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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 시민모임은 13일 오후 7시 30분부터 등촌동 '사람과 공간'사무실에서 세월호 유가족인 안산단원고 2학년5반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에게서 세월호 참사와 6개월간의 이야기를 듣고 해야 할 일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 시민모임은 13일 오후 7시 30분부터 등촌동 '사람과 공간'사무실에서 세월호 유가족인 안산단원고 2학년5반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에게서 세월호 참사와 6개월간의 이야기를 듣고 해야 할 일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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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즐겁게 수학여행을 떠난 내 아이들이 갑자기 없어졌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심정일지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시민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묻고 싶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의 입술이 떨렸다. 정씨는 "아이들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해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가칭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 시민모임'은 13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사람과 공간' 사무실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전하는 지난 6개월간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해야 할  행동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된 행사에 80여 명이 일찍부터 나와 자리를 잡았다. 대부분 처음 보는 시민들이었지만 가까운 이웃처럼 인사를 하고 가져온 음식들을 서로 나눴다.

"총력 다해 구조한다고 했을 때 보트 두 대만 떠다녀..."

정씨는 "우리 성호는 4남매 중 셋째였지만 듬직한 맞아들이었다"며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친구가 다쳐 두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매일 병원에 찾아가서 공부를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4월 15일 밤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떠난다고 인천항까지 갔지만 파도가 심하고 안개가 심해 못갈 거 같다고 했어요. 잠시 후 지켜봐야 한다는 전화가 왔고 얼마 후에 문자가 왔어요. '잘 갔다 올게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정씨는 아들 성호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한 마지막 전화통화를 기억했다. 그리고 잘 갔다 오겠다는 문자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벌써 6개월 전의 일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시민모임이 마련한 '직접 듣는 세월호 참사와 지난 6개월의 이야기'에 초대된 세월호 유가족 안산단원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선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시민모임이 마련한 '직접 듣는 세월호 참사와 지난 6개월의 이야기'에 초대된 세월호 유가족 안산단원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선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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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여러분들은 정부가 총력을 다해 구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내가 본 TV 뉴스랑 실제상황은 너무나 달랐다"고 말했다. 진도 팽목항에 도착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을 때 잔잔한 파도였지만 보트 두 대만 떠다녔고, 부모들은 울부짖었지만 정조시간이 아니라며 구조하지 않았고, 정조시간이 되어서도 구조를 하러 나오지 않았다는 것.

정씨는 "3000개의 조명탄을 쏘고 500여 명의 잠수부가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현장에는 잠수부들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잠수부들은 8명에서 12명 정도만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한다.

정씨는 "오히려 아이들을 구조하러 온 어선들을 돌려보내고 대기중이던 통영함도 오지 말라고 했다, 헬기도 돌려보냈다. 단 한 명의 아이들도 구조하지 않았다"며 "이게 여러분들이 총력을 다해 구조하고 있다고 알고 있던 그 때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아이들이 5분이면 배 안에서 나와 구조될 수 있었다"며 "왜 그들은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을 위해 영상을 조작하고 구조하지 않았는지 함께 나서 진실을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시민모임'은 13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세월호 유가족인 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이들은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시민모임'은 13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세월호 유가족인 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이들은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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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국회에서 통과된 세월호 특별법을 유가족들이 반대하는 이유도 밝혔다. 지금까지 열 한번 특검이 있었지만 무엇 하나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 진전해야 하고 이번만은 꼭 밝혀야 한다는 게 유가족들의 뜻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유가족들이 특검에 참여한다면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야가 국민을 속이고 유가족들이 양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씨는 "아무리 싸워도 우리 아이들을 다시 살려낼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며 "하지만 다시는 우리처럼 슬퍼하고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천안함 사고가 났을 때 한 어머니가 '제대로 진상을 밝혀야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며 "여러분들이 이 사회를 바꾸는데 노력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이날 모임에는 최영준 세월호참사 국민대책위 공동운영위원장도 함께했다. 최 위원장은
정치권이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과 유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의 차이점을 설명한 뒤 "성역 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범한 엄마의 제안으로 시작한 '세월호 기억하는 강서양천모임'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 시민모임이 13일 꾸려졌다. 이들은 앞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강서양천 시민모임이 13일 꾸려졌다. 이들은 앞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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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시민모임은 평범한 한 엄마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강서구에 사는 김희연씨는 지난 8월 1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집회현장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 충격으로 한참을 울기만 했다고 말한 김씨는 "우리가 현실을 바꾸는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남편과 상의했다"며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을 안전하게 잘 키우기 위한 일을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시청 광장에 갔다 온 후 아이들의 손에 쥐어줄 것을 생각하다가 '안전한 나라에 살고 싶어요'라고 인쇄된 노란 풍선을 제작해 광화문에 보냈다. 그리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강서구의 대로를 다니며 현수막을 내걸었다.

김씨가 "현수막이라도 걸고 의견을 내자"며 인터넷과 SNS에 호소하면서 참여자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현수막을 누군가가 철거하자 대책을 세우기 위해 처음 모인 것이 이날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숙은씨는 "내가 만약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호소할 곳이 없겠구나하는 생각에 이후에도 계속 모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가까운 곳에 같은 생각을 하는 시민들이 있다는게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만난 이들은 지도부를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정식 모임을 결성하고 앞으로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계속 벌여나가기로 했다. 또 세월호를 기억하는 다양한 행사를 이어가면서 지역 현안에도 관심을 두고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태그:#세월호, #강서양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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