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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아저씨'로 만들어준 문방구
 나를 '아저씨'로 만들어준 문방구
ⓒ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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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없이 멍하고 퀭한 눈. 그 밑엔 때 이른 다크서클. 대충 감고 나온 머리는 온통 땀에 젖어 헝클어졌다. 후줄근하게 걸려 있는 사흘째 똑같은 셔츠. 맨발에 슬리퍼.

치열한 아침 장사(라고 쓰고, 전쟁이라 읽는다)를 이제 막 마치고 난 다음에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다. 딱 한 단어가 생각난다. 아, 저, 씨! 예전에는 배는 나왔어도 '동안'임을 나름 자부했던 나. 이젠 노안이 아님을 감사해야 할 처지. 나는 진짜 아저씨가 되어 있던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아저씨'라며 나를 부르며 찾는 아이들 틈에서 나는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학부모들에게 머리 조아리는 내 모습, 정말 불쌍했지만...

뭣도 모르고, 무모하게 낯선 땅에서 문방구를 시작한 지 한 달 반. 이제야 좀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아침 7시 반에서 저녁 9시까지 일을 하고, 매일 문을 열어야 되는 시스템(격주 일요일은 쉰다)도 적응됐다. 너무 피곤할 때는 문 좀 일찍 닫고 싶은 유혹도 찾아오지만, 그렇겐 안 되더라. 내 장사니까.

물건의 위치도 이젠 어느 정도 파악했다. 사실, 있는 것도 못 판 경우도 몇 번 있었다. 내가 못 찾았는데, 손님이 찾아줄 때의 '뻘쭘함'이란! 가격도 이제 어느 정도 외웠다. 거스름돈을 잘못 준 적도 여러 번. 그 정도는 귀여운 실수 아니냐고? 모르는 소리! 이 업계에선 몇 백 원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딱지와 카드도 들여놓고, "신상 나왔어!"하며 애들에게 외친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문방구의 필수 업무인 포장. 이제 그것도 능숙하게(다섯 번에 한 번 정도?) 할 줄 안다.

무척 바쁜 아침과 저녁을 빼고는 라디오도 크게 틀어놓는다. 6평 문방구 속 1평도 안 되는 비좁은 카운터에서 책도 읽고, 이렇게 글도 쓴다. 밥 먹고 원두커피 아메리카노까지는 아니더라도 봉지커피를 마시는 여유도 부린다.

아이들의 성향도 파악했다. 문에서부터 "안녕하세요" 90도 인사를 하고 들어오고, 물건 사고 공손히 동전 올려놓고, 나갈 때에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꾸벅 하는, 이른바 '천사표'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만 오면 막 힘이 나고 신이 난다. '문방구 하길 정말 잘 했네' 느낀다. 그 천사들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니 세상은 참 공평(?)하다. 

'진상'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 오백 원짜리를 백 원 깎아 달라고 계속 떼쓴다. 이들과의 협상은 빨리 끝내야 한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들의 술수에 말린다. 어리다고? 노(No)! 이럴 때 보면 속에 능구렁이 하나쯤 들어 있는 것 같다. 동전을 팍팍 던지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때면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걸 얘기할까? 말까?'

장사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그날 매출을 정리한다. 꼬깃꼬깃 접힌 지폐들과 손때 묻은 동전들을 바라보면, 하루의 피로가 푹 가신다(까진 아니고, 기분이 좀 풀어진다). 샤워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하루도 고생했구나! 대로야 수고했다!"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이렇게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나는 완벽한 문방구 아저씨로 변신했다.

문방구 개업 한 달 반... 이제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
ⓒ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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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첫 2~3주가 무척 힘들었다. 문방구를 하는 것이 어색했다. 마치 전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왜 이 일을 한다고 했을까?' 약간의 후회도 있었다. 물건이 아직 많이 없어 "죄송합니다, 갖다 놓겠습니다"라고 어머니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내 모습이 참 불쌍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불평도, 짜증도 많아졌고, 아이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기 일쑤였다. 이런 모습을 보여 주는 가장의 모습에 가족들에게도 왠지 미안했다.

그러던 중,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왜 장사를 하는가>. 참 직설적인 제목이다. 마치 내게 직접적으로 묻는 것처럼. 일본 최초의 24시간 영업 초대형 할인점 'AZ마트'를 설립한 마키오 에이지가 쓴 책이다. 초대형 할인점을 열었다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진행 중인 조그만 곳 아쿠네 시에 열었다는 것이 특별해 보였다. 효율성으로 보자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가게 운영하는 데 한두 가지라도 팁을 얻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던 중, 만난 한 문장.

저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되돌아보았습니다. 자동차의 세계에서 살고 싶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소매업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지금의 시련에는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원해서 소매업에 뛰어든 게 아니었고, 애초 소매업 일에는 그다지 흥미도 없었기에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소매업은 나의 천직이다'라는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아울러 왜 장사를 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야 했습니다.(<왜 장사를 하는가> 33쪽)

순간 뜨끔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내 이야기 아닌가? 지금의 내 모습이 보였다. 소매업을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만 하는. 그냥 '어쩔 수 없이' 가게를 하고 있는. 불평과 불만만 가득한 내 모습! 이런 내게 이 문장은 계시와도 같았다. 몇 번이고 이 문장을 읽었다. 가슴에 새기려는 듯 계속 읽었다.

다음 날 아침, 가게 나가기 전. 집에서 멀리 보이는 고등학교 건물을 보았다. 아침 일찍 학교 가는 학생들을 보았다. '그들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순간 뭉클했다. 소리쳤다!(이른 시간이라 조그맣게)

"장사는 천직! 문방구는 내 천직이다!"

그날 이후로, 마음을 다르게 먹은 것 같다. 어차피 할 것이면 재밌게 하자!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처럼, 한번 즐겨 보자! 더 힘든 일도 많이 있지 않나!

피곤하기만 했던 일상도 지금은 적응됐고, 손님들을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알아갔다. 이젠 문방구가 '천(1000)직'까진 아니더라도 '십(10)직', 아니 '백(100)직'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히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한가 보다.

문방구에 온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재잘대는 아이들. 그들과 함께 나는, 내 인생의 귀중한 한 부분을 지나고 있다. 인생을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blog.naver.com/clearoad)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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