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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은 동물과 생선의 도살을 자주 목격하면서,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생명체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모든 인간은 나치이다. 인간이 다른 생물종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며 거만하게 구는 것은 가장 극단적인 인종주의 이론, 즉 힘이 정의라는 신념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예이다." -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원수들, 사랑 이야기> 중 (<동물 홀로코스트> 250쪽 발췌)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에게 제도적으로 가해지는 학대를 알리기 위해 농장·도살장·실험실에서 비밀리에 촬영한 영상을 공개한다. 그 중 '패션'이라는 미명으로 살아있는 동물에게서 모피를 빼앗는 관행은 충격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잔혹하다.

모피반대 캠페인이 벌어질 때면 종종 들리는 말이 있다. '잔인하기로 따지자면 먹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들에 대한 처우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이런 지적이 '모피는 물론 육식도 지양하자'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이런 말이 실제 의미하는 바는 '고기도 잔인하게 생산되니까 모피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비재로 전락한 동물들의 희생을 문제 삼지 않거나 당연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생명존중의 가치는 사람들이 먹고, 입는 동물들에게는 예외인 걸까?  

동물을 '수단'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의 배경에는 인간의 뿌리 깊은 우월주의가 있다. 찰스 패터슨의 <동물 홀로코스트>는 이러한 우월주의가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조명한다. 또한 동물에 대한 우월의식이 타인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인간 약자에 대한 착취와 학살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동물 차별과 인간 차별은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힘이 곧 정의'라는 믿음이다. 

동물, 그리고 인간을 다루는 '나치'식 방식

<동물 홀로코스트>(찰스 패터슨·정의길 역·휴)
 <동물 홀로코스트>(찰스 패터슨·정의길 역·휴)
ⓒ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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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가축화·노예화는 인간이 동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인간은 동물에 대한 연대의식을 폐기하고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물에 대한 지배가 제도로 정착되면서 인간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까지 동물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결국 동물에 대한 지배와 착취는 인간 노예제의 모델과 영감이 되었다.

신대륙을 정복한 유럽인들은 그곳의 원주민들을 '인간과 짐승의 중간 존재'로 간주하고 착취했다. 과학자들은 두개골을 비롯한 신체 특성으로 인종을 서열화하여 인간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구축하고 원주민에 대한 착취를 합리화했다.

최우량종만을 번식시키고 나머지는 거세하거나 죽이는 가축육종학의 논리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혈통을 제거하는 인간우생학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미국, 독일에서 정신병·불치병 환자·장애인 등 이른바 '하위 인간들'이 대를 잇지 못하도록 강제적으로 단종(斷種)시키는 등의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우생학적 조치들은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등장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책은 유대인 홀로코스트가 히틀러라는 미치광이의 우발적 소행이 아니라, 당시 미국과 독일 사회에 깊숙히 자리 잡은 인종주의의 결과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자인 헨리 포드가 시카고의 도살장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조립라인이 유대인 도살에 특별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 홀로코스트를 몰고온 반유대주의 운동의 원조 역시 포드라는 사실, 히틀러가 집무실에 포드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며 찬양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위인'으로 알려졌던 포드의 어두운 이면이다.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도살장의 동물 홀로코스트는 작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희생자들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들을 기만하고, 협박하고, 물리적으로 강제하는 일련의 장치를 동원했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점을 보였다. 또한 두 홀로코스트 모두 가해자가 도덕적 중압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보였는데, 특히 희생양이 어릴수록 부담감은 증가했다.

롱은 "어미와 떨어져 어쩔 줄 몰라 하는 작은 송아지가 우유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도축자의 손가락을 빨다가, 인간의 몰인정이라는 우유만 얻을 때"는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한다. 그는 도축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차 없고, 무자비하고, 갈수록 가혹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163쪽)

"아버지는 게토 폭동 때 바르샤바에 주둔했던 나치 국방군 병사였습니다. 그들이 게토에 있던 벙커들을 소탕하는데 어느 날 아침 그 벙커 중 하나에서 여섯 살 난 여자애가 뛰어나와 우리 아버지한테로 달려와 안겼답니다. 아버지는 공포와 신뢰가 뒤섞인 그때 그 아이 눈빛을 평생 잊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지휘관이 아버지에게 총검으로 아이를 찌르라고 명령했어요. 아버지는 소녀를 죽였지요. 그러나 그 소녀의 눈빛은 죽을 때까지 아버지를 따라다녔습니다." (167쪽)

가해자의 정신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도적인' 처형 방식이 도입되었지만, 학살 과정에서 인도주의란 희생자가 아닌 가해자를 위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미국 남부에서 흑인 노예에 대한 지나친 학대를 금지하는 법률이 오히려 노예제를 공고하게 만드는데 기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노예제의 인도적 개선은 노예제를 '폐지의 대상'이 아닌 '견딜만한 것'으로 인식시키는데 기여했다. 

흔히 채식주의자들을 조롱할 목적으로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다'는 말이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인 요제프 괴벨스가 지어낸 신화일 뿐이다. 히틀러가 육식을 하지 않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는 주장은 그를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자기통제의 인물로 각인시키기 위해 조작된 소설이다. 히틀러는 고질적인 소화불량을 피하기 위해 육식을 꺼렸을 뿐이며, 그럼에도 좋아하는 육류 요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채식주의의 이념에도 전혀 동조하지 않았다. 간디를 비롯한 채식주의자들의 비폭력 철학을 경멸했고, 권력을 장악한 후 독일의 모든 채식주의 단체들을 탄압하고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종의 장벽을 넘어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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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없는 자는 살 권리가 없다"는 히틀러의 선언은 인류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책은 이에 맞서 투쟁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그들의 후예들을 조명한다. 이들의 직·간접적인 홀로코스트 경험은 종의 장벽을 초월하는 공감과 연대의식의 바탕이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는 동물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일련의 소설을 통해 인간이 동물을 다루는 '나치'식 방식을 세상에 환기시켰다.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인 피터 싱어는 오늘날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방식에 '종차별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동물해방의 주장을 이끌어냈다. 그가 <동물해방>(김성한 역·연암서가)에서 제시한 논증은, 동물에 대한 단순한 연민의 감정이 아닌 이성과 논리에 기초한 채식주의의 근거를 확립했다. 또한 페타(PETA·동물의 윤리적 대우를 바라는 사람들)를 비롯한 국제 대형 동물보호단체를 탄생시켜 동물보호 운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싱어의 <동물해방>은 동물권 운동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써 '동물해방 운동의 바이블'이라 불리고 있다.

헨리 스피라는 피터 싱어의 강의를 듣고 인생의 마지막 20년 동안 동물의 권익보호에 투신했다. 농장과 실험실에서 동물에게 제도적으로 가해지던 여러 학대를 철폐한 그는 싱어의 동물해방 사상을 현실에서 가장 잘 구현한 활동가로 평가받는다. 본래 인권운동가였던 스피라는 동물해방 운동으로 전향한 계기에 대해 "동물해방 운동을 지배당하고, 억압받는 힘없는 자와 취약자, 희생자를 나와 동일시하는 내 삶의 논리적 연장"으로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대계 예술가 주디 시카고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현대의 산업화된 동물 도살 사이의 연관성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www.judychicago.com 사이트 갈무리.
▲ 홀로코스트 프로젝트 유대계 예술가 주디 시카고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현대의 산업화된 동물 도살 사이의 연관성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www.judychicago.com 사이트 갈무리.
ⓒ JudyChicago&DonaldWo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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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과 채식주의는 한국에서 아직은 낯선 주제다. 육식할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생각에 채식주의의 이념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해를 해소하고 채식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보급하는 것은 활동가들의 몫이다. 그런데 동물권·채식주의에 관한 외국의 번역서를 읽다 보면, 정작 옮긴이의 후기에서 해당 주제에 대한 진부한 오해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저자의 주장을 인정하는 순간 고기를 먹기가 불편해질 거라는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심리는 이해한다. 그러나 적어도 해당 주제의 책을 옮긴이라면, 저자의 다른 책이나 관련 서적을 통해 자신의 반론이 합당한지 확인해야 한다. 진지한 성찰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자신의 습관을 방어하려는 얄팍한 반론은 독자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옮긴 정의길 <한겨레> 기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동물권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딸들이 고양이를 좋아해 그 인연으로 이 책을 번역하게 됐고, 책을 번역한 뒤 채식주의자로 변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짤막한 소개의 글에서 진한 고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변신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의 노력에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동물은 여느 약자들과 달리 제도적인 폭력에 항거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 없는' 약자들이다. 이 때문에 동물의 권리를 외치는 활동가들은 종종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옳다고 믿는 바를 머릿속의 공허한 지식으로 묵히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들은 희망을 준다. 이 책은 종의 장벽을 초월해서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동물 홀로코스트 - 동물과 약자를 다루는 '나치' 식 방식에 대하여

찰스 패터슨 지음, 정의길 옮김, (사)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감수, 휴(休)(2014)


태그:#동물 홀로코스트, #찰스 패터슨, #약자, #종차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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