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칼 품은 '조선총잡이' 19일 오후 서울 동대문의 한 호텔에서 열린 KBS 2TV 특별기획드라마 <조선총잡이>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이준기(가슴에 칼을 품은 총잡이 박윤강 역)가 총잡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선총잡이>는 격랑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개화기의 젊은이로 살다 간 선조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25일 수요일 밤 10시 첫방송.

배우 이준기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검은 색 맨투맨 셔츠에 검은 반바지와 레깅스까지. KBS 2TV <조선총잡이>를 마친 배우 이준기는 편안한 모습으로 취재진과의 자리에 나타났다. 머리 위에 얹은 페도라를 만지작거리며 "원랜 이런 차림에 스냅백을 쓰는데, 그래도 취재진과 만나는 자리라 신경을 썼다"고 농담을 던지는 이준기에게는 잔혹한 운명 앞에 몸부림쳤던 박윤강도, 싸늘한 눈빛으로 복수의 총신을 겨누던 한조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종영 이후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술자리가 많았죠. 또 추석 연휴가 있어서 가족들도 많이 만났고요. 그래도 아직 (시간을) 보내야 할 사람들이 많아요."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이준기에게 <조선총잡이>는 '아쉬움'이다. "어쨌든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고 종영해 기뻤다"는 말로 운을 뗀 이준기는 "방영 전부터 기대도 컸고, 중간 중간 시청자가 원하는 것도 많았는데 그걸 못 채웠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배우로서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 충실한 거라고 생각해 최대한 나오는 대본을 숙지하고 연구하고 (촬영에) 임했다"고 말했다.

새 소속사(나무액터스)에 둥지를 튼 후 새로 마련한 밴은 <조선총잡이>를 촬영하는 동안 '만신창이'가 됐다. 촬영 기간 내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한 탓이다. 한 관계자는 "촬영장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이번에 가까이에서 작업하며 보니 누구보다 성실한 배우였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국형 히어로의 탄생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기대에) 못 미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하지만 시청자가 좋은 시청률로 의리를 보여주셨다는 건, 이준기가 보여주는 히어로물에 대한 만족감이 높으셨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쉬움도 크지만 나름의 성취감도 있어요. 고생한 만큼 사랑 받고 끝나서 기쁘죠. 지금은 홀가분해요."

"엔딩컷 수염, 사실 붙이고 싶지 않았는데...끔찍하더라"

 KBS 2TV <조선총잡이>에 출연 중인 배우 전혜빈과 이준기

"엔딩 컷은 2시간 만에 찍은 거라 어떻게 나올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해요. 저에게 없을 것 같은 야수 같은 표정이 나왔죠. 앞으로의 이준기의 미래가 보이는 엔딩 컷이 아니었나 싶어요." ⓒ KBS


<조선총잡이> 마지막 회, 갑신정변 이후 몸을 숨겼던 박윤강이 민중의 영웅이 돼 말을 달리는 엔딩은 "짧지만 박윤강의 모든 것을 담고 싶었던" 장면이다. 사실 그는 방송 장면에서처럼 수염은 붙이고 싶지 않았다고. "감독님이 10년의 시간이 지난 박윤강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고 전한 이준기는 "그래서 마지막 회를 찍는 한 주 동안 계속 고민했다"고 엔딩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서 머리만 먼저 길게 해 봤는데, 나이든 공길(영화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가 맡았던 역할-기자 주) 같더라고요. (웃음) 자칫하면 민중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박윤강이 아니라 이준기의 장점인 중성적인 모습, 여린 모습만 나올 것 같았어요. 그러니 저도 수염을 붙이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또 개인적으로는 '수염을 붙여도 잘 생겼을 것'이라고 자신했어요. 가끔 (실제로) 수염이 자란 걸 보면 나쁘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정작 수염을 붙여 보니 끔찍하더란다. 잠시 웃던 이준기는 "다시 떼고 붙일 시간이 없어 그대로 촬영했다"며 "나도 그 장면이 나올 때까지 초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팬들은 충격을 받은 것 같더라. 특히 단관 이벤트로 큰 화면에서 (그 모습을) 본 팬들에겐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2시간 만에 찍은 거라 어떻게 나올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한다"고 전한 이준기는 "나에게 없을 것 같은 야수 같은 표정이 나왔다. 앞으로의 이준기의 미래가 보이는 엔딩 컷이 아니었나 싶다"고 자평했다.

원 없이 액션신을 촬영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수확이었다. 가장 멋있었던 액션신으로 6회 한조로 분한 박윤강이 최혜원(전혜빈 분)을 구한 신을 꼽은 그는 "다른 액션신은 찍기 전 스트레스도 많고 부담도 컸지만, 그 신은 별 생각 없이 그냥 혜원을 두고 바로바로 원테이크로 찍었다"며 "그렇게 내가 액션을 잘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혜빈이가 저에게 그날 진짜 반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예요, 웃지 마세요. (웃음) '나에게 이런 장점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없이 찍었지만 만족스러웠어요. 실제 드라마에서도 멋있게 나왔고요. 원래 원테이크로 쭉 찍는 걸 좋아해요. 대역을 최소화할 수도 있고, 본인의 매력과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거든요. 잘 만들어진 액션신이었죠."

"남상미와의 애정신, 스태프가 놀릴 정도로 나만 좋아했다"

 KBS 2TV <조선총잡이>에 출연 중인 배우 남상미와 이준기

ⓒ KBS


 KBS 2TV <조선총잡이>에 출연 중인 배우 남상미와 이준기

"예전에 상미를 처음 만났을 땐 아무리 애정신을 찍어도 어리고 귀여운 동생 같았어요. 현장에서도 그렇게 지냈고요. 그런데 이번에 러브라인을 따라갈 땐 상미에게 기댄 부분도 없잖아 있었어요." ⓒ KBS


로맨스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준기의 키스 능력이 이번 드라마를 통해 진화하지 않았나 싶다"고 진단한 그는 "마지막 회 동굴 신에서 정수인(남상미 분)과의 키스신은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며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진일보한 애정신을 선보이고 싶다. 많은 분들이 그 동굴 장면에서 좀 더 누웠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그 아이디어를 채택해 다음엔 좀 더 눕겠다"고 말했다.

한동안 남상미와의 애정신 이야기에 열을 올리던 이준기는 '애정신 연기 비결'을 묻는 질문에 "드라마 속 키스신은 아무래도 영화보단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그래서 수위를 지키면서 가장 섹시하게 보일 수 있는 각도를 고민했다"며 "무엇보다 입술을 느껴야 한다"고는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는 "사실 가장 현장에서 흥분했던 건 나"라며 "상미가 귀찮아해도 여러 번 시도하면서 화면에서 잘 나올 수 있는 각도를 시도해 봤다. 현장 스태프가 놀릴 정도로 나만 좋아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전에 상미를 처음 만났을 땐 아무리 애정신을 찍어도 어리고 귀여운 동생 같았어요. 현장에서도 그렇게 지냈고요. 그런데 이번에 러브라인을 따라갈 땐 상미에게 기댄 부분도 없잖아 있었어요. 여배우이면서도 (애정신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 덕분에 편하게 상의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키스를 하더라도 굳이 테크닉이 필요 없이도 분위기가 연출되었다는 장점도 컸죠. 여러 가지로 장점 많은 여배우로 거듭난 것 같더라고요. 오랜 시간 알아온 오빠로서, 동료 배우로서 행복했어요. 고마운 점도 많았고요."

듣다 보니 절로 '아, 이 사람 외롭구나'라는 생각이 밀려든다. 그러잖아도 늘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말한다는 이준기다. 취재진에게도 "내 이상형은 소박하다"는 자기 PR(?)을 빼놓지 않았다.(물론 '예쁘고 소박한 건 아니냐'는 반박엔 웃음으로 답했다-기자 주) "연애에 대한 욕망은 항시 있는 것 같다. 그게 없으면 사람인가"라고 반문한 그는 "합법적으로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게 연기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현장 가면 달고 사는 이야기가 그거라니까요. 좋은 짝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웃음) 저도 슬슬 결혼할 나이인데, 연애는 해보고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요. 스태프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놈'이라고 하셨을 정도에요. 야한 이야기를 섞어 몇 가지 별명도 지어 주셨어요. (웃음)"

"드라마든 영화든...공백기는 짧게, 다시 찾아올 것"

 KBS 2TV <조선 총잡이>에 출연한 배우 이준기

"차기작을 고르면서도 '이젠 히어로물을 그만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보단 '다음 작품에서 히어로물을 하게 된다면 이번엔 뭘 보여줘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예요. 그만큼 히어로물에 끌리는 게 사실이죠." ⓒ KBS


그를 대중에 각인시켰던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한 단 몇 작품을 제외하고, 이준기가 두각을 드러냈던 작품은 주로 히어로물이었다. 과거의 악연 때문이든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이든 상처받아 크게 울고, 복수를 결심하며 결의를 다지고, 끝내 뜻한 바를 이루는 영웅들은 이준기의 표정과 몸짓 속에서 생명력을 찾았다. 어쩌면 마음속에 남아있는 불분명한 감정들이 그를 히어로물로 이끌었을 수도 있고,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할 곳을 찾아 히어로물을 택했을 수도 있다. 취재진의 분석에 이준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히어로물을 찍으면서 느끼는 건데, 매번 그 갈증을 100% 채울 수 있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아쉽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차기작을 고르면서도 '이젠 히어로물을 그만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보단 '다음 작품에서 히어로물을 하게 된다면 이번엔 뭘 보여줘야 하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예요. 그만큼 히어로물에 끌리는 게 사실이죠.

말랑말랑한 로맨스도…정말 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들어오는 작품이…. (웃음) 그리고 로맨스물이 들어와도 제가 거기에 잘 끌리진 않더라고요. 저 역시 매료시킬 수 있는 작품이 온다면 자신 있게 하겠죠. 그만큼 제가 녹아들어 모든 걸 던질 수 있을 테니까요. 영화든, 드라마든 항상 날아다니는 이준기보다 새로운 이준기를 보여드릴 수 있다는 여지는 항상 두고 싶어요. 정말…이건 알아주셨으면 해요. 저 진짜 애정신 연기하는 것 좋아해요. 찍으니 행복하고요. 그게 얼마나 큰 복이에요! (웃음)"

제대 이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아랑사또전>을 시작으로 <투윅스> 그리고 <조선총잡이>까지, 이준기는 마치 그간 못다 한 숙제를 해치우듯 빠른 시간 안에 작품을 결정하고, 온 몸을 내던졌다. 이번에도 "공백기가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준기는 마지막으로 "드라마든 영화든 최대한 빨리 (차기작을) 선정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한동안 더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준기는 자리한 이들의 컵을 모아 늘어놓고는 꽤 높은 농도의 소맥을 말고, 연신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작품 속에선 배우 이준기일 뿐"이라며 "자연인 이준기는 SNS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는 그의 또 다른 모습이 그 시간 속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조선총잡이> 엔딩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는 화면을 가리키곤 "지금 저 장면을 봐야 한다. 저 표정 보이느냐"며 "저 미간에 잡힌 주름, 저게 바로 배우 이준기의 미래"고 즐거워하는 이준기는 결국,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배우'였다.

이준기 조선총잡이 남상미 전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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