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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75일째인 7일, 세월호 이준석 선장이 드디어 '그날 그 배'를 상세히 증언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한마디로 '오락가락'이었다.

이날 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은 이준석 선장의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그는 약 세 시간 동안 이뤄진 검찰 쪽 신문에서 거듭 주장했다. 자신은 퇴선명령을 내렸고, 당시 승객들을 위해 나름 조치를 취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진술 내용에는 앞뒤가 안 맞는 대목이 아주 많았다.

특히 논란이 된 부분은 퇴선명령 여부였다. 이 선장은 거듭 "퇴선명령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어딘가 석연찮았다. 해양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마다 이 지점에선 미묘하게 말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퇴선명령했나, 안 했나'.... 엇갈리는 진술들

4월 16일, 최초로 해경에서 조사를 받았을 때 그는 "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조타실 밖으로 나왔을 때 해경이 빨리 경비정에 오르라고 재촉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었다는 뜻이었다.

"구조선이 접근하기 쉬운 곳으로 승객을 유도해 구조하려고 했는데 못 했고, 승객 안전 확보와 구호에 필요한 조치를 한 적이 없다. 나중에 해경이 왔을 때 김아무개 2등 항해사가 '선장님 나오세요' 해서 커튼을 잡고 나가려는데 박아무개 3등 항해사가 못 나가서 호스줄을 올려달라고 해서 먼저 보냈다. 이후 좌현 출입문 쪽으로 내려와서 대기하는데 해경이 빨리 나오라고 했다. 그 바람에 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검찰에서 세 번째 조사를 받을 때 갑작스레 '선내에서 대기하라고 한 다음, 나중에 퇴선방송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 이 진술은 몇 차례 반복됐는데, 퇴선 방송을 지시한 시기가 조금씩 차이가 났다. 다음은 검찰이 법정에서 제시한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3차 검찰 조사 : "구명정이 도착하기 전에 탈출 준비를 하라고 했고, 구명정 도착 5분 전에 탈출하라는 지시를 했다."

8차 검찰 조사 : "강아무개 1등 항해사에게서 '경비정이 10분 후에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아무개 2등 항해사에게 '5분 후에 퇴선방송을 하라'고 지시했다. 근데 김 항해사가 '방송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워키토키(휴대용 무전기)로 안내실에 연락하라'고 지시했다."

10차 검찰 조사 : "제가 강 항해사에게 경비정이 언제 도착하냐고 물으니 '30분 뒤'라고 했다. 그래서 김 항해사에게 시간에 맞춰서 퇴선하라는 방송을 하라고 지시했는데, 방송이 안 된다고 해서 워키토키로 하라고 했다."

11차 검찰 조사 : "15분 정도 뒤에 구명보트가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김 항해사에게 '15분 뒤에 구명보트가 오니까 시간 맞춰 퇴선하라'는 지시를 했는데 방송이 안 된다더라. 그래서 워키토키로 방송하라고 했고 나중에 김 항해사가 방송을 했다고 말했다. "

하지만 그의 진술은 12차 검찰 조사 때 "경비정이 도착할 무렵 승객들에게 퇴선하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다"로 다시 뒤집어졌다. '퇴선 방송을 했다'고 주장한 11차 조사에선 '승객들이 배 안에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아무런 조치 없이 퇴선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준석 선장에게 '당시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왜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는지'도 여러 차례 물었다. 이 답변 역시 왔다갔다 했다. 이 선장은 배가 기울기 시작한 직후 조타실에서 상황을 확인한 뒤 "침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사가 35도 이상 졌고, 컨테이너가 넘어가는" 급박한 상황이라 그는 선원들에게  인근에 있던 유조선 둘라에이스호에 구조를 요청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둘라에이스호가 접근했을 때, 이 선장은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 "상황이 그만큼 심각한지 파악 못했고, 둘라에이스호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는 이유였다. 그는 곧 해경이 오고 당시 조류가 센데다 물도 차가웠기 때문에 유조선으로 물에 빠진 승객을 구조하긴 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른 진술들 역시 엇갈렸다. 이 선장은 어떨 때는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 등 외부와 교신한 상황을 보고 받았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 박아무개 3등 항해사를 먼저 탈출시켰다고 했다가도 그 상황을 촬영한 동영상 캡쳐본을 제시하자 "밖으로 나가라고 했는데 가만히 있어서 저부터 나왔다"며 말을 바꿨다.

오락가락 진술에... 검찰은 황당, 유족은 분노

앞뒤가 맞지 않는 그의 진술에 검찰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이해하려고 해도 안 된다, 이게 이해되느냐"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 선장은 "당시 제가 정신이 없었다, 거의 실신상태였고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며 "판단력이 떨어지고 무능했다"고 말했다. 또 거듭된 조사로 심신이 많이 지쳤기에 일부 진술이 어긋나긴 한다고 해명했다. 그는 "그건 담당자가 아니라서"라며 다른 선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결국 피해자 가족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재판 도중에는 방청석에서 혀를 차거나 한숨을 쉬던 사람들은 휴정 시간이 되자 피고인석을 향해 "살인마, 얼마나 사람이 죽어야 진실을 말하겠느냐"고 소리쳤다. 공판 끝 무렵 발언권을 얻은 생존학생의 아버지 장동원씨는 "진실하게 말해라, 정신없다고 하지 말라"며 "온 국민이 당신들이 탈출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8일 열리는 23차 공판에서 이 선장의 피고인 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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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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