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8월초 박영선 원내대표가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게 되자, 그를 영화 <명량>의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는 말들이 많이 나왔다. 7·30 재보궐선거의 참패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고, '난파' 직전의 당을 이끌어야 하는 박 원내대표의 처지를 이순신 장군에게 대입한 것이다. 그러나 13척의 배로 승리한 이순신 장군과 같은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취임 5개월 만에 박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과 '최초의 여성 원내대표'라는 타이틀을 연이어 내려놓게 됐다.

박 원내대표는 2일 당 소속 의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서한을 통해 "책임이라는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다"라며 "원내대표직 그 짐을 내려놓으려 한다"라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세 차례의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외 비판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새정치연합은 오는 9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가 원내대표 직무를 대행한다.

'세월호'로 시작해 '세월호'로 끝난 임기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논의를 위해 9월 29일 밤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은 우윤근 정책위의장.
▲ 의총장으로 향하는 박영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논의를 위해 9월 29일 밤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은 우윤근 정책위의장.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박 원내대표는 지난 5월 헌정 사상 최초로 주요 정당의 여성 원내대표로 선출돼 기대를 모았다. 당시 새정치연합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로 몸살을 겪고 있었고, 대여 투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불거졌다. 당내 고질적인 문제인 계파주의를 넘어서 강한 원내협상력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 점에서 계파색이 옅고, '재벌개혁', '검찰개혁' 등에 앞장서며 정책과 정무 부야에서 모두 강한 면모를 보여 온 박 원내대표의 당선은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박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세월호 국정조사와 특별법 협상이었다. 특히 국정조사의 경우 7·30 재보궐 선거 등과 맞물리면서 여당에게 큰 부담이 되는 일정이었다. 국정조사 계획서 협상은 국정조사특위 간사인 김현미 의원이 주도적으로 했지만 박 원내대표도 직접 전면에 나서서 유가족들과 여당 원내지도부를 만났다. 결과적으로 청문회가 무산되는 등 국정조사가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여야 협상과정에서 박 원내대표는 적어도 진정성 있는 보습을 보였다.

박 원내대표 입지에 문제가 생긴 것은 7·30 재보궐선거에서 당이 완패한 이후 비상대책위원장의 역할까지 맡게 되면서다. 위기의 당을 이끈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또 기회이기도 했다. 역할에 부담이 과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박 원내대표가 겸직을 결심한 것도 '잘 해내면' 본인에게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기대감이 독이 됐다.

박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까지 맡게 되면서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조급한 모습을 보였다. 최대 현안이었던 특별법 협상을 매듭 짓고 당 정상화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여야 합의안은 유가족과 국민적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당내에서도 박 원내대표의 협상전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첫 번째 합의를 깨고 가져온 두 번째 합의안이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박 원내대표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다.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는 시도가 물거품이 된 일이다. 박 원내대표는 당의 외연을 넓히고 혁신을 위해 이 교수를 영입하려 했지만, 이 교수가 대선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는 점,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햇볕정책을 비난했다는 점이 당내 상당수 의원들의 반감을 샀다. 특별법 합의 추인과 비상대책위원장 영입까지 벽에 부딪치자 박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직 사퇴와 탈당까지 거론하며 얼마간 잠적하기도 했다.

논란 끝에 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직 사퇴와 함께 '세월호특별법 수습 노력을 한 뒤 그 결과에 상관없이 사퇴한다'는 당 의원 전수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당무에 복귀했다. 이후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정기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기조를 내세웠고,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다시 재개됐다. 기존 2차합의안을 유지한 상태에서 여야합의로 4인의 특검후보군을 추천한다는 것으로 최종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여전히 유가족들은 "유가족 참여가 배제되고 여당의 영향력이 강화됐다"라며 반대하고 있다.

박영선 측근 "마음 추스를 시간 필요... 의정활동에 집중"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사퇴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박 원내대표의 자리가 비어 있다.
▲ 박영선 원내대표의 빈자리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사퇴한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박 원내대표의 자리가 비어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어쨌든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을 매듭짓고 떠났다. 불만족스러운 법안을 굳이 매듭지었어야 했느냐는 비판이 존재하지만, 더 이상 박 원내대표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박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보낸 사퇴의 변에서 세월호 협상과정의 소회를 솔직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자신이 협상을 꼭 매듭지으려 했던 이유를 밝히며 그간 당내에서 제기된 비판의 목소리를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소리는 요란했지만 정작 목표는 이뤄지지 않는 많은 경우를 보았다"라며 "2004년 국가보안법 협상이 그랬고 과반 의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17대 국회의 검경 수사권 조정 협상이 그랬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지난해 국정원 개혁법 역시 우리가 개혁특위위원장까지 맡았지만 결국 법 한 줄도 고치지 못했다"라며 "세월호 특별법만은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또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라는 씨름을 벌인 시간이었다"라며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라고 당내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비상대책위원장 영입에 자신을 비판한 의원들에게 섭섭함을 내비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이날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 중간에 전화를 걸어 사퇴를 만류했으나 끝까지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사퇴하기로 했으니 깔끔하게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뭘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었다, 그동안 많이 지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박 원내대표의 행보를 묻는 질문에 "우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는 만큼 자신이 잘 해온 의정활동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박영선, #원내대표, #문희상, #세월호, #특별법
댓글1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