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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택배 택배 택배 택배아저씨
미친 듯이 반가워하는 나
오, 냉큼 냉큼 냉큼 냉큼 주세요."

'신길역 로망스'의 노래 <택배 아저씨>의 일부다. 노랫말처럼 기다림 끝에 받는 우편·택배는 마냥 반갑다. 쇼핑몰에서 큰 맘 먹고 산 옷, 부모님이 고향에서 보내주신 각종 농산물, 군대에 간 아들이 쓴 손편지나 사랑하는 사람이 부친 엽서까지... 우리나라 대표 공기업 '우정사업본부'의 비전처럼 우편·택배 배달은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일'이다. 이렇게 고마운 우체부 아저씨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겉보기 똑같지만 다 같은 우체부 아니야...

집배원들은 겉으로 보기에 똑같은 '우체부 아저씨'지만 다양한 유형이 있다. 우체국은 '정규직 집배원'을 채용해 우편과 등기, 소형 택배를 처리한다.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는 '재택 위탁 집배원'들과 계약을 맺는다. 택배의 경우에는 '위탁 택배' 시스템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장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린다. 집배원 장시간·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에 따르면 집배·택배원들은 연간 평균 2952~3216시간을 일한다. 2010년 기준 세계 OECD 국가 평균 연간노동시간인 1775시간의 1.8배다. 법정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집배원들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1년에 156일을 더 일하는 셈이다.

우체국은 지난 7월 12일부터 토요 휴무를 전면 실시했다. 보통 우편물에만 적용했던 토요배달 휴무제를 모든 배송 서비스에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주 5일제가 시행된 지금, '희망'과 '행복'을 전한다는 집배·택배원들은 행복에, 그리고 희망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기자들이 각각 정규직 집배원·재택집배원·위탁집배원 유형에 해당하는 이들과 하루를 동행했다.

집배원들은 사측과의 갈등을 우려해 모두 익명을 당부했다.

A씨는 점심을 자주 거른다. 빨리 먹는 데는 도가 텄지만, 음식 조리를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A씨는 점심을 자주 거른다. 빨리 먹는 데는 도가 텄지만, 음식 조리를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 고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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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집배원 A씨 "점심은 사치"

더위가 한풀 꺾인 지난 8월 12일 오전 8시, 경기도 소재의 한 우체국 3층에 위치한 '우편물류과'에는 집배원들의 배송 준비가 한창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집배원 A(50)씨는 "화요일은 등기보다는 택배가 많이 몰리는 날"이라며 칸칸이 쌓여 있는 우편물 분류에 나섰다.

분류를 마친 등기우편과 소포는 곧 오토바이 배달통으로 옮겨졌다. 가벼운 잡지류부터 옥수수, 고구마에 이르는 품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30kg에 이르는 수화물이 순식간에 오토바이의 빨간 배달통에 차곡차곡 쌓였다. 미처 싣지 못한 짐은 통 바깥에 끈으로 동여맸다. 관련된 안전 규정이 따로 있냐는 질문에 A씨는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라며 "한 번에 가능한 한 많이 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전 9시, 위태롭게 짐을 실은 A씨의 오토바이가 우체국을 떠났다.

우편물류과의 책상에는 집배원의 서명이 포함된 '안전운전 다짐 서약서'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시간이 빠듯해 지역에 따라서는 과속과 신호위반까지 감행할 때도 있다.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3년 동안 20명인가 죽었을 걸?"

A씨는 자조하듯이 말했다. 전국우정노동조합(아래 우정노조)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동안 총 19명의 집배원이 사망했다. 집배원의 업무상재해는 1163건에 달했다. 산업재해율(전체산업재해건수÷전체노동자수)은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4.3배나 높다.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 당 사망재해건수)은 2.2배가 높았다.

안전 규정이 따로 있냐는 질문에 A씨는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한 번에 가능한 한 많이 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 규정이 따로 있냐는 질문에 A씨는 “자기가 하기 나름이다. 한 번에 가능한 한 많이 실어야 한다”고 말했다.
ⓒ 고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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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A씨는 땡볕 아래서도 시종일관 뛰어다녔다. A씨는 2000세대에서 많게는 2500세대까지 배송을 맡는다. 대부분이 부재중인 시간이라 사서함에 일일이 '부재중 방문 스티커'를 붙이고, 문자나 전화를 남겼다. A씨는 "부재중이라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왜 배송이 오지 않느냐'는 항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지정한 '적정 배달 소요시간'은 한 건당 1분 50초에서 2분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다 보니 그 시간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배달 외에도 일선 현장에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다.

경력 20년의 A씨는 "점심은 사치"라며 웃어 보였다. 빨리 먹는 데는 도가 텄지만, 음식 조리를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A씨는 "그래도 계속 같은 곳을 배송하다 보니 동네 주민들이 빵이라도 먹으라며 주실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기자의 몫까지 음료수를 챙겨 주기도 했다. A씨가 "그래도 아직 정이 넘치는 세상"이라며 웃었다.

A씨가 부피가 큰 택배들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배달지로 뛰면서 "대부분은 병을 달고 산다"는 말이 이어졌다. 실제 지난 2013년 12월, 우정노조과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우정종사원의 근로시간과 일·생활균형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공동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합원 5237명 중 52.7%가 근골격계 질환을, 10.8%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앓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수기에도 12시간 근무 기본, 민원 발생시 상여금 깎여

오토바이 엔진 소리를 뚫고 전화가 울렸다. 택배를 기다리는 고객의 전화였다. 귀에 붙인 PDA 밖으로도 날카로운 목소리가 삐져 나왔다. "죄송하다, 금방 가겠다"는 A씨의 사과가 이어졌다. 우정사업본부는 '안전과 신속'의 고객 서비스를 강조한다. 한국능률컨설팅협회가 주관하는 한국산업 고객만족도(KCSI) 평가의 일반행정서비스 분야에서 지난 2013년까지 15년째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1위의 영광은 집배원의 고통을 가리고 있다. 고객센터에 CS(고객만족, Customer satisfaction)와 관련한 민원이 들어오면 해당 집배원이 속한 우체국의 평점이 바로 깎이는 살벌한 시스템이다. 우체국 평점은 당해 상여금과 직결된다.

오후 5시경이 되어서야 A씨의 배송 업무가 끝났다. 그러나 A씨는 집이 아닌 우체국으로 향했다. 배송하지 못한 물품이 무엇인지부터 오토바이로 몇 km나 달렸는지에 이르기까지, 당일 업무의 모든 결과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일 할당량의 우편물 구분은 미리 끝내놓아야만 다음 날 시간을 맞출 수 있다.

모든 일과를 마치니 시계는 어느덧 오후 8시를 가리켰다. 비수기였음에도 12시간이 걸렸다. A씨는 "주 5일제가 시행됐지만, 명절 때는 임시로 토요일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러려니 해야지"라며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삼성언론재단의 제1회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 노력상 수상작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우체국, #집배원, #재택택배, #위탁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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