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공식포스터.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공식포스터. ⓒ 인디스토리

2014년 9월 7일,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로 활동했던 권리세가 끝내 숨졌다. 지난 3일 새벽, 지방에서 <열린음악회> 무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중 빗길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지 수 일 만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일본에서 건너와 자신의 꿈을 위해 매진하던 꽃다운 청춘의 안타까운 죽음. 사실, 그 권리세는 재일조선인 3세였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조선학교'를 다녔다. 초등학생 무렵 공연단의 일환으로 북한을 방문, 김정일 관련 행사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부모의 나라는 그런 '재일조선인 3세'에게 '방북 논란'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총련'계에 대한 편견이나 '조국(북한) 방문'이 한국의 수학여행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간과한 조선학교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적 시선임이 분명했다. 실제, 외국인으로 등록한 재일조선인들은 대한민국과 조선, 둘 중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 한다.

일례로, 수원 블루윙즈에서 활동 중인 축구선수 정대세는 한국 국적인 아버지와 조선(북한)적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재일교포 3세로, 2010년 독일월드컵 당시 북한대표팀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반면, 설립 당시부터 조총련계에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던 조선학교 출신(과 일본학교 출신을 포함한) 재일조선인들은 조국에 대한 향수로 북한도 남한도 아닌 '조선적'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해방 전부터 일본에서 (타의든 자의든) 커뮤니티를 형성했던 재일조선인들, 그 중에서도 조선학교 학생들. 그러니까 고 권리세씨의 동무들은 어떤 꿈을 지니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2006년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가 반향을 일으킨 이후 다시금 그 조선학교 학생들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60만번의 트라이>가 그 반가운 화제작이다.

청춘의 활력 고스란히 전달하는 다큐

제목이 생소하다고? 그럴 법 하다. 미식축구보다 축구가 '국기'에 가까운 우리에게 럭비라는 종목은 충분히 생소하고도 남는다. <60만번의 트라이>는 이와 달리 100년 전통의 고교 럭비사를 자랑하는 일본, 그 중 오사카 조선학교 고교 럭비부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다큐멘터리다.

일단, 선입견은 금물이다. '60만' 재일조선인 문제나 다큐멘터리, 럭비에 대한 이질감 말이다. 대상, 그러니까 오사카 조고 럭비부의 실제에 시선을 밀착한 카메라는 냉정한 거리두기보다는 보통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또 상당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중심엔 '대상' 자체의 매력과 그 대상을 마주하는 감독들의 접근법이 자리한다.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한 장면.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60만번의 트라이>는 오롯이 청춘스포츠 영화로 읽어도 무방하다. 오로지 럭비에만 매진하는 청년들의 얼굴은 활력이란 단어와 더 없이 어울린다. 소년, 아니 이 청년들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강함은 여느 스포츠 극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다큐가 주는 사실감이 그들의 생동감(과 진심)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사실 이 오사카 조고 럭비부 멤버들의 면면이 그러하다. 누구는 만화 <슬램덩크>를 누구는 (재일조선인이 주인공인 일본)영화 <박치기>를 연상할지도 모르겠다. 연예인을 해도 좋을 '훈남' 권유인이나 "한 발이라도 더 전진하자"는 말투에서 알 수 있듯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 김관태, 명랑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말투와 외모의 황상현 등등.

마치 스포츠 드라마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이 캐릭터들은 '노사이드 정신', 그러니까 시합 휘슬과 함께 편 없이 친구 사이가 되고자하는 럭비의 스포츠맨십을 제 스스로 구현한다. 그들이 웃고 울며 800개 학교가 참여하는 전국대회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현실 자체와 더불어 재일조선인이란 위치는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드라마틱하다. 

일본 내 조선학교 차별,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었다면?

중반부, 전 세계 럭비부 청년들이 친선 축제에서 격의 없이 어울리는 사이 오사카 조교의 한 선수가 들려준 일화는 재일조선인들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국 선수가 국적을 묻자 "나는 코리안이다"라고 답하며 마음 아파하지만, 이내 한국 학생에게 "너는 일본인이고 내가 진짜 코리안"이라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 말이다. 

<60만번의 트라이>에서 절대 지울 수 없는 상흔은 재일조선인들을 향한 일본인들의 차별이다. 2010년 4월, 일본정부는 일본 내 모든 학교에서 시행한 고교무상화 정책을 조선학교에만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오사카와 도쿄의 중고교 조선학교들은 도쿄지방법원에 무상화 정책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 내 시민단체는 물론 '우리학교를 지키는 시민모임' 등이 서명운동과 항의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영화 중간 중간 서명운동에 나서는 학생들의 모습엔 '우리의 터전'을 지켜야 한다는 결의가 엿보인다. 반면, 일본 정부와의 싸움은 지난해 보인다. 최근 "혐한 단체와 토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영화 속에서 그는 당시 조선학교 배제에 대해 "권력행사의 일환"이라며 "이명박 (당시) 대통령도 조선학교 같은 학교가 한국에 존재했다면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오사카 대표로 출전해 4강까지 오른 오사카조교의 활약은 "자랑스럽게 느낀다"며 인사치레한 것과는 정반대의 냉혹함. 영화 말미,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학생이 전하는 발언은 국가와 이념, 실리 등을 두고 제 이익만 취하는 어른들에게 일종의 부끄러움과 각성을 안겨주기 충분하다.

"고교무상화 문제는 조선학교만 편을 갈라 따로 떼어내서 적용하지 않는 식으로 사이드를 가르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런 사이드가 있다는 것이 분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 사이드가 없어져 교육 현장에도 노사이드 정신이 확산돼 무상화가 반드시 적용되리라 믿습니다."                                             

경계와 차별, 편견을 지우는 '너와 나, 우리'란 화두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한 장면.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그래서 더더욱, 오사카조교의 운동회 장면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좋은 자리를 얻으려 전날 밤부터 노숙을 하며 기다리는 운동회는 재일조선인 커뮤니티의 축제와도 같다. 상상해 보라. 고등학교 운동장을 빽빽하게 메운 부모, 가족, 선생님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소녀시대와 카라의 노래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는 재일조선인 학생들의 심정을.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대형 한반도기를 흔드는 마음을. 그들에게 조국 한반도란 어떤 의미일까 말이다.

<60만번의 트라이>가 교토 우토로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한국출신 저널리스트였던 박사유 감독은 2005년경 우토로 강제 철거 소식을 듣고 달려가 2년 넘게 취재한 바 있다. 우토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형성된 재일조선인 거주 지역이다. 재일조선인 3세인 박돈사 감독을 만난 것도 바로 우토로였다. 이후 박사유 감독은 우토로 덕분에 동포들의 삶에 눈뜨게 됐다. 암투병중인 그에게 희망을 준 것도 바로 동포들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60만번의 트라이>는 재일조선인에게 지워진 경계인이란 편견을 다시금 지워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여전한 차별 속에서도 꿋꿋하게, 아니 경쟁과 개인주의에 허덕이는 보통의 한국인들보다 더 '조국'을 애달아하는 그 청춘들의 환한 미소와 뜨거운 눈물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정을 회복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더욱이, 이 주인공들이 10대를 넘어 여전히 20대 청춘이라는 점, 일본 성인 선수로 활약하거나 또 다른 꿈을 키워나가며 재일조선인 커뮤니티를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는 점 또한 감동을 더 한다(그 중 대학생이 된 매니저 옥희와 럭비와는 또 다른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중인 상현이 개봉에 맞춰 내한하기도 했다). 그렇게 인간의 삶을 기록해 나가는 장르인 다큐의 울림은 힘이 세다.

<60만번의 트라이>는 지난 3월 일본에서 상영을 시작한 이후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장기 순회 상영을 진행 중이다. 현지 언론으로부터 "스포츠 다큐멘터리로써 돋보이는 균형 잡힌 구성력", "울리고, 웃기고, 생각하게 한다" 등 호평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이미 적지 않은 관객들이 이 풋풋한 청춘들에게 매료된 바 있다. 이번 주말, <60만번의 트라이>가 제공하는 "너와 나, 우리"란 화두에 동참해 보는 건 어떨까.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박사유, 박돈사 감독, 그리고 출연자인 김옥희, 황상현씨.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박사유, 박돈사 감독, 그리고 출연자인 김옥희, 황상현씨. ⓒ 성의석



60만번의트라이 재일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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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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