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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다이빙벨>의 한 장면
 다큐 <다이빙벨>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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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영화 <다이빙벨>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대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보수진영이 거세게 반발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9월 25일 보도자료를 내고 상영 취소를 요구했다. 새누리당 사무총장 출신인 서병수 부산시장도 같은 날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상영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상영 반대의 뜻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다이빙벨>은 예정대로 지난 6일 상영됐고, 10일에 한 차례 더 상영된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외압에 의해 상영을 취소한 사례가 없다"며 당초 계획대로 상영했고, 집행위원장은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맞섰다.

첫 번째 상영이 이루어진 뒤 2일이 지나고, <조선일보>가 8일 자 사설에서 관련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세금 받아 쓴 영화제가 국민 속인 '다이빙벨' 상영하다니"라는 제목의 이 사설은 6일 상영 당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이라는 영화가 6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예정대로 상영됐다"며 "외압이니 뭐니 하면서 논란을 빚은 탓인지 객석은 꽉 찼다고 한다"는 문장을 시작으로 해당 사안을 전했다.

조선의 <다이빙벨> 때리기, 영화도 안 보고?

<조선일보>의 사설을 보면 영화 <다이빙벨>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본문에서 "부산영화제 집행위는 작품 완성도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을 오도하고 세월호 유족들 가슴에 못을 박는 과대망상 같은 작품을 상영함으로써 그간 쌓아올린 명성에 먹칠을 했다"는 부분을 읽어보면 그렇다.

이는 해당 부분이 실린 문단의 첫 줄에 "국제영화제에서 정부 입장과 반대되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도 얼마든지 상영돼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고 쓴 것과 상반된다.

사설의 논지는 언뜻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며 적절한 지적을 한 것처럼 보인다. 기사는 <다이빙벨>이 이념이나 주장이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사실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입장을 풀어낸다. 그러나 도입부와 결론부를 보면 이런 논지와 어긋나는 문장이 보인다.

사설의 두 번째 문단은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얘기로는"으로 첫 문장을 시작한다. 내용은 그 '영화를 보았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직접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고, 필자가 직접 영화를 보고 쓴 것도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본문은 '작품 완성도'에 대해서 쉽게 거론하고, 심지어 영화의 구성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예컨대 "1인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는 이상호씨가 80분 내내 거의 모든 장면에 내레이터로 등장해 자신의 황당한 주장을 되풀이했다고 한다"는 부분을 보자.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성상 한 사람의 해설로 플롯이 진행되는 것은 흔한 사례이다. <조선>은 이 점을 간과했다. 또한 굳이 '1인 인터넷 매체를 운영하는' 인물이라 소개하는 것도,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정보이다.

더욱 의아한 것은, 사설의 '타깃'이 영화의 '사실 왜곡'에서 어느새 '영화제' 자체로 바뀌는 부분이다. <조선일보>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전체 예산 123억 원 중 부산시가 60억 원, 문화체육관광부가 14억 원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는 "국민을 속이는 영화를 놓고 창작의 자유를 앞세워 '뭘 상영하건 상관 말라'고 할 거라면 국민 세금을 지원해 달라고 손 내밀지 말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사설은 "영화제 예산은 그런 영화를 상영해 번 돈을 갖고 독립적으로 꾸려나가야 맞을 것이다"라고 끝맺는다.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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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에 거슬리면 예산을 끊겠다'는 발상, 치졸하다

일단은 국내에서 가장 큰 신문사에서 '관람하지도 않고 영화의 완성도를 비판'하는 사설을 쓴 그 능력과 뻔뻔함이 실로 놀랍다.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날을 세우기 어색했는지, <조선일보>는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로 조준점을 변경한다. 영화에 대한 표현으로 '과대망상 같은 작품'이라 쓰고도 결국 화가 풀리지 않은 탓이었을까? 사설은 '이럴 거면 예산 지원을 바라지 말고 영화제를 독립 운영하라'고 윽박지르며 마무리한다.

이 영화 한 편이 세월호 참사의 많은 의문점을 단번에 밝혀줄 '진실의 전도사'는 아니다. 사고 이후 구조 작업에 동원되었던 다이빙벨의 실효성도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보수진영의 주장은 "영화제 작품 초청 시 정치적 논란을 고려해야 한다" "영화에 표현된 부분이 사실 왜곡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는 선이 아니다. 상영 금지, 나아가 영화제의 예산을 아예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식이다.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는 그런 태도를 지면에 충실히 옮겨 담은 셈이다.

말하자면 불편한 논쟁에 불이 붙기도 전에 미리 잠재우겠다는 자세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려면 예산 지원을 요구하지 마라'는 말은, 곧 '내용이 심기에 거슬리면 예산을 끊겠다'는 구시대적 발상이 아닌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요소인 다양성의 원리를 자본주의의 논리로 짓밟겠다는 치졸함은, 보수적인 사고가 아니라 폐쇄적인 야만성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다이빙벨>에 대한 반대여론'을 존중하는 것과 '영화 상영 절대 금지'를 옹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영화의 선정을 두고 '영화제 측에 의견을 제기하는 일'과 '영화제 예산 지원 삭감을 거론하는 것'도 전혀 다르다. 특정 주장을 압박하여 뭉개겠다는 자세는 폭력적인 사고방식이다. 보수진영의 이런 태도는 극단적 인식이 결합한 권위주의이다. 문화계조차 이념 대립의 장으로 만들고, 그 대립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려는 태도이다. 심히 우려스럽다.

영화의 완성도는 관객들이 판단할 몫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양한 영화와 영화인이 모여서 만드는 세계적 영화 축제이다. 보수진영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흠집 내려고 한다면,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또한 특정 영화를 두고 영화제 전체를 흔들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진다면, 이는 부산을 찾은 각국의 영화인에 대한 모독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다른 모든 분야가 그렇듯 영화도 직접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논쟁으로 삼을 부분이 있는지는 <다이빙벨>을 관람하고 나서 평가를 해도 늦지 않다. 이전 <천안함 프로젝트> 개봉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엉성한 잣대로 섣부르게 영화를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태그:#조선일보, #다이빙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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