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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북쪽 군위에 한밤마을이 있다면 남쪽 대구에는 옻골마을이 있다. 모두 오래된 마을. 큰 도시 대구에 옛 마을이 있다는 것이 의심스레 들릴지 모르지만 대구는 물론 군위, 칠곡, 영천을 아우르는 팔공산의 당당한 위세를 감안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옻골 담의 특징은 직선, 차갑고 정 없어 보이지만 엄숙하고 위엄 있어 직선으로 한 이유가 있다. 옻골 담은 인공과 자연(동계정), 생활공간과 제사공간(백불고택 담), 주거와 공적공간(마을담)을 구분한다.
▲ 옻골마을 직선 담 옻골 담의 특징은 직선, 차갑고 정 없어 보이지만 엄숙하고 위엄 있어 직선으로 한 이유가 있다. 옻골 담은 인공과 자연(동계정), 생활공간과 제사공간(백불고택 담), 주거와 공적공간(마을담)을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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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정기가 닿아 있는 옻골마을

팔공산의 인문적 깊이는 도시화 세파에 덩치만 커진 대구를 능가한다. 팔공산에 기대어 질긴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품안에 두고 다독인 것도 팔공산이요, 파계사, 부인사, 동화사, 북지장사와 같은 해묵은 절집에 기꺼이 땅 한쪽 내준 것도 팔공산이다. 팔공산 정기를 받고 생겨난 옻골은 겉만 대구지 속은 '팔공'이다.

동촌비행장의 전투기소음과 동촌역으로 통하는 철길을 뚫고 가야 하는 곳이 옻골이다. 이쯤이야 옻골의 태생적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지만 옻골 안은 대구와 담 쌓은 딴 세상이다.

마을 뒤편, 대암산에 대암이 우뚝하고 동쪽에 검덕봉이 높이 솟아 있다. 서쪽으로 산줄기가 타고 내려와 마을 앞쪽까지 이어져 아늑하다. 삼면을 산과 숲이 감싸고 남쪽으로만 트였다. 사악한 기운은 터진 곳으로 들어오기 마련이다. 터진 곳을 막으려 연못 위에 둔덕을 쌓고 느티나무 숲을 만들었다. 마을사람들이 공들여 쌓은 비보(裨補)숲이다.

옻골마을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데 남쪽으로만 트여있다. 마을숲은 비보숲으로 트인 곳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공들여 만든 숲이다.
▲ 옻골마을 마을숲 옻골마을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데 남쪽으로만 트여있다. 마을숲은 비보숲으로 트인 곳으로 들어올지 모르는 사악한 기운을 막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공들여 만든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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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350년이 지났다. 이제 몇 그루 남아 제몫을 다하고 있는데 힘에 부치는지 똑바로 서지 못하고 반쯤 누워 엉성하다. 대직약굴(大直若屈)이라 했다. 몇 그루 성글게 남아 사악한 기운을 온 힘을 다해 막고 있으니 곧은 것보다 더 곧게 보인다.  

마을은 동계(東溪)와 서계(西溪), 두 갈래 물줄기가 감싸 안았다. 풍광 좋은 동계는 남성의 휴식공간이고 서계는 주로 여성이 이용하는 생활공간이라 들었다. 동계 곁에는 동계정과 동산서원(옛터), 정려각이 자리 잡았고 서계 쪽에는 살림집들이 들어섰다. 주변 산과 계곡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 하였다. 대추나무골, 감나무골, 은행나무골, 뽕나무골, 버드나무골, 잣나무골은 들어봤어도 옻골은 처음이라 호기심이 생긴다.

동계는 마을암벽이라고 믿기지 않는 기암(奇巖)들이 있고 그 아래 냇물이 흘러 풍광이 좋다. 동계 옆에 쌓은 담은 동계정 바깥담으로 학습공간인 동계정과 휴식공간인 동계를 구분한다. 이 직선 바깥담에 문을 내어 자연과 소통하였다.
▲ 동계와 동계정 바깥담 동계는 마을암벽이라고 믿기지 않는 기암(奇巖)들이 있고 그 아래 냇물이 흘러 풍광이 좋다. 동계 옆에 쌓은 담은 동계정 바깥담으로 학습공간인 동계정과 휴식공간인 동계를 구분한다. 이 직선 바깥담에 문을 내어 자연과 소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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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경주최씨 집성촌으로 1616년 대암 최동집이 맨처음 이 마을에 터 잡았다. 내후년이 되면 마을을 이룬 지 400년, 400주년 마을잔치라도 한판 벌여야 할 판이다. 마을 앞에 있는 두 그루 회화나무는 '최동집나무'라 불린다. 마을의 문패 역할을 하고 있다.

두 그루 회화나무가 오는 이를 반긴다. 일명 '최동집나무'라 하고 마을문패역할을 한다.
▲ 옻골마을 어귀 두 그루 회화나무가 오는 이를 반긴다. 일명 '최동집나무'라 하고 마을문패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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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규모는 작아 고작 20가구 정도. 북쪽 맨 위쪽에 최씨 집안 종가가 자리 잡았고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하회댁, 도평댁, 월연댁, 중매댁, 교동댁, 양자골댁, 우깟댁, 장선댁 등 정갈한 기와 살림집이 들어섰다. 모두 안주인의 친정을 딴 이름들인데 그중 우깟댁은 이름도 재미있으려니와 어느 지역인지 통 알 수가 없다. 마을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예전에 돌아가셔서 알 수 없다 하고, 다만 우깟은 '웃마을'을 얘기하는 거 아니겠냐면서 말끝을 흐린다. 

종가의 이름은 백불고택(百弗古宅), 백불암 최흥원의 종택이다. 최흥원은 입향조 최동집의 오대 손으로 벼슬을 마다하고 옻골(칠계)에 묻혀 산 선비라 하여 칠계(漆溪)선생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학문의 깊이가 깊어 영남삼로(嶺南三老)로 추앙받고 민생을 돌보는 데 실천의지가 강한 선비라 들었다.

이 마을 중심인물 최흥원의 고택으로 'ㅁ'자형 폐쇄적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서쪽에 생활공간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있고 동쪽에 조상관련공간으로 대묘, 보본당, 별묘가 있다.
▲ 옻골마을 종가, 백불고택 이 마을 중심인물 최흥원의 고택으로 'ㅁ'자형 폐쇄적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서쪽에 생활공간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있고 동쪽에 조상관련공간으로 대묘, 보본당, 별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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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류형원이 쓴 <반계수록>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고 필사를 해둔 덕택으로 <반계수록>이 세상에 알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고택 바로 옆, 원래 제사를 지내는 보본당(報本堂)은 <반계수록>이 최초로 교정된 곳으로 최씨 집안의 자랑거리다.

생활공간인 사랑채와 안채는 서쪽에, 제사를 지내는 보본당과 사당인 대묘, 별묘는 동쪽에 있다. 고택 동쪽 개울가(동계)에 바짝 붙어 있는 집이 동계정(東溪亭). 백불암의 아들 동계 최주진의 학문을 기려 세운 집이다. 학문이 뛰어났으나 40세에 낙마하여 요절하였다 한다. 미수 허목(許穆)의 글씨를 집자한 '동계정' 현판 글씨는 아들을 앞세운 아버지의 눈물처럼 획이 흘러내리고 있다.   

엄숙하고 위엄 있는 옻골마을 직선의 담

옻골마을은 공간 경계가 뚜렷하다. 담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마을담의 특징은 직선에 있다. 직선은 엄숙, 위엄, 정중, 간결, 기품과 통한다. 차갑고 정 없어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백불고택의 경우, 조상과 관련한 공간인 보본당과 대묘, 별묘를 모두 직선 담으로 영역을 구분했다. 이런 담은 엄숙, 위엄, 정중함이 우선, 정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이 마을 담은 직선, 직선은 정붙이고 빈틈없어 보이지만 엄숙하고 위엄 있게 보인다.
▲ 옻골마을 직선의 담 이 마을 담은 직선, 직선은 정붙이고 빈틈없어 보이지만 엄숙하고 위엄 있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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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공간이라 해서 여유를 부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본당 동쪽 모퉁이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야 제 맛이 나는 직선 담에 '구석담'을 쌓아 비밀스런 공간을 만들었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니 목욕재계를 하려고 쌓은 담인 것 같긴 한데, 어쩐지 귀신도 모르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흥미롭다.

보본당 동쪽 모퉁이에 담을 쌓아 비밀스런 공간을 만들었다. 제사를 모시는 곳인데 귀신도 모르게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보본당 구석담 보본당 동쪽 모퉁이에 담을 쌓아 비밀스런 공간을 만들었다. 제사를 모시는 곳인데 귀신도 모르게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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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하고 까칠한 직선의 담에 정(情)을 쌓으려 한 담이 있다. 보본당 뒤편 별묘(別廟) 담이다. 헌데 중간에 담을 째고 '요(凹)'자 모양으로 우묵하게 담을 쌓았다. 담 넘어온 향나무에 자리를 양보한 담이다. 숨 막힐 정도로 엄숙하고 절제된 공간이면서 잠깐 여유를 부린 것이다. 움푹 파인 곳은 곡선으로 해도 되련만 이것마저도 각지게 쌓아 직선의 의미를 버리지 않았다.

엄숙한 사당 담에 향나무 살리려 '요(凹)'자 모양으로 오목하게 담을 쌓았다. 정 없어 보이는 직선 담에 정을 담으려 했다. 오목한 담도 각지게 쌓아 웃음이 난다.
▲ 백불고택 별묘 ‘오목담’ 엄숙한 사당 담에 향나무 살리려 '요(凹)'자 모양으로 오목하게 담을 쌓았다. 정 없어 보이는 직선 담에 정을 담으려 했다. 오목한 담도 각지게 쌓아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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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 직선 담은 정붙일 담을 찾아 나서고...

이 마을에는 다른 데에서 구경하기 힘든 담이 있다. 소깝담이다. 소깝은 솔가지의 경북지방 사투리로 솔가지를 얹어 만든 담을 이 마을에서는 '소깝담'이라 부른다. 형편이 좀 좋다면 기와를 얹었겠지만 그러지 못한 모양이다. 소나무 햇가지는 붉은 갈색을 띠지만 묵으면 회색이 된다. 이 마을 소깝담은 몇 해 더 묵었는지 회색빛마저 잃어가고 푸석푸석하다.

소깝은 솔가지의 경북지방 사투리, 소깝담은 솔가지를 얹어 만든 담으로 이 마을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앞머리는 고르게 자르고 윗머리는 눌러 깎은 상고머리 토박이를 보는 것 같다.
▲ 옻골마을 소깝담 소깝은 솔가지의 경북지방 사투리, 소깝담은 솔가지를 얹어 만든 담으로 이 마을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앞머리는 고르게 자르고 윗머리는 눌러 깎은 상고머리 토박이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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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불고택으로 들어가는 길게 뻗은 담길은 소깝담과 기와담이 대조를 이룬다. 기와담은 빳빳하게 다려 입은 교복에 명문 고등학교 교모를 쓴 서울 유학생을 보는 것 같다. 반면 소깝담은 촌스러운 상고머리 토박이 같은데 지금은 상고머리를 그냥 유지하는 것도 멋이라 기와로 바꿀 맘이 전혀 없어 보인다.

백불고택 가는 길은 소깝담과 기와담이 나란히 직선으로 뻗어 있다. 정 붙이기 어려운 직선 담이어서 소깝담이 더 정겹게 보인다.
▲ 소깝담과 기와담 백불고택 가는 길은 소깝담과 기와담이 나란히 직선으로 뻗어 있다. 정 붙이기 어려운 직선 담이어서 소깝담이 더 정겹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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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직선을 강조할 때 그만한 충분한 이유를 뒀다. 그렇다고 직선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차갑고 인정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옻골마을 직선의 담에 소깝담을 둔 것이라든가, 향나무 살리려 오목한 담을 만들고 담 모퉁이에 담을 둘러 구석담을 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담이 없었다면 옻골마을 직선의 담은 얼마나 차갑고 까칠하고 정 없어 보였을까?


태그:#옻골마을, #백불고택, #동계정, #직선 담, #비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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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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