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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안 내는 편이지만, 상식 이하의 불의를 보면 못참는 편. 약자를 위한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김."

정비담(24)씨가 한 <네이버> 카페에 올린 자기소개 글의 일부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까. '희생' 두 글자가 유독 눈에 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하는 그는 아버지 고(故) 정성철 소방령의 제복을 입고 광화문에 나갔다. 정성철 소방령은 세월호 참사 수색 지원 후 복귀하다 추락한 헬기의 조종사다. 지난 7월의 일이다.

정씨는 지난 2일 오전 'SBS 한수진의 라디오 전망대'에 출연해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찬성하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제 아버지(소방관)들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구조하게 해드리고 싶다"며 "(국가직 전환은) 국민이 평준하게 안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1일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는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을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건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직 전환이 필요한 두 가지 이유 

소방공무원은 일반직공무원, 경찰공무원과는 달리 국가직이 아닌 지방직 공무원이다. 때문에 지방자치 원칙에 따라 운영되며 각 시·도지사를 최고 상관으로 모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별로 처우가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2교대냐, 3교대냐 하는 근무형태는 물론 지급되는 장비의 수량과 품질도 천차만별이다. 여기서는 연식이 오래돼 더는 쓰지 않는 차량이 저기서는 아직도 멀쩡히 재난현장으로 달린다. 활동복, 근무복 등 제복을 만드는 업체도 지역마다 달라 소재와 디테일에 차이가 있다. 서울과 경기는 '경도기업사', 대구와 경북은 '지구사', 부산은 '승엽사' 등에서 소방관들의 옷을 만든다.

말 그대로 중구난방인 셈이다. 때문에 조직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 서비스의 상향평준화를 꾀해야 한단 주장이 나왔다. 소방력(소방인원)과 소방장비의 확보는 곧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소방서비스의 질과 직결된다. 그런데 이 인원과 장비 여건은 각 지역의 재정자립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영록 의원은 지난 6월 12일 발의한 '소방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한 이유로 "지자체 여건에 따라 인력보충이나 장비구입 등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들었다.

소방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0861) 제안이유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의원이 지난 6월 12일 발의했다.
▲ 소방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10861) 제안이유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의원이 지난 6월 12일 발의했다.
ⓒ 국회의안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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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소방방재청과 지자체의 '이중 지휘'를 받는 현실도 문제다. 경찰청을 필두로 조직의 체계와 위계를 분명히 세운 경찰과는 상황이 다르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6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경기도에서 불이 났는데 소방방재청은 물로 끄라 하고, 경기도지사는 소화기로 끄라고 하면 현장에 소방관들은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라며 문제를 지적했다.

최근 3년 동안 전국 23대 소방헬기가 시·도지사를 지원하기 위해 총 179번 출동했다. 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위급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방항공대의 지휘권은 지자체장이 가지고 있다.

6월 13일자 이재오 의원 페이스북 '사공이 많은' 소방조직의 현실을 잘 드러내준다.
▲ 6월 13일자 이재오 의원 페이스북 '사공이 많은' 소방조직의 현실을 잘 드러내준다.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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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걸쳐 4만 명 이상의 소방공무원이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양경찰 해체를 결단한 정부가 소방에도 손을 대면서 시작된 서명이다. 핵심은 출범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소방방재청을 신설 '국가안전처'에 넣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사상 최초로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소방관을 볼 수 있었으나,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직 전환되면 좋지"

'새내기 소방관'들의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긴급한 재난현장에서 화마(火魔)와 싸우는 일에 평생을 걸겠다고 다짐한 지 갓 1년이 지난 이들이다.

'조직 논리'의 내면화 정도가 덜하기 때문일까.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국가직 전환의 장점을 조목조목 설명했고, 때로는 조직에 대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경기소방 이아무개(23) 소방사, 오아무개(24) 소방사, 경북소방 최아무개(24) 소방사, 대전소방 윤아무개(24) 소방사가 인터뷰에 응했다.

신규 소방공무원 훈련 인터뷰에 응한 네 명의 새내기 소방관들이 작년에 받은 훈련이다.
▲ 신규 소방공무원 훈련 인터뷰에 응한 네 명의 새내기 소방관들이 작년에 받은 훈련이다.
ⓒ 충청소방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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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지자체별 예산현황에 따른 인원, 장비, 복지 등의 불균형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경기소방 이아무개 소방사는 "강원(소방본부)에서 넘어온 한 직원에게 서에서 쓰다 남은 장비를 지급했더니 '왜 이렇게 잘 챙겨주냐'며 놀라워했다"며 "전에 근무하던 곳에서는 노후된 장비를 (지급)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차량점검 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그는 "경기도에서는 낡아서 쓰지 않는 차가 전남, 강원 등에서는 아직도 짱짱한 현역"이며 "노후된 장비를 사이즈도 묻지 않고 지급하는 지역이 있었던 반면, 경기에서는 사이즈별로 새 제품을 지급받았다"고 전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지원근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진도에 내려간 경기소방공무원들은 지자체 예산 지원을 받아 세워진 가건물에서 근무한 반면, 정작 진도를 관할하는 전남소방공무원들은 천막 아래서 이불을 깔고 잤다고 한다.

반면 지휘체계의 통일을 조직의 최우선 과제로 꼽는 목소리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경기소방에서 근무하는 오아무개 소방사는, 재난현장에서의 늑장 대처로 발생하는 인재(人災)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직 전환이 필요하다 역설했다. 장비와 인원 문제를 단기간에 개선하기 어렵다면 '인명구조'라는 소방의 본업에 충실할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이다.

그는 "숭례문 화재 때 행안부(현 안전행정부)와 문화재청이 개입한 것이 결국 진압을 방해하는 꼴이 됐다"며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소방공무원)가 효과적으로 재난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당시 소방방재청장은 일반직 공무원 출신이었던 반면, 현 청장은 소방직 출신이라 현장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함께 근무하는 소방공무원 모두가 대체로 비슷한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대전소방 윤아무개 소방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지역인 대전의 소방공무원들은 그다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며 "지역 별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정작 급한 것은 전남이라든지 예산이 부족한 곳"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장비지급률과 복지가 좋은 지역의 소방관들은 국가직 전환에 큰 관심이 없다는 거다. 그는 또한 지역뿐만 아니라 계급에 따라서도 온도차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서장, 과장님 등 내근 간부들은 (국가직 전환에) 관심이 많은데 센터(외근직)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며 "아무래도 위신 문제 같다"고 말했다. 국가직으로 전환되면 처우가 나아지는 것은 물론 일반 시민들이나 다른 조직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소방이 경찰에 비해 솔직히 '끗발'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멋쩍게 웃었다.

"적폐부터 하나씩 바꿔가야"

네 명의 새내기 소방관들은 '국가직 전환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소방조직이 해결해야 할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의 수만큼이나 그 방법 역시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줄줄 새는 예산과 인력을 적재적소에 쓰기만 해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소방에 몸담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 보기에도 그렇다는 거다.

경북소방의 최아무개 소방사는 의소대(의용소방대) 문제를 지적했다. 소방서 관할지역 주민들 중 희망자가 비상근 근무 형식으로 소방업무를 돕는 제도다. 그는 "(대원들이) 와서 그냥 불구경하다 간다"며 "봉사인 것은 알겠지만, 의소대에 들어가는 예산이 소방예산 40%인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출동을 하지 않아도 한 것처럼 꾸며 일지에 기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지급장비의 품목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도 문제다. 필요 없는 장비도 이듬해 예산 감축이 두려워 우선 '질러 놓고' 본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최아무개 소방사는 "(지급) 품목 중에 소모가 잘 안 되는데도, 규정에 따른다고 계속 보내는 것들이 많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말벌 잡는 스프레이를 꼽았다.

'사공이 여럿'인 배에 몸을 실은 소방관들의 불만은 재난 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아무개 소방사는 "(대형재난 시) 보고형태, 지휘체계가 복잡하단 것은 솔직히 가끔 있는 일이라 별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도 "도지사 밑이니까 눈치 보고, 만날 행사 불려가고 그러니까. 그건 좀 없앴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기소방 오아무개 소방사는 안전행정부의 기득권 지키기와 부서 이기주의를 지적했다. "안행부(안전행정부)가 소방을 놔주지 않으려는 이유가 잡일을 시키기 위해서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지자체 행사에 소방공무원들이 동원되는 현실에 불만을 드러냈고, "'안전' 두 글자 빠져서 입지가 줄어들까 걱정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 저 위에 가 닿길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2009년 국회의원 시절 지방자치단체의 소방업무 재정 지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한 사실이 밝혀져 기사화되기도 했다. 소방업무를 국가와 지자체의 공동책임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정책수립과 예산지원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던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지난달 10일 기자들과 만나 "소방부문은 대체로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듯이 국가직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좀처럼 협상의 물꼬를 트지 못하던 국회도 국정감사에 돌입하며 여야 없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부디, 불철주야 안전을 위해 뛰는 소방관들의 목소리가 저 위에 가 닿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의무소방원'으로 복무한 경험을 토대로 취재와 기사작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소방,그리고 최정예 의무소방,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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