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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8월 12일 발표한 6차 투자활성화 보건의료 대책은 그로부터 두 달 전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서 좀 더 나아갔다. 병원의 영리자회사가 수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의 범위를 교묘하게 확장시킨 것.

건강기능식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부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과 동시에 발표한 '의료법인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환자의 선택권이 배제되는 의약품 및 건강기능식품 판매업 등은 제외한다"고 밝혔다.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은 (병원 부대사업의 본래 목적인 환자나 의료기관 종사자의 편의와 상관없는) 병원의 영리를 목적으로 한 부대사업이고 그에 따라 환자의 병원비가 급증할 것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강력한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는 "의료법인 자법인이 수행할 수 있는 부대사업 범위를 건강기능식품·음료 연구개발까지 확대한다"고 되어 있다. 건강기능식품 판매는 허용하지 않는 대신, 연구개발까지만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불과 두 달 전에는 없던 '건강기능식품 연구개발'

"그 병에는 이 건강기능식품이 좋으니 한 번 드셔보시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칠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병에는 이 건강기능식품이 좋으니 한 번 드셔보시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칠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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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첫 번째로 정부의 교묘한 술책이 드러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의약품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환자는 대부분 병원에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뒤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거나, 효과가 좋은 특정 약을 의사에게 권유받기도 한다.

처방전이라는 '공식적' 문서가 없더라도 "이 약이 좋더라"는 의사의 한 마디는, 의학적 정보가 부족하고 아프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환자들에게 처방전과 비슷한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처방하는 건강기능식품, 또는 "그 병에는 이 건강기능식품이 좋으니 한 번 드셔보시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칠 환자나 환자보호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요컨대 건강기능식품, 의약품 및 의료기기는 병원에서 판매되는 게 아니라 처방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법인 자법인의 건강기능식품 연구개발과 의사가 무슨 관계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병원의 자회사에 의사가 참여하지 말라는 제한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건강기능식품의 연구개발에는 거의 반드시 의사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렇게 연구개발되고 상품화된 건강기능식품이 그 과정에 참여한 의사와 이해관계를 같이하게 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도 자연스럽다. 의사가 연구개발에 참여한 고가의 특정 건강식품을 환자에게 권유하고, 환자가 구입을 망설이는 그림이 그려지는 이유다.

정부의 말 바꾸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26일 의료관광호텔업(아래 메디텔) 설립을 허용해주는 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병원의 영리화를 가속시킬 것이라는 시민사회단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메디텔 설립의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메디텔 시설과 의료기관 시설은 별개로 분리되도록 해 메디텔이 의료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라는 취지에 충실하게 운영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최소한의 규제는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통해 정부는 "진료과목별로 전문성을 보유한 의원급 의료기관이 '의료관광호텔'의 부대시설로서 건물을 임차하여 개설"하는 것을 허용했다. 쉽게 말해 메디텔 안에 의원이 임대를 통해 입점하는 것을 허용해 준 것이다.

종합의료시설 내 메디텔에 의원 임대 허용, 누굴 위한 정책인가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 6차 투자활성화 대책에는 메디텔 운영에 관한 광범위한 규제완화가 포함되어 있다. 메디텔과 병원이 "다른 층에 설치되거나, 같은 층이라도 격벽 및 별도 출입구가 있는 경우" 같은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출입구를 별도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사실상 병원과 메디텔은 분리되지 않는다. 메디텔이 의료관광객 숙박보다는 건강검진이나 미용·성형수술을 받기 위한 환자가 입원실 대신 머무르거나, 환자보호자가 유료로 숙박하는 장소가 될 게 뻔하다. 당연히 모법인인 병원은 자법인이 운영하는 메디텔을 이용하는, 소위 '돈 되는' 환자의 진료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교묘함은 종합의료시설 내 메디텔에 의원 임대를 허용함으로써 절정에 다다른다. 앞서 메디텔과 병원이 같은 건물, 심지어 같은 층에 입주가 가능하도록 정부가 손을 썼다고 밝혔다. 그리고 메디텔에 임대를 통한 의원 입점도 눈앞에 와 있다고 했다. 수학은 아니지만 이 두 명제를 합쳐보자. 중간에 메디텔을 두고 종합병원 및 상급종합병원에 의원이 들어설 수 있다는 결론도 가능할 법하다.

동네의원은 가벼운 병을, 종합병원은 중증 질환을 보는 것이 바로 의료전달체계이다. 이는 환자의 지리적·경제적 접근성을 최대화시키고 의료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것이다. 종합병원과 동일 건물 내에 의원이 부대사업으로 들어가게 되면 바로 이 의료전달체계가 위협받는다.

의료전달체계만이 문제가 아니다. 임대차 관계의 병원과 의원이 서로 불필요하게 환자 의뢰와 재의뢰를 하게 되면서 과잉진료와 그에 따른 의료비 증가가 불가피해진다. 이렇게 되면 병원이 갖춰야 할 각 과별 기능을 외주화함으로써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가 초래될 것이다.

정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는 일련의 보건의료 대책을 보고 있노라면, 정부가 하는 일을 국민이 모르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잡하고 어렵다. 정부가 하려고 하는 것들이 의료민영화의 본질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숨기기 위해 '성장'이라든가, '국제의료'라든가, '건강관리서비스'라든가, '서비스산업 육성'이라든가 하는 용어들로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고 있다.

'골든타임' 운운하며 조급증을 유발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따라가며 관심을 갖지 않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병원비 폭등과 어느새 껍데기만 남은 건강보험일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는 법이다.


태그:#6차 투자활성화 대책, #건강기능식품, #메디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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