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영화 <슬로우 비디오>의 김영탁 감독(가운데)과 배우 차태현(맨 왼쪽), 김강현이 출연했다.

지난 24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영화 <슬로우 비디오>의 김영탁 감독(가운데)과 배우 차태현(맨 왼쪽), 김강현이 출연했다. ⓒ MBC


9월 24일 방영된 MBC <라디오 스타>는 '널 깨물어 주고 싶어' 특집이라는 명목으로, 개봉을 앞둔 영화 <슬로우 비디오>의 배우 차태현, 김강현과 김영탁 감독이 출연했다.

이전 출연 분에서 '홍보를 위해 출연하는 사람들을 제일 혐오한다'고 차태현이 스스로 말했던 사실을 MC들이 다시 끄집어내자, 그래서 아마도 '쉬어가는' 한 주가 될 것 같다고 이른바 '셀프 디스'하는 것과 달리, 이날 방송은 소소한 웃음으로 채워졌다. 그러면서도 배우 차태현, <헬로 고스트> 때부터 그와 함께 영화를 만든 김영탁 감독에 대한 이해를 보다 깊게 해주어, <라디오스타>의 매력이 모처럼 되살아난 시간이 되었다.

'지루한 영화' 찍고 싶은 감독을 이해하는 시간

MC진은 대놓고 '차태현과 아이들'이라고 지칭했다. <황해>를 이긴 혁혁한 성과를 낸 <헬로 고스트>의 감독이지만 예능 첫 출연이라 어느 카메라를 봐야할 지도 잘 모르는 김영탁 감독과 <별에서 온 그대> 천송이의 매니저 역할로 인지도를 넓혔지만 아직은 신인 같은 김강현의 존재는 생소했다.

그래도 예능인으로든, 배우로든 항상 일정 정도의 위치를 놓치지 않은 차태현이기에 당연히 이날 방송은 차태현을 중심으로 풀어나갈 것이라 예상되었다. 하지만 정작 반송 분량의 상당 부분은 예능을 몰라 두리번거리거나 매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김영탁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김영탁 감독을 상대로 한 인터뷰에서 길어 올린 '각색'된 질문들은 최근 <라디오스타>의 '그저 뭐 하나 걸려 웃겨봐라'라는 심산의 마구잡이 몰이가 아니라, 웃음을 통해 김영탁과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24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 '널 깨물어 주고 싶어' 특집.

지난 24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 '널 깨물어 주고 싶어' 특집. ⓒ MBC


제일 먼저 웃음 포인트가 된 것은, 김국진이 상황을 잘 모른 채 던진 차태현의 전작 <바보>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다. 차태현의 작품으로 상대적으로 흥행이 덜 되었던 작품을 이야기하던 중, 유명 만화가 강풀 원작의 <바보>가 떠올랐고 그에 대해 김국진은 지나가는 듯이 "만화가 더 재밌었다"고 말한다.

이후, <바보>가 김영탁 감독의 각색이라는 걸 알게 된 윤종신 등이 김국진에게 무안을 주는 듯하면서 김영탁 감독을 놀리고, 김 감독과 비슷한 색채이지만 800만을 찍었던 강영철 감독의 <과속 스캔들>에 출연한 차태현이 강 감독과 김 감독을 비교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 김영탁 감독을 결코 '천만을 찍을 수도, 찍을 깜냥도 되지 않는 감독'이라 정의내리며 난감하게 한 것이다.

예능 울렁증이 있다며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슬로우 비디오>의 또 다른 배우 남상미가 왜 안 나왔는지 절절하게 공감하는 김영탁 감독에 대한 '몰이'는 지속됐다. '천만을 찍을 깜냥'이 되지 않는 이유가, 돈을 벌어 '정말 지루한 영화'를 찍고 싶은 그의 목적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거기서, 생각보다 지루했던 영화 <헬로 고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1시간 40여분을 졸다가 막판에 울고 나온다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차태현 같은 배우가 함께 해줘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포기하지 않아도 돼 좋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김영탁 감독이 고집하는 '지루함'에 대해 다시 보게 되기 시작한다.

'느리고 지루한' 일본 영화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김영탁 감독은 가수 하림을 좋아하고, 윤종신을 좋아해 그의 음반을 가지고 있다며 그만의 정서를 드러낸다. 스스로 가요계의 '섬'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윤종신처럼, 1000만의 흥행보다는 조금은 지루해도 사람살이를 깊게 천착하는 이야기가 좋다는 김영탁 감독의 정서가 웃음으로 버무려진 토크 속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다. 물론 개봉을 앞둔 감독답게 이번 <슬로우 비디오>는 그래도 <헬로 고스트>보다는 덜 지루하다며 애교스럽게 셀프 홍보도 마다치 않는다.

하지만 그런 감독의 자신감은, 그래서 자신과 오달수가 고군분투했다는 차태현의 '역디스'에 의해 무색해진다. 21세기 폭스사의 제작 공급 작품이라는 자부심을 감독이 펼쳐 놓는가 싶으면, 그 전작이 망한 <런닝맨>이었음이 언급되고, 최근 성공한 제작자가 된 차태현의 형님이 스카우트하고 싶은 감독에 김영탁 감독도 들어가지만, 그래도 강형철 감독이 우선순위라며 여전히 한 끝 차이로 부족한 김 감독의 존재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방송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예능을 어색해 하는 김영탁 감독을 코너로 모는 MC들과 은근슬쩍 한 다리를 걸치는 차태현의 공조로 이어갔지만, 그를 통해 오히려 김영탁 감독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홍보성 기사들을 통해 <슬로우 비디오>가 개봉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하림과 윤종신의 음악을 좋아하고, 흥행을 위해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소박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조금은 느리고 그래서 조금 더 지루한 이야기를 놓칠 수 없는 김영탁 감독의 작품 세계를 <라디오스타>를 통해 엿보게 되면서, 어쩐지 <슬로우 비디오>란 영화가 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저 늘 웃기는 작품만을 선택하는가 싶었던 차태현이지만, 김영탁 감독과 의기투합하는 그의 선택을 통해, 웃기는 배우 차태현의 작품 세계 또한 들여다보게 된 시간이었다. 늘 신인 감독들과 함께 하는 배우, 슈퍼 을이 된 배우 차태현의 존재감도, 신념조차도 슬며시 알 것 같다. 그래서 연예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맛을 아는 그가 선택한 <슬로우 비디오>, 그저 웃기지만은 않고 지루해도 감동이 있다는 이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라디오 스타 차태현, 김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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