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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인천시의회 본회의. 이용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연단으로 나왔다. 이용범 의원은 같은 당의 이한구 의원과 함께 인천시교육청 추가경정(추경) 예산안 수정안을 내놓았다. 여기엔 앞서 인천시의회 교육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깎은 혁신학교 예산 2억4588만 원을 되살리는 내용이 담겼다.

이용범 의원은 "혁신학교 예산은 앞으로 인천 특성에 맞는 혁신학교 운영을 위한 사전 준비예산"이라며 "이번 예산이 삭감될 경우 연차별 사업추진계획 지연이 불가피한 실정으로 이청연 교육감을 지지한 인천시민의 열망 또한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료 의원들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제갈원영 새누리당 의원이 혁신학교 반대를 강조하자, 같은 당의 황인성 의원은 제갈 의원이 아닌 이 의원과 같은 뜻을 나타냈다. 황 의원은 혁신학교를 두고 "당을 떠나서 우리가 후대에게 제시해 줄 것"이라면서 "시대의 흐름이라면 우리도 동참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투표가 이뤄졌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재석 의원 32명 가운데 혁신학교 예산을 되살리는 수정안에 찬성을 던진 의원은 10명에 불과했다. 본회의에 참석한 이청연 인천시교육감의 얼굴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천의 교육시민단체는 일제히 "새누리당이 진보교육감의 발목잡기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인천시의회 의원 35명 가운데 새누리당 의원이 23명이다.

인천에서 혁신학교의 깃발이 꺾였다. 인천뿐만 아니라 진보교육감과 새누리당이 이끄는 시도의회간의 갈등 구도를 보이는 지역에서도 혁신학교 예산이 삭감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혁신학교로 상징되는 교육 혁신을 바라는 학부모들의 바람이 담긴 '진보교육감 시대'의 대표적인 공약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혁신학교 예산삭감... "진보교육감 발목잡기"

이청연 인천시교육감(자료사진).
 이청연 인천시교육감(자료사진).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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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연 교육감은 6·4 지방선거에서 혁신학교를 제1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혁신학교 수혜를 받고 있는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인천시민들은 혁신학교에 큰 기대를 나타냈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8월 혁신학교 추진 계획을 내놓았다. 오는 10월 '혁신학교 준비교'를 12곳 뽑고, 내년 3월부터 혁신학교 10곳을 지정하기로 했다. 1일에는 혁신학교를 전담하는 학교혁신과를 만들었다.

인천시교육청은 이를 위해 혁신학교 준비교 운영비를 포함하는 혁신학교 예산 2억4588만 원을 추경 예산에 포함시켜 시의회에 제출했다. 이청연 교육감은 지난달 27일 시의회 본회의에 참석해, 혁신학교 예산 배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추경예산안을 심사하는 인천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혁신학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갈원영 의원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혁신학교는 의미가 없다, 예산 낭비성 사업일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송영기 교육국장이 "준비를 위해 혁신학교 예비학교(준비교)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의 비판은 계속됐다. 결국 새누리당 우위의 교육위원회는 혁신학교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4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새누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혁신학교를 비판했다. 손철운 새누리당 의원은 "친척들이 서울이나 경기도에 사는데, 일부 혁신학교를 운영하는 학부형들은 학력이 떨어진다면서 혁신학교를 기피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혁신학교 예산은 살아나지 못했고, 결국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됐다.

야당의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동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5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교육감이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이다, 첫발을 내딛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종자돈을 이렇게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면서 "그런데,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그다지 시급성을 갖고 있지도 않은 예산이 예결위에서 신규 증액편성이 됐다"고 지적했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인천지부는 "인천시의회가 혁신학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은 이청연 교육감의 발목잡기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시지부는 "교육감의 차별화된 핵심공약 준비작업을 위해 마련한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면 이는 상대방의 손과 발을 묶어놓는 것과 마찬가지"이라고 비판했다.

인천시교육청은 혁신학교 정책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5일 "혁신학교 추진의 절실함을 시의회에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시의회의 예산삭감이 혁신학교 추진 폐기라는 맥락에서 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천시교육청은 혁신학교 추진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의원, 혁신학교 예산 삭감하며 색깔론까지 제기

김병우 충북교육감(왼쪽부터), 민병희 강원교육감, 조희연 서울교육감, 장휘국 광주교육감 당선자가 지난 6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육감 당선자 상견례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 손 맞잡은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 김병우 충북교육감(왼쪽부터), 민병희 강원교육감, 조희연 서울교육감, 장휘국 광주교육감 당선자가 지난 6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교육감 당선자 상견례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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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에서도 진보교육감의 혁신학교 정책이 타격을 받았다. 지난 7월 충청북도의회는 충청북도교육청이 제출한 추경예산 중에서 혁신학교 예산 3억8000만 원을 삭감했다. 당시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선거라는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공약을 바라보고 새 교육감을 선출한 다수의 충북도민에게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게 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충북교육청은 혁신학교 공모, 컨설팅 등 예산이 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문제는 내년 예산이다. 충북교육청은 내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10곳씩 혁신학교를 선정해 운영할 예정이다. 2018년까지 74억2000만 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우호적이지 않다.

혁신학교 예산 삭감이 확정됐던 지난 7월 25일 충북도의회 본회의에서 윤홍창 새누리당 의원은 색깔론을 제기했다. 그는 "혁신학교TF팀 12명 교사는 전교조 소속으로, 일부는 애국가와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민중의례로 의식을 대체 진행하는 모 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한 전력과 그 정당에 후원금을 지원한 죄명으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전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충청남도교육청이 추경예산에 포함시켜 도의회에 제출한 혁신학교 예산도 절반으로 삭감됐다. 충남교육청은 내년부터 매년 25개의 혁신학교를 지정하겠다고 밝혔지만, 계획대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충남 교육청 혁신학교 지원센터 관계자는 "올해 추경에서 예산이 절반으로 깎여 타격이 있다"면서 "일단 예산이 살아남았으니, 도의회에 충남교육을 살려보자고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부산의 경우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황이 나쁘지 않다. 부산시교육청은 부산시의회에 2000만 원 남짓한 혁신학교 예산을 포함하는 추경예산안을 제출했다. 혁신학교 예산은 통과됐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최소한의 예산만 제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예산으로 혁신학교를 준비하자는 전략을 세웠다"면서 "내년 7억 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혁신학교 예산이 통과될 수 있도록 시의회와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전했다.

혁신학교를 둘러싼 진보교육감과 시도의회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경기도교육청의 혁신학교 정책을 추진한 주역 중의 한 사람인 안순억 전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는 새누리당을 향해 "혁신학교를 전교조 학교 또는 야당의 정책으로 보는 것은 정치적인 접근"이라면서 "새누리당 소속 서병수 부산시장과 보수 성향의 설동호 대전교육감은 혁신학교 정책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진보교육감에도 "2009년 경기도교육청이 처음 추진한 혁신학교 정책의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면서 접근한 결과, 혁신학교가 자연스럽게 확대됐다"면서 "진보교육감들도 예산 배정을 못 받았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추진해야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태그:#혁신학교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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