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의 한 장면

<제보자>의 한 장면 ⓒ 영화사수박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는 내부 고발자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다.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각의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파울, 즉 반칙을 하게 되면 이 호루라기를 부는 데서 유래한 단어다. 우리는 내부 고발자가 그저 호루라기만 삑 하고 불면 조직의 비리와 불법이 시정되는 사회에 살고 있을까?

실제 내부 고발자를 대하는 조직과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영화 <제보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자신이 속해 있던 조직이 비리와 불법의 온상이 되고 있어도 심지어 조직원들 스스로의 안녕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러도 이들은 조직의 이익에 배치되는 행위를 꿈조차 꾸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돌아올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다른 하나는 제보를 해도 현실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다.

영화 <제보자>는 십 년 전 사건을 관객 앞으로 소환한다. 2005년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른바,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사건이다. 대학의 한 연구조직이 우리 사회와 국가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을 수 있었던 원인은 한마디로 부패한 관료와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하나 더 우리의 박약한 시민정신이다.

영화 속 방송국 앞에서 이장환(이경영 분) 박사의 논문조작 의혹을 다룬 프로그램을 내보내지 말라는 시위를 벌이는 군중들을 바라보며 담당 PD인 윤민철(박해일 분)이 상사에게 말한다.

"형 나 저 사람들이 무서워지려고 해, 진실을 말하면 다 우리 편이 되어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 <제보자>에서 제보자보다 PD 윤민철에게 좀더 집중했던 이유로 "언론에 의해, 사람들에 의해서 사실이 아닌 것이 어떻게 사실이 되는지 그 '과정'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경향신문 10월 2일자). 윤민철이 퇴근하는 사장 차를 가로막고 서서 언론의 사명에 대해 외치는 장면은 감독이 현재의 언론사들에게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제보자>의 한 장면

<제보자>의 한 장면 ⓒ 영화사수박


영화 속의 장면 하나 더, 이장환 박사는 자신이 복제한 개, 몰리를 쓰다듬으며 독백하듯이 말한다. "너무 멀리 왔어, 사람들은 하나를 보여주면 둘을 원하고 둘을 보여주면 셋을 원하지, 도저히 중단할 수 없었어"라며 자신이 저지른 비리, 협박, 회유, 불법적 로비 등에 대한 가책은 없이 자신 스스로 생산한 포퓰리즘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졌다. 줄기세포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되니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으나 사건의 빠른 전개와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듯 극에 몰입하게 하는 요소들이 등장한다.

인물들의 연기도 볼 만하다. '국익이 먼저냐 진실이 먼저냐'는 윤민철의 질문에 '진실이 국익'이라며 취재를 허락하는 국장 역할의 권해효, 임순례의 전작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비열한 베이시스트로 얼굴을 알렸던 박원상이 극중 <PD추적>의 진행자로 관객을 만난다.

오래 전 사각의 링 위에서 벌어진 권투 중계를 본 기억이 난다. 심판이 휘슬을 불자 파울한 선수가 억울하다는 제스추어를 취하다 통하지 않으니 급기야 심판을 두들겨 패는 장면을 본 일이 있다. 경기는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보자>의 한 장면

<제보자>의 한 장면 ⓒ 영화사수박


파울이 발생하면 심판이 휘슬을 불듯이, 제보는 계속 되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엉망진창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제보의 진위를 냉정하게 따지기도 전에 제보자를 두들겨 패는 것은 옳지 않다. "전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그래도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라며 제보자 심민호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일 언론은 지금 어디 있는가?

제보자 박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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