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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기 모나지 않은 호음산(虎音山) 능선이 마을을 보듬고, 그 능선 골짜기가 터져 넓어진 양지바른 터에, 어림잡아 200여 호가 한자리에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황산마을이다. 호음산에서 시작한 실개울이 마을 한가운데로 흘러간다. 비가 적은 날에는 강아지 깨갱대듯 방정맞게 흐르지만 비만 왔다하면 호랑이 소리(虎音)를 내며 흐르는 개울이다.

벽화가 그려져 한결 정갈해진 동녘, 이제 벽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게 들린다
▲ 황산 동녘마을 정경 벽화가 그려져 한결 정갈해진 동녘, 이제 벽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게 들린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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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서쪽은 큰 땀, 동쪽은 동녘

실개울은 마을을 동·서로 가른다. 물 안쪽, 서쪽은 '큰 땀', 물 건너편 동쪽은 '동녘' 혹은 '동촌'이라 부른다. 성(城)이 성 안과 성 바깥으로 나누듯 물이 물 안과 물 바깥을 나누었다. 성으로 따지면 성 안이 큰 땀이고 성 너머가 동녘이다. 성의 사방(四方)에 문 달리듯 실개울에 여러 개 다리(橋)가 달려 그곳으로 드나든다.  

큰 땀은 양반 동네, 동녘은 농사를 짓는 양인(良人)이 살던 마을이라 들었다. 예전 말로 큰 땀은 반촌(班村)이요, 동녘은 민촌(民村)이다. 큰 땀은 어질고 덕망 있다는 요수 신권(慎權)의 자손들이 수백 년 대를 이어 이룬 거창 신씨의 집성반촌(集姓班村)이다. 반면에 동녘은 성(姓)은 달라도 같은 처지라는 동질감과 평등의식이 핏줄에 우선하는 그런 마을이었다.

지금은 모두 옛날 말이다. 큰 땀은 반촌답게 기와 고가들이, 동녘 마을은 개량한옥이 대부분이어서 집 모양으로 예전의 모습을 짐작할 뿐이다. 지금은 집 모양만 다를 뿐 삶의 차이는 없다. 큰 땀에 붙어있어 동녘이 작고 초라해 보이나 모두 황산마을, 우리의 농촌마을이다. 

금산 내 고향 마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전말로 하면 민촌. 이름도 민촌답다. 성 너머, 족실, 비실, 음지리, 양지리, 굴어, 어동굴, 원줄, 원댕이, 당골, 서당골 등 유래를 알 듯 모를듯한 재미난 이름들이다. 모두 산줄기 따라 생긴 손바닥 만한 땅, 그 땅의 여러 조각을 이고 어렵사리 살아온 사람들의 마을이다.

언제부터인지, 민촌에서 부자난다는 말이 생겨났다. 체면을 멀리하고 악착같이 산 결과다. 장날에 채소든 뭐든, 돈 되는 건 모조리 광주리에 이고 팔기 시작하여 한 푼, 두 푼 쓰지 않고 모았다. 그 돈으로 땅 한 조각 또 한 조각 늘려 지금은 꽤 부자소리를 듣는 집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예전 민촌도 그럭저럭 살 만하게 되었다. 동녘도 내 고향 마을도 모두 민촌, 보통 농촌마을이다. 

거창하면 사과다. 뉘 집 화장실에 사과나무를 그려 거창을 알리고 있다
▲ 사과나무 벽화 거창하면 사과다. 뉘 집 화장실에 사과나무를 그려 거창을 알리고 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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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마을, 담마다 그림이 가득한 동녘

몇 년 전 이 마을에 큰 변화가 생겼다. 거창군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미술협회 거창지부회원과 외부 조각가에 의해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어서 수준도 높다. 동녘에 볕들 듯 마을의 담이 따뜻해졌다. 동녘은 벽화마을이 되었다.

거창과 황산의 상징은 수승대이다. 우선 마을 어귀 오른쪽 담 밑에 거북바위 수승대와 관수루를 그렸다. 수승대의 이름을 바꾸지 않는 한 수승대와 퇴계의 연은 끊기지 않는다. 수송대의 이름을 수승대로 바꿀 것을 권하는 퇴계의 시, 개명시를 벽화에 담았다. 그 많은 시 중에 퇴계의 시를 '그린' 것은 거창과 마을사람들이 퇴계와 어떻게든 연을 맺으려는 열정에서 온 것이다.

거창은 사과의 고장이다. 벽화에 사과가 빠질 수 없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그림도 산뜻한 사과 그림이다. 뉘 집 화장실의 벽에 사과나무를 그린 것인데 사과창고처럼 보인다.

퇴계와 연을 맺으려는 거창과 황산마을사람들의 열성이 엿보인다
▲ 퇴계의 개명시 그림 퇴계와 연을 맺으려는 거창과 황산마을사람들의 열성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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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 같은 소가 왜 담을 뚫고 나왔을까? 거창의 여러 역사적 단면이 담겨있을 것 같다
▲ 담 뚫고 나온 소 한 가족 같은 소가 왜 담을 뚫고 나왔을까? 거창의 여러 역사적 단면이 담겨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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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소는 사람과 늘 함께하는 짐승으로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골목 한가운데, 담 뚫고 얼굴 내민 소 그림, 다들 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란다. 평화롭게 들에서 풀 뜯고 있는 소가 아니다. 한 가족 같은 소가 담을 뚫었으니 보통 일은 아니다.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그린 것 같지 않고 무엇을 그리려 한 걸까?

굴레로부터의 탈출, 죽도록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성난 '농심'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왕방울 같은 슬픈 눈 속에 벽은 뚫었지만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좌절감도 엿보인다. 아니면 거창양민학살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지도 모른다. 거창의 여러 단면이 담겨있다.

담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 역할을 한다. 여자아이에게 세상은 깜짝 놀란 만한 곳이고 세상물정모르는 남자아이에게는 그저 평화롭고 평안한 곳으로 보인게다
▲ 세상구경 나선 어린아이들 담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 역할을 한다. 여자아이에게 세상은 깜짝 놀란 만한 곳이고 세상물정모르는 남자아이에게는 그저 평화롭고 평안한 곳으로 보인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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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그림 바로 옆에 남매로 보이는 아이들이 담 위로 가슴팍만큼 올라서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형물이 있다. 여자아이는 무엇에 놀랐는지 '깜놀'한 표정을 짓고 사내아이는 누나가 그러거나 말거나 해 맑게 웃고 있어 재미있다. 담에 올라서 담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어린아이를 그리려한 것인지 모른다. 여자아이에게 세상은 깜짝 놀랄 만한 곳이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남자아이에게는 그저 평화롭고 편안한 곳으로 보인 게다.

절묘한 표정의 벽화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마을벽화에 두 가지 절묘한 표정이 있다. 두 마리 개의 알 수 없는 표정과 남매의 해맑은 표정이다. 개는 창문에 목을 빼고 시무룩하게 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어떤 표정인지 통 알 수가 없다. 장이나 밭일 나간 주인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거나 배고파서 짓는 감정 섞인 그런 표정이 아니다.

이 표정은 이 마을을 찾는 현대인, 도시생활에 지친 우리들의 '회색 표정'을 개의 표정으로 표현한 것 아닌가 싶다. 지하철에서 서로 마주하고 앉아있거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멋쩍은 분위기에서 나올 법한 표정이다. 회색빛깔 슬레이트 지붕도 이 개 표정을 거들고 있다.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무표정, 우리의 표정을 따라하는 것 같다
▲ 사람 구경나선 두 마리 개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무표정, 우리의 표정을 따라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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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옆에 있는 친구를 보는 것 같다
▲ 해맑은 남매 학교 다닐 때 옆에 있는 친구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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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맞은편 벽에 있는 남매표정은 해맑다. 남매라 쓰여 있지 않아도 누가 보더라도 남매다. 많이 닮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 건강하고 예전 학교 다닐 때 서로 마주하던 그런 얼굴이다. 그늘진 구석 하나 없는 행복한 얼굴이다.

큰 땀에 암키와와 수키와로 만든 꽃담이 있다면 이 마을에는 돌담에 페인트로 꽃을 그린 꽃담이 있다. 까무잡잡한 돌 위에 예쁜 꽃을 그려 꽃담을 만들었다. 돌을 갈고 갈아 억지로 찾아낸 꽃수석보다 이 벽화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이 꽃에서 집주인의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기와와 벽돌로만 꽃담을 만드는 게 아니다. 직접 꽃을 그려 꽃담을 꾸몄다
▲ 꽃을 그려 넣은 꽃담 기와와 벽돌로만 꽃담을 만드는 게 아니다. 직접 꽃을 그려 꽃담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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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슬레이트 지붕, 몇 그루 나무가 자아내는 향토적 풍경은 우리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 붉은 함석지붕 풍경 함석·슬레이트 지붕, 몇 그루 나무가 자아내는 향토적 풍경은 우리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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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벽화가 발길을 잡았다. 붉은 함석집과 회색 슬레이트 지붕, 연록 잎이 돋아나는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벽화다. 지붕개량지원금을 얻어 이제는 함석집이나 슬레이트집이 하나씩 개량 기와집으로 바뀌고 있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정경이다. 식상한 초가집 풍경보다 더 아련한 서정을 선사한다. 거창 어느 마을을 보고 그린 그림일까? 한 번쯤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집 저 집 벽에 그려져 있는 옥수수 종자와 메주, 닭과 병아리, 장독대와 진돗개, 채반과 지게 그림은 시골 풍경에 단골로 등장하여 식상해 보인다. 그래도 시골 풍경에 이런 그림이 빠진다면 전라도 잔칫상에 홍어 빠진 듯 서운한 것이기도 해서 봐줄만 하다.

다시 남매의 미소 앞에 서다

언제쯤 우리는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 남매의 미소 언제쯤 우리는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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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해맑게 미소 짓는 남매 그림 앞에 섰다. 이 미소를 따라해 보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마을사람들에게서 살짝 엿볼 수 있었지만 이 미소 짓는 남매야말로 우리 사회가 되찾아야 할 희망의 미소다.

아들을 군에 보낸 아버지, 딸을 고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어머니에게서 이런 미소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미소가 자연스럽게 나올 날은 언제일까? 가능하기나 할까? 그 때를 기다려본다.


태그:#황산마을, #큰땀, #동녘,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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