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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밀양 할매.
 팽목항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밀양 할매.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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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일요일(지난 28일) 밀양에서도 팽목항으로 가는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합니다. 함께 갈 어르신들은 신청해 주세요."

지난 20일 후원주점을 위해 밀양 할매, 할배 들은 서울로 향했습니다. 21일에는 송전탑을 막기 위한 할매, 할배 들의 분투기를 담은 <밀양 아리랑>을 상영한 영화제에도 참석하셨고요. 출발 전날인 27일에도 촛불 문화제를 대신한 연극 관람에 참여하셨습니다. 밀양에서 팽목항까지는 330km. 버스로 약 4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바쁜 일정에 농번기가 겹쳐 신청하는 인원이 거의 없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명의 할매, 할배가 신청하셨습니다. 함께 참여하신 덕촌 할머니께 "힘들지 않느냐"고 여쭤봤습니다. 할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힘들지. 버스 오래 타면 다리도 아프고. 근데 그동안 농성장에 있을 때 우리한테 누가 찾아오면 그렇게 좋고 큰 힘이 됐잖아. 이번에는 우리가 힘이 돼줘야지. 그래서 신청한 기라."

텅 비어있는 진도 실내 체육관 주차장
 텅 비어있는 진도 실내 체육관 주차장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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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진도실내체육관

오전 7시 30분에 밀양을 떠난 버스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진도 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TV에서 봤던 것과 달리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자원봉사자들과 두 대의 대형스크린이었습니다.

왼쪽 화면에는 <전국 노래자랑> 속 흥겨운 노래들이 흘러나왔고, 오른쪽 화면에는 실시간 세월호 침몰 현장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흥겨운 노래와 말소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지만 누구도 흥얼거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TV 속 세상의 흥겨움이 이곳의 적막감을 달래주진 못했습니다.

진도체육관에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10명의 실종자 유가족과 자원봉사자 20여 명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실종자 유가족은 오전에 바지선을 타고 세월호 침몰 지점에 가 계셨습니다. 체육관에 남아 있던 유가족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진도체육관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년에 도민 체육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해는 하지만 너무 속상하다. 우리가 이곳에 머물고 싶어서 있는 것도 아닌데..."

그에게 한옥순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언제까지나 우리가 응원하고 힘을 함께하겠다."

진도실내체육관
 진도실내체육관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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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의 말씀을 듣고 그가 악수를 청했습니다. 침착하게 정부의 무능과 현재 상황을 말해주던 그였지만, 할매가 따뜻하게 안아주자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할 수 없는 예능 프로그램의 재잘거림이 아니라 진정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는 시민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체육관에 있던 많은 사람이 함께 훌쩍였습니다.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아이들만 "까르르" 웃으며 드넓은 체육관에서 뛰어놀았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누구의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떼고 겨우 버스에 올랐습니다.

바다 향해 올린 108배..."미안하다, 얘들아"

바다를 향해 108를 올리는 밀양의 할매, 할배들
 바다를 향해 108를 올리는 밀양의 할매, 할배들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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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뒤 이동한 곳은 팽목항.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등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노란 리본에 적어 달았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도 뭍에 올라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올린 음료수와 과자들이 가득했습니다. 노란 바람개비와 리본들은 색이 바래고 있었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였지만 할매, 할배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징소리에 맞춰 108배를 했습니다.

108배를 마치고 자리를 정리할 즈음, 다른 유가족 한 분이 팽목항에 왔습니다. "아이들을 이미 가슴에 묻었는데 앞으로 뭔들 못하겠습니까. 아주 작은 뼛조각이나마 찾을 때까지 아이들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할머니들께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할머니들 역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이 억울함을 풀 때까지 함께 하겠다"며 힘을 보탰습니다.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할매와 할배들이 입고 오신 티셔츠에 적힌 문구입니다. 국가나 공권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밀양의 할매, 할배 들. 제대로 된 구조 한 번 받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단원고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밀양의 할매, 할배 들은 그동안 밀양을 찾은 전국의 연대자로부터 받은 연대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목에 노란색 리본이 걸려 있습니다.

팽목항
 팽목항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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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팽목항,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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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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