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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며칠간 남북관계에서 최대 핫 이슈는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의 건강이상문제였다. 북한 스스로 "불편하신 몸"이라고 밝힌 가운데, 그가 양쪽 발목뼈 수술로 입원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2010년에 사망한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엉뚱한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주목한 것 중 하나가 현재 인천 아시안 게임에 참가중인 북한 선수단의 동향이었다. 김 비서에게 특별한 이상이 발생했다면 인천에 와 있는 선수단이 조기 귀국하거나, 중간에 들어오기로 한 선수들이 안 오거나 또는 경기력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없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장수명 북한올림픽위원회 대표와 축구·조정 선수와 심판, 기자단 등 1진 94명이 9월 11일 오후 고려항공을 이용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탄 북한 선수단이 환영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시민들 향해 손 흔드는 북한선수단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장수명 북한올림픽위원회 대표와 축구·조정 선수와 심판, 기자단 등 1진 94명이 9월 11일 오후 고려항공을 이용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탄 북한 선수단이 환영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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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평양을 다녀온 이들이 있다면 당연히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된다. 마침 윤이상음악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차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평양에 다녀온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영담스님은 "외부인의 짧은 방문이라 보는 데 한계가 있지만 평양은 평온했다"고 전했다.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극히 경색된 가운데 정보통제가 심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북교류가 갖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한반도국제포럼 연설에서 "전제조건을 내걸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남북 간 여러 현안을 풀려면 대화를 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회담 테이블에 놓고 풀어 나갈 용의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그 자체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지난해 8월 11일 정부가 제안한 남북고위급 회담에 대한 북측의 호응을 끌어내서, 한반도의 긴장도를 낮추고 매우 낮은 수준인 현재의 남북교류를 정부 간 대화로 상승시키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보면 류 장관의 제안은 '돌출'성으로 보인다. 류 장관 발언 전날 박근혜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북한 인권 상황을 맹비판하면서 국제사회의 공동대처를 촉구했다.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고, 실제로 '정치매춘부의 추태'라는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3일 연속 비난했다. 박 대통령도 국무회의(9월 30일)와 국군의날 기념사(10월 1일)에서 "그만큼 인권 문제가 아프고 가슴을 찌르는 문제이기 때문에 제 실명을 거론하면서 맹비난하는 것"이라며 계속 맞대응했다.

인권은 인류보편의 가치이고 북한인권 문제는 해결돼야 할 과제이지만, 이같은 '팃-포-탯'(tit for tat, 맞받아치기)방식으로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커녕 고위급 회담도 이뤄지기 어렵게 만들고, 북한인권 문제 해결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은 유엔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북한 인권을 비판하면서 장관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촉구하는 이런 모습에 대해 '비전략적인 악수'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북한이 인권 문제와 관련해 그나마 귀를 여는 곳은 요란한 미국이 아니라, 지원을 병행하면서 조용하고 꾸준하게 문제를 제기해온 유럽이다.

"전제조건 내걸면 문제 못 푼다"면서, 북핵문제는 '선조치' 요구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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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장관의 연설 자체에도 혼란스러운 대목이 있다. 그는 "전제조건을 내걸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모든 문제를 회담 테이블에 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했지만,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은 이와는 정반대다.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에 대해 "진정성 있는 선조치가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북핵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미국에 편승해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해놓고, 실제로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의 대북정책은 핵문제를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는 다르다고 강조해왔지만, 실제 차이점은 없었다. 박 대통령도 지난번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그럴 경우 경제발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개발 성공(또는 성공 근접), 미 본토위협 이동식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실전 배치 징후 등에 대한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해온 국제적 대북 압박과 군사적 대응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최근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의 조언은 귀 기울일만하다. 그는 지난달 22일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남북 경협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관련기사: "기존 대북정책, 효과 못내… 수정해야" )했고, 이어 25일 한 포럼에서는 "'핵과 군사적 압박'이라는 현재의 상황이 구조적인 문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핵문제 해결을 모든 문제에 우선하는 입장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석현 "핵문제를 모든 문제에 우선하는 입장 바꿔야"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지난 몇 년 동안 정체상태"라고 개탄한 그는 ▲ 핵에 관한 어떠한 잠정적인 합의와 조치를 취하고 평화와 협력의 방안을 논의할 것인가 ▲ 5.24 조치를 그대로 두고는 대화 자체를 시작할 수가 없는데, 5.24 조치의 해제 방안은 무엇인가 ▲ 미국과 중국의 역할에 더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의 Initiative(주도)로 남북한이 핵과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고 미국과 중국을 견인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등의 과제를 제기했다.

이와 함께 <조선일보>도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고, 새누리당에서도 5.24조치 해제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이미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아시안게임과 유엔 총회라는 좋은 기회를 날려버렸는데 말이다.


태그:#아시안게임, #유엔총회, #북한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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