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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서루, 바위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죽서루, 바위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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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에 갈 때마다 한 번씩 들러서 쉬었다 가는 곳이 있다. 사람들이 관동팔경 중에 하나로 꼽는 '죽서루'다. 죽서루를 알게 된 건 우연에 가깝다. 삼척 시내에서 환선굴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던 중 무심코 도로변에서 '죽서루'라고 써 있는 관광 표지판을 보게 됐다.  마침 버스가 올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무엇보다 거리가 가까웠다. 시내 중심가에서 채 1k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걸어서 10분 안에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애초 여행할 계획에 없던 곳이라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갔다. 그리고 버스 시간에 맞춰서 바로 되돌아올 생각이었다. 이날의 여행 목적지는 어디까지나 '환선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환선굴행 시외버스를 타는 데는 생각 밖으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죽서루는 사람들이 남아도는 시간을 그냥 대충 버리고 가는 곳이 아니었다. 죽서루는 다른 명승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잠시 쉬었다' 가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왼쪽 측면에서 바라본 죽서루.
 왼쪽 측면에서 바라본 죽서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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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중 유독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죽서루

관동팔경은 강원도와 경상북도 동해안에 있는 명승지 8곳을 말한다. 삼척의 죽서루를 비롯해,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 등이 그것이다. 모두 주변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들이다. 그중에 죽서루는 조금 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관동팔경에 속하는 명승지 대부분이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눈 아래로는 짙푸른 동해 바다가 넘실대거나 가까이에서 바라다보이는 곳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으레 관동팔경하면 동해를 떠올린다. 정자와 누각 아래로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광경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죽서루만은 예외다. 죽서루 하나만 강가에 서 있다.

 죽서루 바위 절벽 아래를 지나가는 오십천.
 죽서루 바위 절벽 아래를 지나가는 오십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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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이 계속 바닷가 주변을 맴돌다, 삼척에 와서 갑자기 방향을 꺾어 내륙으로 향한 이유는 무얼까? 그렇다고 삼척의 해변 풍경이 다른 지역만 못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죽서루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이 동해 바닷가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만큼이나 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 느낌이 바닷가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죽서루 아래로 곧은 바위 절벽이다. 절벽 아래로는 오십천이 조용히 흐른다. 죽서루 위에 서서 내려다 보는 오십천이 조금 아득한 느낌을 준다. 멀리 두타산이 바라다 보인다. 죽서루에서는 또 소나무보다 대나무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곤 새소리와 바람소리뿐이다.

그 풍경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그런 풍경은 파도가 넘실대고 바람 소리가 팽팽한 바닷가에서 마주하게 되는 풍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관동팔경이 바닷가를 떠나 갑자기 내륙으로 향할 때는 요동치고 아우성치는 번잡한 바다를 떠나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오십천 건너편에서 올려다 본 죽서루.
 오십천 건너편에서 올려다 본 죽서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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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풍경이 정철이 '관동별곡'을 쓰던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관동팔경 어디를 가나 다 마찬가지다. 그 옛날 정철이 정자와 누각 위에 서서 바라다보던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죽서루도 예외는 아니어서, 누각 아래 오십천 너머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자못 삭막한 데가 있다. 아쉬운 일이다.

그 중에 원통형과 원형 등 눈에 띄는 건물 몇 개가 있다. 이 건물들은 2002년 삼척세계동굴엑스포를 개최할 때 지어진 건물들이다. 죽서루 주변 경관을 해친 게 결코 그 건물들 때문만은 아니다. 세월의 변화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풍경도 변하기 마련이다. 오십천도 '그 옛날'을 흐르던 그 오십천이 아니다.

 죽서루를 에워싸고 있는 바위와 나무들.
 죽서루를 에워싸고 있는 바위와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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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절벽 위에 별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사람들

죽서루 마루바닥은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는 양반집 대청마루를 연상시킨다. 햇살이 따듯한 한낮에 그 마루에 누워 잠 한숨 달게 자고 일어난 사람은 안다. 그 잠이 얼마나 오지게 달고 맛있는지를. 당연히 죽서루에 가게 되면, 그 정자 마루에 앉거나 누워 있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서늘한 바람이 온몸을 쓸고 지나간다.

세월이 아무리 변했어도, 죽서루는 죽서루다. 삼척에 살았던 옛 선조들이 오십천 높은 바위 절벽 위에 할 일이 없어 이처럼 커다란 누대를 세운 게 아니다. 선조들은 아마도 이 절벽 위에 '별세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 우리가 죽서루에서 만나게 되는 세상은 세속과 절간 사이를 오가는 것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광장 쪽 정면에서 바라본 죽서루.
 광장 쪽 정면에서 바라본 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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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서루 위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이 전부가 아니다. 죽서루는 오십천 너머 강가에 서서 절벽 위로 높이 올려다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죽서루가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알고 있던 죽서루에 가장 가깝다. 우리는 그곳에서 죽서루를 떠나지 않고서, 결코 죽서루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죽서루는 관동팔경에서 볼 수 있는 누각과 정자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된 건물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으로, 제법 큰 규모다. 보물 제213호다. 건물을 세운 사람과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김극기(1115~1204)라는 인물이 남긴 시에 죽서루가 등장하는 걸로 봐서, 대략 1190년 이전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튼튼하다.

 용이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용문암.
 용이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용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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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는 건물 모양에도 특이한 데가 있다. 마루 밑을 보면 기둥의 길이가 모두 다른 걸 볼 수 있다.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에 그대로 기둥을 올려 세운 까닭이다. 누대 안에 수많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현판들 역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중에 '第一溪亭(제일계정)'이 보인다. 현종 3년(1662) 때, 허목이 쓴 글씨라고 한다.

죽서루 건물 주변이 온통 바위투성이인 것도 특이하다. 그 중에 용문암이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그 바위 위에 남아 있는 '성혈'도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 중에 하나다. '죽서루'란 이름은 누각 동쪽 대나무 숲에 있었던 '죽장사'라는 절에서 빌어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착하게도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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