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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에 개구리를 넣고 물을 부어 서서히 가열을 한다. 천천히 물 온도가 올라간다. 개구리는 올라가는 물의 온도에 맞춰 몸을 적응한다. 물은 계속 뜨거워진다. 그래도 개구리는 가만히 있는다. 결국 물이 펄펄 끓고 개구리는 죽는다.

이 이야기는 '비전상실증후근'을 설명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예화이다. 건조한 일상의 타성에 젖어 목표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을 빗댄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이야기에서 개구리가 죽은 이유를 주목한다. 냄비 속에 있던 개구리는 왜 죽었을까? 물이 뜨거워져서? 아니다. 뛰쳐나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50일이 지났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대부분 안산 단원고 2학년생들)이 아무 이유 없이 바다 속에서 죽어갔다. 이 끔찍한 참사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하나도 밝혀진 게 없다. 유가족이 원하고 국민의 과반이 지지하는 '제대로 된 특별법'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핑퐁 게임에 침몰하고 있다.

그럼에도 특별법 침몰을 막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4일과 5일에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걸었다. 노동당 고양파주당원협의회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현수막 200여 장을 거리에 걸었다. 그러나 걸린 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현수막 중 일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예리한 칼에 줄이 끊기거나 난도질이 돼 있는가 하면, 심지어 방화로 추정되는 불탄 현수막도 보였다.

지난 추석 연휴 직전까지 고양시내에 달려있던 세월호 관련 정당 현수막이 난도질 된 채 바닥에 버려져 있다.
 지난 추석 연휴 직전까지 고양시내에 달려있던 세월호 관련 정당 현수막이 난도질 된 채 바닥에 버려져 있다.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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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현수막이 불에 탄 채 보기 흉하게 걸려있다. 광기어린 폭력이다. 그러나 지금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막는 것은 누군가의 광기어린 폭력이 아니라 어쩌면 '다중의 침묵'일지 모른다.
 4.16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현수막이 불에 탄 채 보기 흉하게 걸려있다. 광기어린 폭력이다. 그러나 지금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막는 것은 누군가의 광기어린 폭력이 아니라 어쩌면 '다중의 침묵'일지 모른다.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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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단식농성장에 떼로 몰려가 피자를 시켜먹거나 이른바 '폭식투쟁'을 하는, '일베'로 통칭되는 이들은 사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는 큰 존재감이 없다.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싸움을 더 고단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다중의 무관심'일지 모른다.

지난 8월 22일 내 블로그에 '4·16특별법 못 만들면 다음 차례는 당신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며칠 후 한 이웃 블로거께서 거기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듣기 좋은 콧노래도 삼일이 지나면 싫증나고 부모가 죽어도 일주일이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먹고 살아야하지요. (…) 이제 국민은 싫어합니다. 그것이 현실이지요.'

단식농성장에서 피자를 시켜먹거나 폭식투쟁을 하거나, 혹은 정당 현수막에 불을 지르는 것 따위는 우리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정말로 끔찍스러운 건 지금 냄비 속에 든 개구리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만히 있으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유가족들의 특별법 원안 3조 4항)'는 절대 오지 않는다.

'처음에 나치는 공산주의자를 죽이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나치는 유태인을 죽이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나치는 노동조합원을 죽이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나치는 천주교인을 죽이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기독교인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나치는 나를 죽이러 왔다. 그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독일 루터교 목사 마르틴 니뮐레의 고백이다.

고양시 한 아파트에 걸린 4.16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폭력에 저항하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절대 오지 않는다.
 고양시 한 아파트에 걸린 4.16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폭력에 저항하지 않으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절대 오지 않는다.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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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특별법, #냄비 속 개구리, #가만히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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