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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식에서 케이크 커팅을 하고 있다. 이날 케이크 커팅에 임할 사람이 미리 정해진 게 아니라 "누가 할 거냐 . 빨리 나와라. 나는 왜 안 부르느냐"등의 말이 오가며 한바탕 웃었다.
▲ 케이크 커팅 개원식에서 케이크 커팅을 하고 있다. 이날 케이크 커팅에 임할 사람이 미리 정해진 게 아니라 "누가 할 거냐 . 빨리 나와라. 나는 왜 안 부르느냐"등의 말이 오가며 한바탕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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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처음 제기된 건 2013년 안성의료생협(현 안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아래 생협) 이사회에서다. 그 후로 다각도로 추진해서 2014년 9월에 '경기도 제 23호 안성요양보호사교육원(아래 교육원)'으로 지정받았다. 오늘(10일), 교육원이 개원하기까지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 모여 개원식을 하고 있다.

10년 세월, 어르신을 섬긴 원동력이 여기 있었네.

이 교육원이 있기까지 고군분투한 신임교육원장 손은희씨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잔치 상을 받으면서 시끌벅적한, 그래서 마음이 분주한 은희씨와 더불어 식탁에 마주 앉아 요양보호사이야기를 나누었다.

2004년도에 재가간병 팀장으로 생협에 근무하게 된 은희씨는 이 일만 10년이 넘어간다. 그동안 수백 명의 어르신을 만났다. 그녀가 섬기던 수십 명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셨다. 10년 세월을 오로지 어르신들의 요양을 위해 달려왔다. 왜, 무슨 힘으로 그래왔을까.

사연이 있다. 그녀의 딸 은경양이 4~5세 때 '모야모야 병'으로 인해 뇌수술을 두 번했다. 딸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며 그 시절을 보냈다. 뇌혈관 이식을 한 후에도 조심스레 상태를 지켜봐야 했다. 이 말을 하는 은희씨는 잠시 그때가 생각난 듯 먹먹해 한다. 다행히 그 딸이 지금은 22세의 대학생(공주대 식품영양학과)으로 아주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딸을 통해 건강 약자들에 관심이 증폭된 거다.

이런 은희씨는 주변에서 늘 이런 말을 듣고 산다. "아, 좀 쉬엄쉬엄 해. 몸에 병날라"고. 은희씨의 성격 탓도 있지만, 그녀가 열심히 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딸의 아픔을 지나면서 아픈 분들에 대해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싹튼 게다. 지난 10년을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온 원동력이 거기에 있었을 터.

안성의료생협 이기범 이사장이 고사 상을 앞에 두고 축문을 낭송하고 있다. 특유의 축문 톤으로 낭송을 하자 어색한 톤 때문에 사람들이 웃을까 말까 했고, 그 대신에 고사 상에 돼지머리가 웃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축문 낭송 안성의료생협 이기범 이사장이 고사 상을 앞에 두고 축문을 낭송하고 있다. 특유의 축문 톤으로 낭송을 하자 어색한 톤 때문에 사람들이 웃을까 말까 했고, 그 대신에 고사 상에 돼지머리가 웃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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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가 사라져 119를 부른 이야기

한 번은 100세 할머니와 이런 일도 있었단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집안에 계시면서 문을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다. 전화를 하고,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었다. 노인이 이럴 경우 십중팔구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싶어 마음이 다급한 은희씨와 요양보호사들은 119를 불렀다.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할머니는 태연하게 "뭔 일 있었던 겨"라며 멀뚱멀뚱 쳐다보더란다.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셨고, 문을 잠근 줄도 모르고 주무신 거다.

그 후에도 한 119를 부르는 사태가 또 있었다. 할머니가 사라졌다. 은희씨는 또 사방팔방 수소문하며 할머니를 찾았다. 알고 보니 이른 아침에 병원에 가 있었다. 인근 병원에 할머니가 혼자 걸어서 외래진료실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치료받으시려고 할머니가 아침 일찍 걸어서 병원에 간 게다.

요양보호사가 어르신들의 인생을 다 책임질 순 없지만, 안전사고와 병에 대해 늘 긴장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거다. 거기다가 어르신과 정이 들면, 마치 자신의 부모님을 대하는 심정으로 애타함이 더해진다는 게다.

이날 참석한 사람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치즈"라고 해도 웃지 않자, 촬영자가 "개새끼"하며 웃자고 제안하니 활짝 웃으며 촬영에 임하고 있다.
▲ 기념촬영 이날 참석한 사람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치즈"라고 해도 웃지 않자, 촬영자가 "개새끼"하며 웃자고 제안하니 활짝 웃으며 촬영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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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대상자가 아닌 가족의 정이 싹트면...

은희씨가 섬기는 할머니들은 안성시내도 있지만, 읍면단위에 많다. 말하자면 시골에 살면서 시골이 좋아 살기는 하지만, 교통이 불편해 의료적 혜택을 받기 어려운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어르신 부부도 있지만, 독거어르신들도 많다.

한 해 두 해 같이 하다보면 어느 새 정이 든다. 어르신들은 요양보호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자녀들도 바빠서 시나브로 돌아보지 못하는 걸 요양보호사는 틀림없이 오니까. 그들이 와서는 업무 처리하듯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자녀가 부모 돌보듯 이것저것 챙기니까.

어떤 때는 어르신들이 밭에서 키운 농작물, 과일, 사탕 등을 내놓으면서 고맙다는 표시를 하면 요양보호사와 대상자의 관계는 이미 의미가 없어진다. 그냥 말 그대로 친정부모와 자녀처럼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 일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다. 요양보호사들은 만날 아픈 분을 보고, 나아가서 돌아가시는 분을 보기 때문에 자칫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다. 우울해지는 마음을 다스려 주지 않으면 말이다. 이런 이유인지 은희씨가 관리하던 요양보호사 중에는 종교인이 대부분이다. 또한 그녀들은 종교적 봉사정신이 나름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10년 전과 지금의 손은희, 어떻게 다른가"라고 묻자 "인생을 보는 깊이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은희씨. 아픔과 죽음을 늘 가까이 하면서 체득한 거다. '끝임 없는 약자에 대한 관심', 그것이 그녀가 농익혀온 인생관이다.

어르신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삶의 질이 나아졌을 때, 그렇게 기쁘다는 은희씨. 그녀가 앞으로 이 교육원을 통해 추구하는 세상은 분명해 보인다. 안성의 어르신들이 한 명도 소외됨이 없이 행복해지도록 섬기는 사람들을 배출해내겠다는 거다. 앞으로 수많은 요양보호사 지망생이 여기를 통해 요양보호사로 거듭날 거다.

안성요양보호사교육 초대 교육원장에 임명된 손은희씨는 10년 동안 어르신들을 자신의 부모처럼 섬겨온 내공이 있었다. 이 교육원에서 배출 될 요양보호사들이 앞으로 어떤 마인드로 일하게 될 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 손은희 교육원장 안성요양보호사교육 초대 교육원장에 임명된 손은희씨는 10년 동안 어르신들을 자신의 부모처럼 섬겨온 내공이 있었다. 이 교육원에서 배출 될 요양보호사들이 앞으로 어떤 마인드로 일하게 될 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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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관에서 누가 어떤 마음으로 교육을 하며 사람을 길러내느냐는 참 중요하다. 손은희씨가 들려준 '어르신들에 대한 진심',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호평을 보면서 앞으로 교육원이 열어갈 세상이 눈에 선하다. 앞으로 이 교육원이 안성 농촌도시에서 펼쳐나갈 세상, 그것이 기대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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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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