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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의 한 대형 양판점에 전시된 삼성과 LG 드럼 세탁기들
 15일 서울의 한 대형 양판점에 전시된 삼성과 LG 드럼 세탁기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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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임직원의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 논란이 일파만파다. 삼성전자는 14일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 있는 한 전자제품 양판점에서 발생한 자사 세탁기 파손 사건과 관련, '재물 손괴'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LG전자 임직원들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 대상에는 LG전자 가전사업부를 책임진 조성진 홈어플라이언스(HA) 부문 사장도 포함돼 충격을 주고 있다. 도대체 두 가전 라이벌 사이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삼성 세탁기 파손 논란' LG전자 사장으로 확대

당시 독일 베를린에선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 IFA2014가 열려 전 세계 전자업계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 행사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오후(현지 시간) LG전자 일부 임직원들이 유럽 최대 양판점인 '자툰(Saturn)' 유로파센터 매장을 찾았다.

사건 초기 연구원으로 알려졌던 이들은 매장에 전시된 삼성 드럼 세탁기 '크리스탈 블루' 2대를 살펴보다 문을 여닫는 '힌지(경첩)' 부분을 파손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매장 직원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자 LG전자 임직원들이 세탁기 4대를 구매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던 세탁기 파손 사건은 삼성과 LG전자의 '감정싸움' 끝에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당시 LG전자에서 별다른 사과 없이 "고의성이 없는 경쟁사 제품 품질 테스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특정업체 제품만 유독 손상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해명한 게 화근이었다.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 사건에 휘말린 조성진 LG전자 HA부문 사장.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 사건에 휘말린 조성진 LG전자 HA부문 사장.
ⓒ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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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삼성은 당시 베를린에 있는 다른 매장 CCTV 영상을 수소문해 LG전자 임직원들을 대동한 조성진 사장이 같은 날 오전 자툰 슈티글리츠 매장에서 같은 제품을 파손하는 현장을 포착했다며,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삼성전자는 14일 자사 블로그에 "해당 업체는 크리스탈 블루 세탁기를 파손시켜 소비자들에게 원래부터 하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제품 이미지를 실추시켰을 뿐 아니라, 거짓 해명으로 삼성전자의 전략 제품을 교묘히 비하해 당사 임직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재물 손괴'뿐 아니라 '업무 방해'와 '명예훼손' 혐의까지 덧붙였다.

이에 LG전자는 자사 임직원들이 현지 매장에서 해당 제품을 살펴본 것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회사 세탁기들과는 달리 유독 특정 회사 해당 모델은 세탁기 본체와 도어를 연결하는 힌지 부분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면서 "이번 일이 글로벌 세탁기 1위 업체인 당사에 대한 흠집 내기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역공을 펼쳤다.

삼성 '고의 파손' 주장에 LG '제품 결함' 반격

이번에 문제가 된 건 삼성전자에서 올해 초 유럽 시장에 먼저 선보인 프리이엄 드럼 세탁기 'WW9000' 모델이다. 용량은 10kg급으로 21kg급의 절반이지만 출고가는 239만 원으로 오히려 두 배 정도 비싸다. 특히 보통 두 개인 '힌지'를 하나로 합친 크리스탈 블루 도어는 최대 170도까지 열어젖힐 수 있어 유럽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도 이미 지난 6월 출시된 제품이지만 LG전자로서도 관심을 끌 만한 제품이었던 셈이다.

삼성전자는 '고의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삼성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15일 "해당 제품은 이미 국내에도 출시돼 경쟁사에서도 이미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고 국내외 출시 제품 간에 차이도 없다"면서 "경쟁사에선 '살펴보는 행위'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서 문을 여닫는다든지 할 순 있겠지만 고의로 힘을 가해 누르는 건 과학적인 테스트라고 볼 수 없다"며 구체적인 행동까지 묘사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앞서 LG전자 임직원들이 슈티글리츠 매장에 다녀간 뒤 파손된 제품과 정상 제품을 비교한 사진을 공개했다. 아울러 파손 장면을 담은 CCTV 영상을 공개할 용의도 내비치며 LG를 은연중에 압박했다. 

반면 LG전자는 '고의성'은 물론 '파손' 혐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LG전자 홍보팀 관계자는 이날 "조 사장이 매장을 다녀갔을 때 해당 제품 문이 제대로 닫히는 걸 보고 나왔다"면서 삼성의 파손 주장을 일축했다. 아울러 같은 날 유로파센터 매장에서 제품 4대를 구매한 것에 대해서도 "파손 행위를 인정한 게 아니라 중요한 행사 일정을 앞두고 실랑이를 조속히 마무리하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같은 모델이라도 국내 제품과 해외 제품이 다른 경우가 많아 해외 전시회에 갈 때마다 테스트 차원에서 현지 제품을 만져보는 건 기본"이라면서 "고의로 경쟁사 제품을 파손할 목적이었다면 굳이 회사 고위 임원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그런 식으로 하겠나"라고 맞섰다. 오히려 "삼성 제품은 힌지 1개로 문을 지지해 타사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며 제품 자체의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다.

LG전자 임직원이 독일 베를린 가전 매장에서 파손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 드럼 세탁기 WW9000 모델.
 LG전자 임직원이 독일 베를린 가전 매장에서 파손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 드럼 세탁기 WW9000 모델.
ⓒ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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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발끈한 것도 이 대목이다. 정작 피해자는 자신인데 LG에서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LG는 오히려 삼성이 '국가적 위신,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현지 국가에서 사건을 확대하지 않았다'면서도 정작 현지 매장으로 하여금 경찰에 신고하게 하고 '언론플레이'를 통해 사건을 키웠다고 맞섰다.  

냉장고 용량부터 TV 디스플레이를 둘러싼 논쟁까지 삼성-LG 간 신경전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서로 '윈윈'이었던 지금까지 '기술 논쟁'과 달리 이번엔 서로 씻을 수 없는 상처로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낼 수도 있는 사건을 경쟁사 사장까지 연루된 자존심 싸움으로 키웠고, LG도 경쟁사 제품 품질 논란에 불을 지폈지만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이나 LG나 큰 차이는 없어요."

15일 낮 서울 한 대형 양판점에는 삼성과 LG 드럼 세탁기들이 나란히 전시돼 있었다. 마침 중국인들까지 매장을 찾아 직원과 흥정을 벌였지만 막상 외형만 봐서는 양사 제품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세탁기, 냉장고로 대표되는 '백색가전'이 품질이나 디자인 면에서 평준화됐고 중국 업체들의 추격도 매섭다. 

이번 사건 역시 삼성과 LG가 백색 가전에서 '고가 프리미엄'으로 차별화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하지만 서로 '가전 1위' 목표에만 매달려 선의의 경쟁을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후발 주자들이 추격할 빌미만 제공한 셈이다. 


태그:#삼성 세탁기, #삼성전자,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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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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