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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노동운동이 오랫동안 품었던 꿈이다. 1996년 말 안기부법과 노동법의 날치기, 뒤이은 초유의 정치적 총파업은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더욱 각인시켰다. 이 총파업을 계기로 탄생한 국민승리21은 민주노동당의 뿌리가 됐다.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진보정치는 주변화 됐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민주노총은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와중에 배타적 지지를 철회했고,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4개 진보정당을 포함한 6개 정치조직(노동·정치·연대,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포함)에 대한 지지방침을 정했지만 위력은 없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 울산에서 구청장 1명을 포함해 총 27개의 의석을 얻었던 진보정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모두 10석에 머물렀다. 울산 광역의원비례대표 득표에서 진보정당이 새정치연합에 밀린 것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처음이다. 새누리당 55.46%, 새정치연합 23.76%, 통합진보당 12.1%, 정의당 3.67%, 노동당 4.98%였다.
▲ 2010년과 2014년 울산지역 지방선거 결과 비교 2010년 지방선거에 울산에서 구청장 1명을 포함해 총 27개의 의석을 얻었던 진보정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모두 10석에 머물렀다. 울산 광역의원비례대표 득표에서 진보정당이 새정치연합에 밀린 것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처음이다. 새누리당 55.46%, 새정치연합 23.76%, 통합진보당 12.1%, 정의당 3.67%, 노동당 4.98%였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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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는 참담했다. 진보정치 1번지, 노동운동의 메카로 불리는 울산에서도 '노동자 바람'은 멈췄다. 2010년 지방선거에 울산에서 구청장 1명을 포함해 총 27개의 의석(민주노동당 25, 진보신당 2)을 얻었던 진보정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10석(통합진보당 9석, 노동당 1석)에 머물렀다. 울산 광역의원비례대표 득표에서 진보정당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밀린 것은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처음이다(새누리당 55.46%, 새정치연합 23.76%, 통합진보당 12.1%, 정의당 3.67%, 노동당 4.98%).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 뿐인가? 지난 9월 22일, 울산에서 4명의 노동자를 만났다. 24년차 현대자동차 노동자인 김기봉(47·진보당 당원), 1987년 현대엔진에 입사해 현대중공업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김병조(51·정의당 울산 북구위원장), 198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세상에 눈을 떴다는 서대환(57·새정치연합 당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으로 4년차 해고자 신분인 김성민(43·노동당 당원)씨다. 이들은 오늘날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6·4 지방선거 성적표, "결국 올 것이 온 것"

-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의 성적표가 대단히 안 좋았다. 울산에서도 진보정당 소속 구청장 이 모두 재선에 실패했고 진보정당 의석도 확연히 줄었다. 이제 노동자들도 진보정당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어떻게 보고 있나?

24년째 현대자동차에서 일하고 있으며 2002년에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현재까지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서 대의원과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현장 활동가로 살고 있다.
▲ 김기봉(현대자동차·47·통합진보당 당원) 24년째 현대자동차에서 일하고 있으며 2002년에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현재까지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서 대의원과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현장 활동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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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봉(현대자동차, 진보당 당원) : "울산에서는 한 가지 분명한 원칙이 있다. 어느 (진보)정당이 후보가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야권이 뭉치지 않으면 절대로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아쉬운 것은 (다른 진보정당들이 자신의) 당선을 목표로 세운 것이 아니라 진보당을 견제하려고만 했던 것 아니냐는 점이다.

북구청장 선거는 민주당 후보(집담회 참가자들은 '새정치연합'을 줄곧 '민주당'이라 불렀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수정 없이 그대로 싣는다. - 기자 말)만 없었다면 당선이 가능했는데, 결국 낙선했다.

동구도 마찬가지다(현직 구청장이었던 울산 북구 윤종오 통합진보당 후보는 43.06%를 득표해 44.94%를 득표한 새누리당 박천동 후보에게 패했는데, 김재근 새정치연합 후보가 11.99%를 득표했다. 동구 역시 현직 구청장인 김종훈 통합진보당 후보가 40.44%를 득표해 44.94%를 득표한 새누리당 권명호 후보에게 패했다. 새정치연합 유성용 후보와 노동당 손삼호 후보의 득표율은 각각 9.13%와 5.46%였다 – 기자 말)."

김성민(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당 당원) : "선거 때만 되면 야권단일화라는 극약처방을 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야권단일화만 계속 이야기하니까 진보정당들이 발전을 못 한다. 진보정당 간에 (진보당에 대한) 견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간다면 결국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 '이런 상태'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김성민
: "중구 구의원으로 활동하던 통합진보당 후보가 종북시비가 일어나니까 갑자기 탈당해서 민주당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 지역에서 (그 후보를) 밀어주던 (다른) 세력이 있었던 거다. 그 사람들이 '너는 되는데, 통합진보당은 안 된다'고 하니까 재선하려고 (진보적 가치를) 버렸다. 상황이 이런데 야권연대로 당선되려고만 하는 것은 극약처방일 뿐이다. 우리 스스로 진보적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한다."

서대환(현대중공업, 새정치연합 당원) : "난 좀 달리 본다. 울산을 진보정치 1번지라고들 하는데, 정말 맞는 말인가? 이제까지 투표하는 사람들이 정말 진보가 뭔지 잘 알아서, 통합진보당,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이 어떤 정치를 하려는지 잘 알아서 찍어 줬나? 그동안 진보당이라서 표를 준 게 아니라 야당이라서 찍었던 거다.

이걸 착각하고 (울산 유권자들이) 진보라고 하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는 시대가 변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진보정당들이 야당성, 진보성을 상실한 결과다. 싸우고, 찢어지고... 예전엔 현장 사람들도 진보라는 말에 애정을 갖았는데, 이제 새누리당과 맞서 싸울 야당이라는, (그 사람들이) 진보라는 생각이 없어진 거다."

김병조(현대중공업, 정의당 북구 지역위원장) :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다. 늘 통합하고 나면 또 다시 흩어져 버렸다. 현장에서 '왜 그랬는데?'라고 물으면 답할 게 없다. (정당 활동을 하는) 우리끼리는 이런저런 의견이 있고 어느 정파세력의 힘이 커지면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데는 차별받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만, 평범한 조합원들에게 그런 얘기는 못한다.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이런 것을 평가하면서 서로 단점을 보완하고 뭘 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이것도 잘 안 되는 걸 보면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다. 올 것이 왔는데도 우리는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선거연대는 왜 실패했나?

1987년 현대엔진 노동조합에서 일하다 1990년 현대중공업과 합병되면서 2000년에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로 활동했으며, 현 노조 집행부이기도 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이었지만 2008년 탈당 후 2011년 민주노동당에 재입당했고,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때 정의당에 입당, 울산 북구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김병조(현대중공업·51·정의당 울산북구 지역위원장) 1987년 현대엔진 노동조합에서 일하다 1990년 현대중공업과 합병되면서 2000년에 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로 활동했으며, 현 노조 집행부이기도 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이었지만 2008년 탈당 후 2011년 민주노동당에 재입당했고, 2012년 통합진보당 분당 때 정의당에 입당, 울산 북구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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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으면 좋겠다. 울산에서도 진보정당이 힘을 쓰지 못한 것은 진보정당 끼리의 갈등이 근본적인 이유 같다. 최소한의 선거연대도 어려울 정도인가?
김병조 : "울산 제1야당인 통합진보당의 경우 선거 1년 전부터 지역위원회마다 (출마할) 후보를 세우고, 자기 식구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이번에 이영순 울산시장 후보가 대표적이다(6·4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영순 통합진보당 울산시장 후보는 새누리당 심판을 위해 후보직을 사퇴했다 –기자 말).

양보한 것이라고 하는데, 현직 구청장 두 명 살리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다른 정당들은 그런 것을 정치적 술수라고 본다. 한 예로 울산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노동당 사람이 어떤 지역에 출마했는데 진보당하고 민주당에서도 후보를 다 내더라. 사람들이 '미친 것 아니가?'라고 했다. 이렇게 하니까 하나가 될 수가 없는 거다. 욕심이 보이고, 상대방이 선하게 보이지 않는다."

- 진보당만 그랬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동구와 북구 구청장 선거에서는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통합진보당 후보였지만 민주당과 노동당에서도 후보를 냈다.
김병조 : "모든 정당이 그랬다는 것이다. 다 그렇게 했는데... 특히 울산의 경우 제1야당(통합진보당-기자 말)이 좀 더 어른스럽게 조절할 수 있지 않았나? 후보를 먼저 꽂아 두는 게 아니라 먼저 다른 정당과 이야기를 해보고... 누구나 인정하는 상품성이 있는 후보가 있다. 그런데 상품성도 안 되는 사람을 빅딜하려고 (미리) 꽂아두면, 아무리 다른 정당 당원들에게 찍어달라고 해도 안 찍어 준다."

- 그럼 동구하고 북구에 다른 야당이 후보를 낸 것은 괘씸하니까 '너희도 당해 봐라' 이런 거였나?
김성민 : "노동당은 야권연대를 반대했다. 민주노총이 지방선거 방침으로 '민주당을 제외한 야권연대'에 동의하고 지원하자고 했다. 그런데 야권연대를 하면 우리가 나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나? 물론 동구(구청장 후보)에 우리당 당원이 출마하겠다고 해서 많은 고심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출마하려는 분이 있는 마당에 안 된다고 할 명분이 없었다."

서대환 : "내가 보기엔 정치적인 계산들이 많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울산에서 영향력이 좀 있는 노동당 인사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통합진보당 친구들이 당선되면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동구에서는 그런 것이 좀 강했다."

- 그럼 새누리당 심판을 강조했던 민주당에서는 양보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서대환 : "왜 양보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진보당에서 설득을 안 했던 것 아닌가? 가서 '양보해 달라'고 설득했으면 됐을 것 같은데?"

김기봉 : "북구의 경우엔 민주당에 찾아가서 세 번 정도 설득해본 것으로 알고 있다. 잘 안 됐다."

서대환 : "사실 북구는 (새정치연합) 특정 분파 사람들이 자기 세력 심기에 바빴다. 아마 그쪽 사람이라 설득하기 어려웠을 거다. 사실 울산에서 정치 안 해야 할 사람이 많다. 지금이라도 마음 먹고 다시 뭉쳐보자고 하면 또 모르겠지만. 막말로 비정규직 살리려면 권력 잡는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뭉치는 수밖에 없다. 민주당까지 같이 합쳐서. 더 이상 국민들에게 야권연대를 말하면 그걸로 끝이다. 짜증난다. 국민들도 다 싫어한다. 정파등록제(비공식 정파를 양성화하여 일종의 당내 당을 만들자는 구상.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직전 심상정 비대위에서 제출한 혁신안 중 하나다. - 기자 말) 같은 거라도 만들어서 정당들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

"지금이 최악? 더 남았다"

지방선거에 나섰다가 사퇴했던 통합진보당 이영순 전 울산광역시장 후보와 고창권 전 부산광역시장 후보가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6월 2일 오후 강병기 경남지사 후보와 함께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한 진보정치를 되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지방선거에 나섰다가 사퇴했던 통합진보당 이영순 전 울산광역시장 후보와 고창권 전 부산광역시장 후보가 지방선거를 이틀 앞둔 6월 2일 오후 강병기 경남지사 후보와 함께 경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농민, 서민을 위한 진보정치를 되살려달라"고 호소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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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선거결과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가 뭔가?   
김성민 :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정치권이 노동운동하고 심하게 단절됐다고 느낀다. 신뢰가 무너지고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정규직 불법파견 싸움 했을 때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 대표들이 다 와서 맨 앞에 섰었다. (그러나)그 사람들은 노동자들과 똑같은 것을 요구하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뭔가 해결해보려는 식으로 섣불리 합의하고 야합하려고만 했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이 그런 사람들을 안 믿게 됐다. 노동자가 정치인들과 단절되고, 정규직들은 자기 기득권 때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야기 못한다.

선배 정치인들이 잘 조정해 왔었어야 했는데 (진보정당 소속) 구의원, 시의원이 되면 새누리당 의원하고도 악수하고 밥 먹으러 가면서, 다른 (진보)정당 사람들이나 계파가 다른 사람들하고는 밥도 안 먹고 뒤돌아서면 욕한다. 이런 게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은가? 이건 계파문제라기보다 기득권 문제다."

김기봉 : "좀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정당의 기득권이 얼마나 되나? 한 99%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딴 데 있다. 그런데 한 1%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부린다고 비판하면서 갈등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 사실 (진보정당이) 부자가 되고 난 다음에 파이를 나누면 좋은데 지금 진보정당 구조에서는 먹을 것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기득권 따지고 그러면 진짜 기득권은 웃을 것 같다."

김성민 : "저는 다르게 생각한다. 자기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르면 아래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파이 크기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정치인이라면 노동자의 정체성을 지켜주려 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노동자 편에 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지 노동자들이 뭉치고 정치권과 노동자들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렇게 못하니까 노동자 출신 새누리당 의원들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가 없어지려면 최악의 수준까지 가야한다."

- 지금보다 더 최악의 수준이 있나?
198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보수적인 노동자로 살다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면서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을 이끄는 등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이었지만 노사모 활동을 하면서 열린우리당에 입당했고, 이후 국민참여당과 통합진보당을 거쳐 2012년 민주당에 입당했다.
▲ 서대환(현대중공업·57·새정치연합 당원) 198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보수적인 노동자로 살다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면서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을 이끄는 등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이었지만 노사모 활동을 하면서 열린우리당에 입당했고, 이후 국민참여당과 통합진보당을 거쳐 2012년 민주당에 입당했다.
ⓒ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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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환·김병조 : "다 떨어져봐야 한다."

김성민 :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아버님 어머님들이 새누리당을 찍는 세상이다. 좀 비관적일 수 있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아니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끝까지 노동자의 요구를 대변하고 노동자 편에 서야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끈이 끊어지지 않고, 노동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 이제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 진보정당이 모두 그렇게 해왔다는 것인가?
김성민 : "그렇다. 내가 구의원이 됐으니까 계속 구의원하기 위해서 재선에만 신경 쓴다는 식이다. 당선된 다음에 실제로 얻은 표를 분석해봐서 노동자들한테서 (표가 별로) 나온 게 없다 싶으면 다른데, 사장님한테라도 손 벌려야 되고, 이런 것 아닌가? 그렇게 해서 자기의 (정치적) 생명은 유지된다 하더라도 노동정치와는 (관계가) 끊어진다."

김병조 : "중앙당에 너무 의존한 것도 이유다. 이를테면 이번에 진보당 이석기 의원 같은 문제가 생기면 구의원들도 거기에 다 흡수되어 버린다. 현수막이나 소식지도 다 그 얘기다. 물론 하청 노동자 이야기도 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정의당도 그렇고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보니 노동자들이 '정당정치가 우리 노동자들의 삶을 도와주는 거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 모두 중앙당 따라가는 식이 되니까 지역정치가 되살아나지 않는다."

- 서대환씨는 가장 오랫동안 울산에서 노동운동을 해왔는데, 좀 다른 시각도 있을 것 같다.
서대환 : "아까도 말했지만 유권자들이 진보정당이기 때문에 (그동안) 통합진보당을 찍어 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장 정서는 야당이기 때문에 찍어줬다는 거다. 그리고 비정규직에게 잘 못해줬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진보세력을 인정 안 한다고 하는데 울산에서 박근혜가 문재인보다 표가 더 나왔다. 비정규직이 박근혜가 더 좋아서, 자기들에게 더 잘 해줘서 찍은 건가? 아니거든.

진보정당이라는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전부 기득권만 만들어 놨다. 현대중공업에서 뭐하고 있나? 돈 올려달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는 적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데 비하면 (받는 돈이) 많다. 내가 32년 근속에 학자금 포함해서 작년에 1억 8백만원 받았다. 대한민국 노동자 기준으로 보면 많은 편이다. 현대자동차도 끊임없이 돈 가지고 요구하고 있다. 이 사람들이 사회문제나 세월호 가지고 싸우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 걸 조절하는 세력 하나 없으면서 정치꾼들이 노동자들 안 도와주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진보정당이 또 뭘 만들어 놨냐면, 개인 소영웅을 만들어 놨다. 진보가 그러면 안 된다. 진보가 그 동안 뭘 했는지 명확히 되짚어 보고,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봐야 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12년 동안 어용이었다. (그동안) 자기들끼리 내부적으로 정치사업만 하다 말아 먹은 거다. 안에 아무 것도 안 남았다. 자기 아니면 적이잖아? 노동자들은 살려면 뭐가 진보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김기봉 : "현대자동차에서는 '실리'의 반대말이 '정치'다. 현장에서 정치를 주장하면 나의 실리를 왠지 모르게 포기하라는 느낌을 받는다. 1998년 IMF외환위기 이후 그런 정서가 생겼고, 현장 활동가들은 조합원들이 좋다는 부분만 얘기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노동조합 교육할 때도 '정치문제에 대해 교육 좀 하자, 조합원들 의식을 좀 높이자'고 아무리 얘기해도 정치의제를 선택하지 않는다.

활동가들이 밖에서는 정치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실제 현장에 가면 정치의 '정'자도 얘기 안 한다. 그러니까 (정치와 현장이) 유리 되는 거다. 현장에서 정치 얘기하면 '참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진보당이나 정의당이나 민주당이나 현장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선거 때만 되면 그런(정치) 얘기를 하니까 조합원들이 '저게 뭐냐?'라고 하는 거다. 현장의 일상 활동에 정치활동이 없다."

진보정치, "노동자들은 크게 뭉치라고 한다"

- 대체로 진보정치가 노동현장과 괴리되어 있었다고 보고 계신 것 같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나치게 파편화된 진보정치의 현실도 한몫 하고 있지 않나? 진보정당만 4개에다 정치조직도 많은데, 일반 노동자 입장에서는 차이도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다. 
김병조 : "(진보정치가) 일부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의 생각에 따라 움직인 결과라고 본다. 울산지역만 봐도 그렇다. 2011년에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이 통합을 추진할 때, 진보신당은 당원들이 '이런 방식 통합은 원치 않는다'고 했고,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상층에서 통합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내가 북구 (민주노동당) 당원이었을 때 통합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갔는데, 국민참여당은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당원들이 많아서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 사람들과 함께 하면 부딪힐 텐데, 얼마나 맞춰 줄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이걸(3당 통합) 당원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설명회는 하지만 토론을 충분히 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현재 (통합) 일정은 이렇다'고 하더라. 그런데 결국 우려했던 것처럼 진보신당과는 합치지도 못했고, 겨우 국민참여당과 통합했는데 선거부정 파문으로 또 갈라졌다. 이런 상층 중심 구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가자고 하는 기조가 분명한 정당 지도자나 대표자들의 의견에 따라 움직이는 폐단이 남아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조합원으로 불법파견 문제로 싸우다 2011년 2월에 해고된 후 쭉 해고자 신분으로 살아왔다. 2003년 비정규직 노동조합 설립시기부터 노조활동을 시작하면서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지만 바로 탈당했으며, 2008년 진보신당에 입당, 현재 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김성민(현대자동차 비정규직·43·노동당 당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조합원으로 불법파견 문제로 싸우다 2011년 2월에 해고된 후 쭉 해고자 신분으로 살아왔다. 2003년 비정규직 노동조합 설립시기부터 노조활동을 시작하면서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지만 바로 탈당했으며, 2008년 진보신당에 입당, 현재 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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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활동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평당원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은 이렇게 파편화된 진보정치의 현실에 대해 뭐라고 하나? 
김성민 : "노동자들이라면 당연히 크게 뭉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힘이 있는 정당을 원한다.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정치활동을 하는 이유가 노동조합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을 정치권에서 풀어줘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리해고법이라든지 비정규직관련법 같은 것은 국회에서 해결해 줘야 한다. 사실 현장에서는 노동당이 뭔지, 진보당이 뭔지 잘 구분 못한다. 그냥 새누리당이 싫다는 것만 통일이다. 그렇다면 당을 좀 뭉쳐 놓는 게 좋지 않겠나?

정말 믿음을 주는 당이 하나 있으면 자기 부모를 비롯해서 자기 친구들까지 다 찍게 할 것 같다. 서로 합의가 된다면, 정파등록제 같은 걸 실행해서 하나의 당으로 뭉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사실 당원 입장에서는 (진보정당들이) 충분히 정치력을 발휘해 줬으면 한다. 그런데 정치하시는 분들이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 '진보정당은 통 크게 합쳐라'는 것이 일반 노동자들의 정서라는 평가에는 모두 동의하나? 민주당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것 같은데?
김병조 : "민주당도 상관없지 않나? 울산 노동자들 정서는 '너네 후보 한명만 내놔라'는 것 아닌가?"

서대환 : "그렇다. 대중이나 민중이나 노동자 정서는 '새누리당하고 맞짱 뜰 수 있는 그런 세력'을 만들어달라는 게 가장 큰 요구다. 그런데 그게 참 하기 힘들다." 

김성민 : "정말 솔직하시다.(웃음) 사실 현장에서는 민주당이라서 안 된다는 말은 안 나온다. 새누리당만 아니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야권단일화가 논의될 때도 민주당이 들어가도 되냐 아니냐는 의문은 갖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민주당까지 보수야당이고, 새누리당과 크게 틀리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김병조 : "그건 전문가 입장이다. 대중들의 입장은 아니고. 대중들은 '하나만 내놔라' 한다."

서대환 : "난 민주당을 이렇게 봤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 권영길씨가 주장했던 세상보다 진보적이냐 그렇지 않으냐, 문재인이 주장하는 세상이 이정희가 주장하는 세상보다 더 진보적이냐 아니냐를 이야기해보면 그 문제는 정리될 수 있다. 안철수가 생각하는 세상은 나도 반대다. 왜? 그 세상은 대중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세상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 아닌가?"

김성민 : "사실 비정규직 입장에서 보면, 노무현 정권 때 노동자 구속이 제일 많았다. 그때 (구)파견법을 개정해서 불법파견이 많아졌다. 그게 바뀌는 바람에 자동차에서 정규직을 고용해도 되고 안 해도 되게 됐는데, (정규직을 고용) 안 하면 그냥 벌금 3천만 원 정도만 내면 끝나는 법을 만들어 놨다. 대통령으로 실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왜 자기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안 쏟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눈치를 봤냐는 거다. 그래서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 거다."

김기봉 : "사실 진보정당이 힘들어진 것에는 민주당 책임도 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호남지역과 영남지역의 기득권 정당이다. 중산층 표와 진보 표까지 얻으려는 민주당의 욕심은 과하다. 차라리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게 중산층을 더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진보적인 요구들에 대해선 좀 더 솔직하게 '자신 없다'고 했다면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게 넓어지는데... 민주당이 차라리 우클릭을 더 해서 좀 더 분명하게 중산층을 잘 대변했으면 좋겠다. 진보 쪽은 진보정당들이 책임지는 게 맞다. 민주당이 사실은 진보적이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만 그렇게 하는(척 하는) 바람에 진보정당이 힘든 측면도 있다."

(* 2편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집담회는 민주노총, 박정환, 강종구, 정용일, 이상범, 김은희, 박래훈, 강시원, 안영선, 오은혜, 정규식, 김보연, 윤지선, 이승철, 홍기웅, 홍명근님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속기·정리: 정경윤, 장소후원: 울산 동구 협동조합식당 "라온누리"



태그:#진보정치, #노동운동,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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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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