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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피천 전경.
 왕피천 전경.
ⓒ 한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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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남은 마지막 자연유산으로 불려온 왕피천은 지나가는 자리마다 수려한 협곡이 이어진다. 조선시대 지리서 <택리지>에는 이 일대 자연경관에 대해 "산과 바다 사이에 기이하고 훌륭한 경치가 많으며,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물과 돌이 맑다"라고 기록돼 있다.

동물, 식물, 어류, 조류 등 다양한 종들의 서식지가 되어주는 왕피천 일대는 하류로 내려오며 자연정화 작업으로 더욱 맑고 투명해진다. 왕피천 하류가 지나는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는 마을을 둘러싼 야산과 왕피천이 '비단으로 둘러놓은 것처럼 아름답다'하여 막금마을이라 불렸다. 이 마을은 비단에 둘러싸인 것처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유기농 농사를 철칙으로 하는 무공해마을이다.

왕피길 3구간 출발지, 오전 7시 30분에 막금마을 정자에서 모인다.
 왕피길 3구간 출발지, 오전 7시 30분에 막금마을 정자에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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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금마을(수곡2리)에서 출발하여 하원리 36번 국도에 도착하는 왕피길 3구간은 약 7.6km의 거리이며,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8시간이 소요된다. 왕피길 3구간에선 앞의 구간들과 같은 천혜의 자연유산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이 지역의 민속유산을 접할 수 있다.

40년 전까지 지역 주민들이 서울을 오가던 한티재 옛길과 마을의 성황당, 남사고 선친 묘, 우리 근대 역사 유산인 화전민 터와 광산 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100년 전의 사람들이 걷던 길을 걸으면 시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아늑한 금강송 군락과 흐르는 물, 과거의 발자취에 심취할 수 있다.

최근 막금마을에선 오래된 성황당 옆에 새로운 성황당을 지었다.
 최근 막금마을에선 오래된 성황당 옆에 새로운 성황당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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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 수곡리를 지켜온 마을의 수호신

오전 7시 30분. 휘영청 늘어진 굴참나무 거목에 작은 인사를 건네고 본격적인 여정에 나선다. 농수로를 따라 이어진 길의 수풀을 헤치고 걸음을 내딛는다. 왕피천 맑은 물을 바라보며 걷기를 몇 분. 마을의 성황당이 나타난다. 매미와 루사 태풍 때도 버티며 수곡리를 보듬은 성황당이다.

이 성황당은 1600여 년경부터 성황신을 모셔왔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1700년경에 강원도 감찰사가 말을 타고 지나가려는데, 말이 길목에서 멈춰서 가지 않았다. 내려서 성황당에 절을 했더니 그제야 말이 움직였다고 하다.

한티재 입구에 정갈하게 있는 두 성황당을 보면 이곳을 수호하는 산신령이 나란히 앉아 있는 듯하다. 수곡리 성황당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제사를 지낸다. 수곡1리에서 보름 전날, 수곡2리에서 보름날에 제를 드린다. 제관들은 하루 전에 당도하여 성황당 안팎을 청소하고, 몸을 청결히 해야 한다. 제사를 지낼 땐, 부적을 태우며 마을 모든 성씨들과 외지에 있는 자손들의 무사안녕을 비는 말을 왼다.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한티재 옛길. 과거 대로로 사용됐던 이 길은 36번 국도가 깔린 후에 사용되지 않아 소로가 되었다.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한티재 옛길. 과거 대로로 사용됐던 이 길은 36번 국도가 깔린 후에 사용되지 않아 소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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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을 지나 비포장 길을 걷다가 산림 속 능선부를 따라 이어진 길로 접어든다. 워낙 훌륭한 토질과 일조량에 곳곳엔 송이가 자연적으로 핀다. 마을의 주요 수익원으로, 인공으론 절대 수확할 수 없는 좋은 송이다.

이내 한 줄기 흙길이 드러난다. 차 없이 모든 운송을 해결하던 시대에 선조들의 발밑을 채워주던, 한티재 옛길이다. 과거 40년 전까지 지역민들이 넘나든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흔치 않은 길이다. 한티재는 막금마을에서 서쪽으로 2km 거리에 있는 높은 재로 옛날 울진에서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던 대로였다.

옛 사람들이 지게를 지고 다니며 올랐던 이 길의 태는 구불구불하다. 무거운 보따리를 메고 험준한 산을 다닐 때에는 직선으로 난 길을 만드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비탈과 곡선의 자연요건을 활용해 만든 길에서 선조들의 지혜가 묻어났다. 온전한 자연의 삶 그대로를 수용했던 선조들은 이토록 건강한 땅에서 노닐 수 있었다. 사월 초파일이 되면 이 길을 따라 불영사를 찾았다는 그들. 처녀 총각 오손도손 오가던 그 길은 이제 소수의 사람만이 오가 이제는 비좁은 길로 변했다. 그러나 그들이 걷던 한티재 옛길엔 솔잎과 낙엽, 비옥한 흙들이 여전히 머물러 있다.

조선 풍수지리의 대가 남사고 선친 묘엔 아직도 풍수지리 연구자들이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조선 풍수지리의 대가 남사고 선친 묘엔 아직도 풍수지리 연구자들이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 한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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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 남사고 선생의 선친 묘

옛길의 그윽함을 느끼며 비탈을 오르다보면 거대한 봉분과 마주한다. 묘와 어우러진 절경을 살피면 여기가 바로 격암 남사고 선친의 묘다. 서양에 인류멸망의 날을 점지한 노스트라다무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조선 최고의 예언자 남사고 선생이 있다.

명종 말기에 임진왜란을 일찌감치 예언했을 정도로 천문을 이용한 예언은 당대 최고의 명성을 떨쳤다. 그의 유명 저서로는 <남사고비결>과 <격암유록>이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많은 풍수지리학자들은 아직도 이 자리를 찾아온다. 조선시대 최고의 풍수지리 대가로도 불리었던 남사고 선친의 묘이니 만큼 '명당 중의 명당'일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선친 묘가 들어선 자리 양 옆은 좌청룡 우백호의 산이 있고 뒤에도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이 서있다. 앞을 바라보면 겹겹이 있는 산이 펼쳐지고 날이 좋은 날에는 멀리 푸른 동해까지 보인다.

물박달나무, 굴참나무, 돌배나무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걷던 동네에 들어서게 된다. 늘 물이 풍부한 땅, 냉수동이다. 냉수동은 이름 그대로 찬물마을을 말한다. 60마지기 정도의 크기로, 약 9000평 정도의 크기다. 며칠간 왕피길 여정 곳곳에서 계단식 논 터가 있는 화전민의 흔적을 볼 수 있었지만, 냉수동의 화전민 터는 말이 화전마을이지 사람들이 농지를 일구고 살았던 곳이다.

관개시설이 없어도 본래부터 물이 많아 하늘이 내려준 복 받은 땅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화전민이 모두 사라지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는데도 강가나 습지에 나는 버드나무가 아직도 있을 정도이다.

왕피길 3구간에 있는 냉수동 찬물내기는 사시사철 시원한 물을 내어주고 있다.
 왕피길 3구간에 있는 냉수동 찬물내기는 사시사철 시원한 물을 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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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냉장고, 찬물내기를 찾아서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졸졸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계곡 물을 따라 몇 발자국 올라간 곳은 '찬물내기'다. 고여 있는 듯 보였지만 찬찬히 보면 작은 물줄기가 시작되는 지점이 보인다. 바위틈으로 개울물이 흘러나온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물이 나고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물은 이름 그대로 '찬물'을 '내어' 주고 있다. 작은 계곡물인 이곳에서는 약수를 떠먹을 수 있다. 냇가여서 선선한 기운도 불어와 도시락을 챙겨먹기에 제격인 곳이다.

냉수동을 지나서 길을 걷다보면 철도용 궤도 쇠덩어리가 보인다. 1987년 폐광한 분필광산의 흔적이다. 광산은 다 묻혔지만 길가에 흔한 돌을 주워 바위에 긁어보면 분필처럼 선이 나타난다. 분필 원석인 곱돌이다. 폐광 전까지 이 지역 사람들의 생업 터전이었던 곳이다.

길 곳곳 나무 위엔 희한한 물건이 매달려 있다. 흰 컵 모양에 길게 줄이 연결되어 있는데, 서울로 전보를 치는 '애자'라는 물건이란다. 중요 통신수단으로 잘 활용되었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 특산 꽃, 꼬리진달래.
 한국 특산 꽃, 꼬리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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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개를 넘으면 한국 특산 꽃인 꼬리진달래(참꽃나무겨우살이)를 볼 수 있다. 위도 상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일대에만 나는 꽃으로, 이곳이 동쪽 경계가 된다. 아미사를 향하는 길엔 옛길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조금은 아슬아슬한 길을 지나게 된다. 이는 그 당시의 도로공사를 한 흔적이다. 아미사를 거쳐 오후 3시 즈음엔 하원리 전치정류장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울진시내버스로 울진읍과 삼근리로 이동할 수 있다.

왕피천 일대 골짜기 전경.
 왕피천 일대 골짜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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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관광 마지막 트레킹을 끝내며 

왕피천 유역과 4개 마을에서 시행하는 생태관광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는 이곳이 단일 보전지역으로는 국내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생태경관보전지역이기 때문이다. 동강 보전지역의 1.6배나 되는 면적으로, 8등급 이상의 녹지자연이 전체 지역의 95%가 넘어 식생이 우수하다. 거기에 수달, 산양, 삵, 담비 등 다수의 멸종 위기종과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실제로 왕피천 유역 산이나 마을에선 산양이나 삵의 발자국과 배설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생태학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네 개 마을의 주민들이 이 보전구역을 직접 관리한다는 사실도 독특하다. 이는 국내 보전구역에선 흔치 않은 사례다. 국립공원에서도 행정부에서 관리자가 나와 관리하고, 주민들은 국립공원 해지를 요구하는 현실이다. 왕피천에선 총 8개 초소에 92명의 감시원이 휴일 없이 교대로 반년 간 근무한다. 평생을 왕피천 유역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온 주민들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지역을 지키고 있다. 결국 주민들은 공공영역에서 스스로 나라를 지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왕피천 생태관광 예약은 왕피천 에코투어 사업단에서 운영하는 왕피천생태관광이야기(www.wangpiecotour.com)에서 가능하며, 054-781-8897로 문의할 수 있다.




태그:#왕피천, #생태관광,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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