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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8일 오전 10시 50분]

언론계에서 20여년 근무하다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선발에 관한 업무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아탑의 울고 웃는 의제들을 공유하고 더 나은 혜안을 찾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 기자 말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헌법 제31조 4항은 대학의 자율성을 명시적으로 적시하여 보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자율성'은 한낱 허울 좋은 구호에 불과하다. 대학 구성원들과 대학 자체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법이 대학에 자율권을 줬더라도 구성원들이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권한은 유지는커녕, 영영 잃을 수도 있다.

최근 총장 선출방법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에 휩싸인 국공립대학들의 사례에서 대학 자율성의 침해가 잘 드러난다. 내부 구성원들에 의한 총장 직선제는 대학 자율성의 핵심 상징이다. 1987년 민주화운동에 힘입은 대학 구성원들의 값진 노력의 산물이다. 총장 직선제는 그 후 날로 확대돼 한때 전국 대학의 절반이 넘는 80여 곳에서 실시됐다.

MB정부 끈질긴 '대학 옥죄기', '총장 직선제' 줄줄이 포기

 2010년 11월 5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0년 11월 5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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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경쟁 일변도로 바뀐 교육정책은 대학의 자율성까지 유린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나서서 대학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도록 요구했다. 당시 교육계 수장이었던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국공립대학의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끊고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학들은 지금도 그때의 파장과 충격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MB정부의 끈질긴 '대학 옥죄기' 덕분에 많은 국공립대학이 앞다투어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다. 이때 일부 국립대학에서 유행한 말이 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리는 참을 수 없다."

'불리'를 당하기 싫어 총장 직선제를 슬그머니 간선제로 바꿨다. 투쟁을 통해 간신히 쟁취한 대학의 자율성을 도로 정부에 위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보수 언론들은 총장 직선제 폐지 당위성에 열심히 군불을 지폈다. 총장 직선제 무용론과 폐지를 주장하는 사설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총장 직선제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대학의 공개적, 민주적, 자율적 운영에 크게 기여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총장 직선제는 대학의 중추적 구성원인 교수사회의 의견을 반영한다. 교육민주화와 대학 자율화에 기여하며, 대학 구성원들의 참여의식을 고조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MB정부와 보수언론들은 교수들의 파벌조장과 갈등을 야기한다는 측면만을 부각하여 국공립대학들의 총장 직선제 폐지를 강요했다. 대학의 자율성 상징인 총장 직선제를 폐지토록 함으로써 대학 길들이기와 서열화에 자신감을 얻은 MB정부는 국공립대를 길들이고 그 노하우를 박근혜 정부에 고스란히 전수했다.

'총장 직선제 폐지', 이명박근혜 전수... 대학 자율권 유린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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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올해 초, 전국 국공립대학에 "총장 직선제 폐지를 학칙으로 정해 마무리하지 않으면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는 '이명박근혜 교육정책'의 대표 케이스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는 지난 1월 28일 전국 39개 국립대에 '총장 직선제 개선과 2014년 대학 재정지원사업 연계 알림' 공문을 보냈다.

교육부는 지방대 특성화 사업 추진계획안에 따라 지역대학에 5년 동안 1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은 국립대는 평가에서 불이익을 줄 것이라 엄포를 놓았다. 이에 대해 전국 국립대학교 교수회 연합회는 "헌법소원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결국 순순히 손을 들고 총장 직선제를 고스란히 반납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폐해가 적지 않다. 전국 국공립대가 총장 선출을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금권선거 등을 막기 위해 직선제를 폐지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많은 대학이 총장 선거를 간선제로 전환했다. 그러나 선거규정 미비와 후보자 자격 시비 등으로 선거결과가 무효 되면서 재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대학이 있다. 소송도 난무하고 있다.

총장 직선제는 기본적으로 대학 내 모든 교수들이 1인 1표를 행사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간선제는 대학 본부가 임명한 추천 위원 혹은 이사회만이 투표에 참여한다. 그 규모와 선정 기준은 대학별로 상이하지만, 통일주체국민위원회의 체육관 투표와 비슷한 형태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총장 임기가 만료됐거나 만료될 예정인 국공립대는 모두 10곳인데 벌써 절반가량이 총장 선출로 잡음이 일고 있다. 경북대는 지난 6월 치러진 총장 선거에서 규정 위반과 불공정 시비가 일어나 선거 결과가 무효로 처리됐다. 이후 3개월 동안 극심한 진통을 겪은 경북대는 오는 17일 다시 차기 총장 후보자를 재선정하기로 했다.

공주대는 지난 3월 총장임용후보 선거를 통해 2명의 후보를 추천했지만 교육부에서 '총장 후보 재선정 통보'를 받았다. 선거 이후에도 각종 소송이 제기되는 등 어수선한 형국이다. 김아무개 공주대 교수는 교육부를 상대로 지난 7월 '총장임용재청거부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육부는 총장 후보자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려놓고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며 "총장임용재청거부는 장관의 재량이고, 인사와 관련된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들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한국교통대도 지난해 총장선출 절차를 놓고 내홍에 휩싸인 적이 있다. 당시 논란은 교육부가 한국교통대 총장 임용후보자에 대한 재추천을 요구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총장임용추천위원회 위원 구성비율을 놓고 교수회 측과 마찰을 빚었던 직원단체가 직원 참여 비율 확대를 요구하고 나서 갈등이 골이 커졌다. 내홍을 겪던 한국교통대는 지난해 9월 16일 총장임용추천규정 개정 관련에 합의하고, 같은해 11월 6일 신임총장 1위 후보를 선출한 뒤 지난 3월 13일 신임 총장이 취임하면서 논란이 마무리됐다.

한국체육대 역시 총장 선출문제로 뒤숭숭하다. 이 대학은 지난 2013년 3월 김종욱 전 총장 임기가 만료된 뒤 비리 의혹과 논문 표절 등으로 3차례에 걸친 총장 후보자 공모가 무산돼 17개월째 총장이 공석이다.

'한 지붕 두 총장' 가능성... '돈으로 대학 흔들기' 멈춰야

 2014년 4월 17일 방송된 EBS 특집 다큐멘터리 <기적의 대학>의 한 장면.
 2014년 4월 17일 방송된 EBS 특집 다큐멘터리 <기적의 대학>의 한 장면.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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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는 차기 총장선거를 앞두고 간선제를 추진 중인 대학본부와 직선제 유지를 주장하는 교수회 간에 갈등과 반목이 커지고 있다. 전북대는 지난 9월 교수회에서 직선제 총장을 선출했으나 10월에 대학본부가 간선제 총장을 선출할 계획이다. '한 지붕 두 총장'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총장 선출 방식을 놓고 갈등을 겪는 전북대학교 교수회와 대학본부가 각자의 방식을 고수하며 '평행선'을 긋고 있다.

국공립대의 이 같은 사태는 지난 정부가 주도한 '총장 직선제 폐지'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 각종 정부 재정지원 사업을 끊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이 도화선이 됐다. 그 결과 거의 모든 국공립대가 간선제로 전환했다. 이 중 부산대와 전북대 등 일부 대학들은 교수회와 학교 간 소송까지 진행 중이어서 후유증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총장 선출방식을 대학에 자율로 맡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 역시 여러 차례 공문을 통해 교육부 관료가 지정한 총장 선출방식 외에는 다른 방법을 취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 대학 간 경쟁은 정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된 '재정지원권 획득 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정부가 손을 떼고 대학에 자율을 줘라. 그러면 대학 경쟁력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대학 내부의 뼈 있는 지적을 박근혜 정부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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