮은 모습을 연출하거나 동물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설치물도 대부분 없었다.

곁에 있던 한 사육사에 "시설이 너무 열악해 보이네요. 녹조도 심하고…" 하니 "낮에 햇빛이 바로 비쳐서…(외부에 설치된 유리 수족관들은 사방의 빛이나 소리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물청소는 하지만 꺼내서 씻어줄 수도 없고…"라고 했다.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할 수 없는지 묻는 내 말에 옆에 있던 또다른 중년의 사육사가 "좋은 환경이란 뭘까요?"라고 반문했다.

동물들이 몸을 틀 수조차 없이 협소한데다 너무 단조로운 공간들.
 동물들이 몸을 틀 수조차 없이 협소한데다 너무 단조로운 공간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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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수족관에는 커다란 초록 아나콘다나가 물을 채운 플라스틱 사각 용기에 몸을 둘둘 말고 있었고, 레드테일 보아, 알비노버미즈파이톤 같은 큰 뱀과 동물들도 가로 다섯 뼘, 세로 두 뼘이 채 안 되는 공간 안에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게 총 58종에 이르는 동물들이 유사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드래곤캠프 옆 버즈캠프엔 이름대로  알록달록 크고 작은 새들이 있었다. 그런데 맨 처음 동물원을 들어올 때와 같이 다수 새들은 철창 케이지에 갇혀 있었다. 그간 보아온 여느 동물원에 비하면 곳곳이 너무 급조된 듯한 느낌이었다. 본 동물원 관련 논란 거리 중 또 하나가 개장 당시 동물적응기간(통상 2개월)을 거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한 조급함이 낳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했다. 

오후 8시, 야간개장 종료까지는 아직 2시간이 남았지만 날씨는 꽤 쌀쌀했고 남아있는 방문객들도 소수였다. 여러 동물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연이어 본 탓에 마음이 착잡했는데 동물농장 안에선 목이 쉰 듯한 대형견 한 마리가 오가는 사람들을 향해 계속해 울부짖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소녀의 말이 뭉클했다.

"엄마, 얘 왜 울어? 외로워서 울어? 그럼 그냥 집에 보내주자."

관람객들 중에는 동물원 동물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관람객들 중에는 동물원 동물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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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생활하는 코끼리는 한 마리 뿐... 동물원 "개체수 늘릴 계획"

하늘목장을 나와 다시 워킹사파리로 왔다. 그리고 검은꼬리 프레리독, 트리포큐파인, 그랜트 얼룩말, 완카류, 사막여우, 북극여우 등을 차례로 봤다. 작은 캥거루종인 완카류의 우리 안에 나무상자를 넣어주고 나오던 사육사가 "왜 이렇게 습기가 차지? 안 그랬는데…" 혼잣말을 했다. 트리포큐파인 우리 앞에선 내 배꼽보다 10센티미터쯤 높은 나무 울타리에 아이들이 매달려 안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제지하는 안전요원은 없었다.

이어서 ㄷ파크가 자랑하는 국내 유일 흑표와 히말라야곰, 호랑이, 사자를 만났다. 개장 전 전문가 안전점검 당시 이들 맹수 우리의 보완이 필요하단 지적이 있었다. 확인 결과 흑표 우리에는 권고를 받아들여 그물망 형태의 천장을 설치한 상태였다. 또한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천장이 개방된 우리들은 동물 특성에 따라 오름 방지 장치를 하는 등 안전상 모든 조치를 했다 한다. 달빛 아래 앉은 맹수들의 늠름하고 우아한 모습이 역설적으로 그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끝으로 만난 동물은 아프리카 코끼리. 남자 사육사가 건초를 먹는 코끼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코끼리가 한 마리 뿐이냐?" 물었더니 "그렇다" 했다. 덧붙여 "(제가) 대부분 옆에 있어 주긴 하는데…" 말을 흐렸다. 코끼리는 가족 단위로 평생 집단 생활을 하며, 특히 지능이 매우 높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제 고향 아프리카에서 이 작고 낯선 이국의 동물원에 오기까지 코끼리가 어떤 경험을 했을까, 막연한 의문이 들었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가족 단위로 평생 집단생활을 하며 특히 지능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ㄷ파크의 코끼리는 '혼자'였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가족 단위로 평생 집단생활을 하며 특히 지능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ㄷ파크의 코끼리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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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관리 문제 없는 수준... 사육공간 협소한 종, 수조 변경할 계획"
[인터뷰] ㄷ파크 김아무개 기획홍보 팀장

- 개장 전 전문가 안전점검에서 맹수 우리 안전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맹수 우리를 당시 이중 강화 유리에서 삼중 접합 유리와 유리창 중간 지지대로 강화하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유사시설 관계자 방문 자문과 추가 보완 등을 거쳐서 안전관리에 문제가 없는 수준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점검을 상시 진행하고 있습니다."

- 동물원 내 동물들 응급상황 혹은 질병 시 적절한 의료 서비스 지원 가능한 인력이 있는지?
"야생동물 전문치료관리수의사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 하늘목장 내 병아리, 토끼 등 관람객들에 무방비 노출. 동물들이 숨거나 쉴 공간이 전무한데?
"안전관리 인원이 늘 배치 중이며 통제 하에 체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실과 달랐다) 은신처 및 열등설치 진행 중입니다."

- '드래곤 캠프' 경우 비전문가 입장에서 봐도 너무 열악한 환경인데?  본 캠프 조성시 전문가 자문 받았는지? 받았다면 어떤 기관에 의해? 이후 개선 계획은?
"은신처나 물건 등이 있으면 물어서 입에 상처나기 쉬우며 먹이를 잘 찾지 못합니다. 이끼와 함께 잘 어울리는 수생동물이지만 청결을 위해 주 2회 청소 중이며 하루 한 번 반수, 주 1회 완수하며 관리 중입니다. 사육공간이 협소하다 판단되는 종은 수조를 변경할 예정입니다."

- 코끼리는 가족 단위로 집단생활을 하는 특성이 있는데 현재 동물원에는 단 한 마리만이 생활하고 있다. 이후 개체수 늘릴 계획 있는지?
"개체수 늘릴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담 사육사가 상주하며 많은 시간 함께하고 있습니다."



태그:#동물원, #부산명소, #부산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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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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