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에서 댄버스 부인을 연기하는 신영숙

▲ <레베카> 에서 댄버스 부인을 연기하는 신영숙 ⓒ EMK뮤지컬컴퍼니


미안한 이야기지만, 뮤지컬 <레베카>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몫은 주인공 막심이나 '나'의 역할이 아니다. 막심의 대저택을 지키는 집사 댄버스 부인의 몫이다. 죽은 레베카를 대신해서 새로운 마나님인 '나'가 막심의 부인이 되었다면 집사인 댄버스 부인은 당연히 '나'에게 순종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댄버스 부인은 '나'에게 마나님 대접을 하지 않고 죽은 옛 주인 레베카만 진정한 마나님으로 생각한다.

심지어는 '나'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 댄버스 부인은 2막, 절벽이 보이는 창가에서 죽음의 노래 '레베카'를 열창한다. 신영숙이 연기하는 댄버스 부인이 넘버 '레베카'를 열창할 때 기자 옆에 앉아있던 한 여성 관객은 손수건을 꺼내고 붉어진 눈시울을 정리하기 바빴다. 악역이지만 주체할 수 없는 카리스마의 선율을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레베카>는 댄버스의, 댄버스에 의한, 댄버스를 위한 뮤지컬이다.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댄버스 부인으로 호평 세례를 받고 있는 신영숙은 초연과의 차이점에 대해, 초연에는 강함으로만 밀어붙였다면 지금은 관객으로 하여금 댄버스 부인에 대한 동정심도 유발할 수 있도록 섬세한 감성의 결을 불어넣는 게 차이점이라고 답변한다. 강함과 약함의 조화를 이번 재연에서 댄버스 부인에게 불어넣고 싶었던 것이다.

마님과 집사의 관계..."동성 간의 오묘한 감정일 수도"

'레베카' 신영숙 "댄버스 부인은 댄버스라는 개인의 정체성이 없다. 레베카로 인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레베카가 잘 되어야 댄버스가 기쁘지, 댄버스라는 개인의 정체성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무의미한 존재다."

▲ '레베카' 신영숙 "댄버스 부인은 댄버스라는 개인의 정체성이 없다. 레베카로 인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레베카가 잘 되어야 댄버스가 기쁘지, 댄버스라는 개인의 정체성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무의미한 존재다." ⓒ EMK뮤지컬컴퍼니


-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은 강렬하게 관객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있다.
"댄버스 부인은 죽은 마나님 레베카에게 집착을 하는 인물이다. 레베카 부인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일 년 가까이 저택을 지킨다. 일반인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아우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캐릭터를 잡아갔다. 댄버스 부인은 사람을 휘어잡는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댄버스 부인이 첫 등장할 때부터 찬바람이 쌩쌩 불어야 한다고 보았다. 댄버스 부인만이 갖는 무게감과 깊이에 제일 중점을 두었다.

댄버스 부인이 얼마나 소름 돋으면 관객이 제가 등장할 때마다 '댄버스 부인이 등장할 때마다 공연장은 에어컨을 더 트냐?' 하는 반응까지 나오겠는가. 댄버스 부인의 노래와 연기가 음산하고 무서우면서도 압도적이라 관객은 소름끼치면서도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 댄버스 부인이 고인이 된 레베카를 떠받들고 숭앙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댄버스 부인은 댄버스라는 개인의 정체성이 없다. 레베카로 인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레베카가 잘 되어야 댄버스가 기쁘지, 댄버스라는 개인의 정체성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무의미한 존재다."

- 뮤지컬 팬 가운데에는 레베카와 댄버스 부인과의 관계를, 보통의 마님과 집사의 관계가 아니라 동성애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꼭 동성애가 아니어도, 남성의 동성애와는 달리 여성은 같은 성을 좋아하는 심리가 있다. 댄버스의 행동을 보면 동성애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있다. 댄버스가 레베카를 사랑했으니까 동성애적인 코드를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생전의 레베카가 댄버스 부인과 함께 침대에서 남자들을 비웃거나, 머리를 빗겨주었다고 가정해 보면 가족 같은 친밀감도 있겠지만 동성 간의 오묘한 감정일 수도 있다."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건 '나'를 죽이려 할 때의 '레베카'"

'레베카' 신영숙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건 레베카의 저택에서 '나'를 없애기 위한 위협의 '레베카'다. '나'의 공포심을 극대화해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유도하는 악마적인 넘버다. 맨 마지막의 '레베카'는 배신당한 절망감에 부르는 넘버다."

▲ '레베카' 신영숙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건 레베카의 저택에서 '나'를 없애기 위한 위협의 '레베카'다. '나'의 공포심을 극대화해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유도하는 악마적인 넘버다. 맨 마지막의 '레베카'는 배신당한 절망감에 부르는 넘버다." ⓒ EMK뮤지컬컴퍼니


- 넘버 '레베카'는 댄버스 부인이 고음으로 소화해야 한다. 성대를 아껴야 맞지만 학교 강의도 병행해서 성대를 아끼기란 쉽지 않다.
"성대를 아껴야 하는 게 맞지만 뮤지컬을 한다고 해서 성대를 아끼며 강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목을 좀 아껴야지' 생각하고 강단에 들어서도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스타일이다. 작년까지는 성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성량을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작년부터 얼마나 제 성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를 깨달았다. (성대를 아끼기 위해) 어제는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 넘버 '레베카'를 부를 때 어떻게 해석하고 소화하는가.
"'레베카' 넘버를 총 4번 부른다. 처음 부를 때는 고인이 된 마나님 레베카를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그리움의 '레베카'다. 1막 마지막 장면에서 '나'가 레베카의 드레스를 입고 망신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댄버스 부인이 부르는 '레베카'는 댄버스 부인이 '나'를 골탕 먹이는 승리의 노래다.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건 레베카의 저택에서 '나'를 없애기 위한 위협의 '레베카'다. '나'의 공포심을 극대화해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유도하는 악마적인 넘버다. 맨 마지막의 '레베카'는 배신당한 절망감에 부르는 넘버다."

- 보통의 뮤지컬 배우라면 '나'로 표현하겠지만 신영숙씨는 캐릭터 '나'를 원문 대본대로 '이히(ich)'로 표현한다. 섬세함이 느껴진다.
"지금보다 더 섬세해야 하고 섬세하기를 바란다. 대본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발견되는 게 너무나도 많다. 아직은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한다."

- <레베카>나 <캣츠>에서 진지하거나 심각한 역할을 연기하다가 <아가씨와 건달들>의 아들레이드는 기존 배역과는 달리 밝은 역할이어서 '신영숙씨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고 놀란 적이 있다.
"'신영숙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는 반응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알고 보면 신영숙은 아들레이드처럼 밝은 사람이다. 아들레이드를 연기할 당시 연기가 아니라 저를 있는 그대로 보여드린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코믹하고 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20대에는 코믹한 역할로 출발했는데 <황금별의 남작부인>처럼 센 역할이나 슬픈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다 보니 <스팸어랏>이나 <아가씨와 건달들> 같은 작품을 보면 '저게 같은 신영숙이냐' 하는 반응이 나온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아들레이드처럼 재미있거나 착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힘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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