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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콜텍 해고자들은 24시간 1인시위(대법원 앞, 5월 19일~6월 12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서 패소하였다(관련기사 : 대한민국 법은 서민 것 아냐... "더러워도 끝까지!"). 패소 판결을 받고 나서 마음이 심란하고 답답하여 개인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연대 단위 사람들이 그 마음을 먼저 알고 콜밴(콜트콜텍노조밴드) 3명의 여행을 준비하고 주선해주었다.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전남 남원에 있는 귀정사에 콜밴 세 명과 문선(최문선)은 여행을 다녀왔다. 귀정사는 전남 남원시 산동면에 위치한 조그마한 절이다. 백제 무녕왕 15년에 만행사라는 절을 세웠던 터이다.

훗날에 왕이 3일간 이곳에 머물면서 업무를 보고 (궁으로) 돌아간 뒤 절 이름을 귀정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작년 가을에 콜밴이 인드라망 개소식 공연을 하고 온 곳이기도 하다. 인드라망은 사회연대 활동가들과 사회적 약자의 쉼터이다. 콜밴이 8년간 농성 하면서도 쉼터에서 휴가를 갖기는 처음이다.

저녁에 도착하자 쉼터 지킴이 최정규님과 마을 주민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우리 콜트 콜텍의 투쟁에 대하여 그분들은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질문도 많이 받았다. 그날 만난 분들도 사회운동하다 귀촌 생활을 하기 위해 내려간 것 같았다. 인드라망 지킴이가 콜밴을 위해 어마어마한 양의 육사시미를 준비했다. 나는 육사시미를 너무 과식하여 새벽에 해우소에 두 번이나 갔다 왔다. 생고기와 나는 참 안 맞는 것 같다.

쉼터에서 나와 몇 미터 떨어진 귀정사로 갔다. 오랜만에 절에서 잠자리를 하니 차 소리도 없고 조용하여 몇 년 만에 최고로 편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도 들었다. 맑고 깨끗한 소리였다. 절 음식을 중식으로 하였다. 반찬과 밥이 정갈하고 맛깔나 맛있게 많이 먹었다.

점심 식사 후 지리산 숲 해설가 정상은님을 만나 뱀사골로 갔다. 해설가가 자연의 신비와 동물의 관계를 너무 쉽게 설명해주었다. 자연과 동물의 관계가 신기했다. 나무 이름과 꽃 이름도 설명하여주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손도 씻고 돌탑도 쌓으면서 옛날 동심으로 돌아갔다. 돌탑을 쌓으면서 우리의 투쟁 승리와 우리들의 건강, 가족의 행복, 기타를 만드는 꿈, 돈 대박 나는 꿈을 꾸며 5단을 쌓았다.

뱀사골을 돌고 난 후 실상사에 들러 실상사의 역사를 듣고 배웠다. 실상사에서 모내기를 해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렁이 농법이었다. 우렁이 농법은 농약, 화학비료 사용하지 않는 농법으로 수확량을 생각하면 하기 힘든 농법이다.

실상사에서는 옛날 방식대로 사람이 직접 모내기를 하였다. 사람이 모내기를 하면 모 포기를 적게, 줄을 넓게 하여 우렁이가 활동을 많이 하며 논다. 그래야 풀과 벌레 등을 잡아먹으면서 생활을 한다. 실상사에서 운영하는 학교 아이들이 모내기를 했다고 한다. 절이 우렁이 농법으로 자연을 생각하고 있었다.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콜밴은 첫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동안 거처를 내주신 전남 남원 귀정사.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콜밴은 첫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동안 거처를 내주신 전남 남원 귀정사.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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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정사에 돌아오니 쉼터에 전남 고흥에서 온 반가운 손님이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다. 서울에서 사회운동을 하다가 귀농하여 농촌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명인 부부였다. 고흥에서 온 부부는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소라를 가져왔다.

다음 날 아침 지산 주지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지산 스님은 다음에 꼭 시간을 많이 내어 오라고 부탁하셨다. 귀정사를 나와 순창에 있는 들풀한의원에 (명인 부부의 안내로) 우리 네 명의 건강을 체크하러 갔다. 처음 가본 들풀한의원은 마치 인천의 농성장 같았다. 이윤엽 작가의 판화도 있었고(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를 상징하는 판화), 시민이 기타 노동자들을 위해 쓴 시도 테이블 유리에 놓여 있었다.

(한의사 선생님에게) 건강체크 받고 약도 짓고 밥까지 얻어먹었다. 건강 체크 결과 이인근 지회장이 몸이 최고 안 좋다고 한다. 우리가 너무 운전만 시키고 부담을 주어 그런가 반성을 한다. 같이 간 문선도 몸이 안 좋다고 하는데 유랑문화제 때문에 너무 신경쓰고 우리 때문에 몸이 너무 피곤한 게 아닌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예상 외로, 경봉이형과 나는 몸 상태가 괜찮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경봉이형과 나의 건강은 밥 세 끼의 위력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인근과 문선은 한 달 후에 와서 재검진을 받으라고까지 한다.

여행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명인 부부가 여기까지 와서 고흥에 안 들르냐며 하루 더 있다 가라고 했다. 그래서 일정을 바꿔 고흥 여행을 하기로 했다. 고흥 바닷가와 전망대를 구경하고 오랜만에 바다 냄새를 맡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들만의 자유 시간이었다. 저녁까지 여유롭게 매순간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오락도 하고 대화도 처음으로 많이 했다. 천막 농성장에서는 시간에 쫓겨 다니고, 사람에 치이고….

서울에서는 서로 경쟁하여야 먹고 사는데, 농촌에서는 아직까지 나눔이 더 많다. 도시보다 농촌이 먹을 거 빼곤 뭐하나 더 풍족한 게 없는데 농촌에서는 욕심이 없어진다. 나도 욕심을 버리고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데, 잘 될까? 걱정. 이번 여행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 자연 속에 있어야 사람다워진다.

2014년 9월 4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콜밴은 첫 여행을 다녀왔다. 뱀사골에서 모두 함께.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콜밴은 첫 여행을 다녀왔다. 뱀사골에서 모두 함께.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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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준 휴가

귀정사를 품고 있던 만행산의 숲과 계곡이 그립다. 임재춘 조합원도 내내 그랬다. 여행 후기를 진작부터 벼르던 임재춘 조합원은 이번 농성일기를 짧은 시간 후루룩 써내려갔다. 그만큼 스스로 동하는 이야기였다.

대법원 패소 후 많은 사람들이 콜텍 해고자들을 걱정했다. 그리고 그런 걱정들 속에 '희망의 노래, 꽃다지' 정윤경님이 내게 연락을 해와 콜텍 3인방의 여행을 추진해보자고 했다. "글쎄요, 그분들이 가시려고 할까요? 얘기는 던져볼게요"라고 나는 조심스레 응답했는데 예상 외로 그들은 "그러자"고 답하였다.

여행 준비는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정윤경님이 SNS 담벼락에 '콜텍 해고자 여행 보내주기' 후원 계좌를 안내했고, 하루 만에 여행경비가 넉넉히 모아졌다. 여행자금을 보내준 분들 중엔 다른 사업장의 장기 해고자도 있었다. 송구스러운 마음들이었지만 더 잘 갔다 오자는 의지도 생겼다. 송경동 시인이 나서서 귀정사와 사회연대 쉼터 '인드라망'에 연락하여 거처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콜텍 해고자 3명(김경봉, 임재춘, 이인근)과 나는 그곳으로 갔다. 콜트콜텍 8년 농성을 지켜봐준 사람들이 내준 휴가였다. 사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만든 휴가. 더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이구동성 메시지 같은 것.

투쟁기금을 아끼던 습관을 그때는 잠시 내려놓자고 했다. '짠돌이' 이인근 지회장 입에서 나온 말이니, 신나게 핫바도 사먹고 냉커피도 사먹었다. 그러나 귀정사에 도착한 이후 여행경비는 별 쓸모가 없었다. 인드라망 사무소에 갔더니 지킴이 최정규님과 김진 운영위원이 거하게 한 상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절에서는 중식이 나왔고, 가까운 마을에서 콜텍 해고자 왔다고 밥 사주러 오고, 여행 안내하러 오고, 다소 먼 거리임에도 고흥에서 찾아온 분들도 있었다.

명인님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보컬이었다. 오래전에 무대에서만 그분을 뵈었는데…. 나에겐 낯선 분이었지만 콜텍 해고자들이 대전 공장에서 농성을 할 때부터 지지방문을 가고 지금까지 꾸준히 연대해주신 분이다.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콜밴은 첫 여행을 다녀왔다. 순천에 있는 한의원 '들풀'의 모습. 벽에 걸린 판화는 콜트콜텍 해고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동자에게 노래를'이란 제목의 이윤엽 작가 작품.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콜밴은 첫 여행을 다녀왔다. 순천에 있는 한의원 '들풀'의 모습. 벽에 걸린 판화는 콜트콜텍 해고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동자에게 노래를'이란 제목의 이윤엽 작가 작품.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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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들꽃한의원'의 윤성현 원장님은 콜텍 세 사람을 납치해서라도 데리고 오라는 명을 인드라망 관계자들과 명인 부부에게 전했단다. 8년 농성한 그 몸들이 오죽하겠느냐, 그런 걱정 때문이었다고 했다. 한의원 안에는 콜트­콜텍 해고자들에 관한 그림과 시가 있었다. 간호사들도 해고된 기타 노동자들을 알은 체하며 반겼다.

다들 그렇게까지 반겨줄 줄은 몰랐다. 8년의 시간을 한 부분이라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는데, 알고 있고, 지지하고 있고, 기다리고 있었고, 한 걸음에 달려와 주니 그런 만남과 만남이 낯설고도 벅찬 일이었다. 여행 동안 콜텍의 세 명은 이 말을 몇 번이나 했던가. "오길 잘했네"라는 말을.

"다음에 또 갈까?"
"어디? 제주도?"
"나 아직 비행기 못 타봤는데?"
"야야, 그럼 가야지."

들꽃과 들풀의 이름을 서로 경쟁하듯 맞히는 김경봉, 임재춘 조합원. 3박 4일 내내 농성장에선 마실 수 없던 술을 마음 편히 마셔 좋다는 임재춘 조합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취기를 무기 삼아 '임구라'라는 별명답게 그가 허풍을 떨어도 '아버지 미소'로 쳐다보던 농성자들. 돌아갈 곳이라고는 천막 농성장이고, 남아 있는 시간이라고는 막막함인데, 그래도 그때는 반짝반짝 빛난다. 에어컨이 고장 난 자가용이라도 그렇게만 떠난다면 다시 떠나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 지산 스님은 콜트­콜텍 해고자들을 위해 백일기도에 들어가셨다. 인드라망 지킴이 최정규님은 농사지은 포송한 감자를 보내주셨다. 명인님은 SNS로 또 언제 오냐고 재촉하신다. 윤성현 한의사 선생님은 가끔씩 연락해 무뚝뚝한 말투로 약이 얼마나 줄었나 묻는다. 기억해주고 있음을 알게 되고, 또는 알려줄 수 있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콜밴은 첫 여행을 다녀왔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보컬 출신 명인님의 초대로 고흥까지 여행했다.
 6월 26일부터 2박 3일 동안 콜밴은 첫 여행을 다녀왔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보컬 출신 명인님의 초대로 고흥까지 여행했다.
ⓒ 최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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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콜트콜텍, #정리해고, #위장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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