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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사람들은 세월호 사고 얘기를 해 주면 '거버먼트(정부)가 어떻게 그러느냐'면서 즉각적으로 화를 내요. 그럴때마다 정말 창피하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이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뿐이니까 열심히 하고 있지요."

지난 8일, 추석을 맞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광화문 단식농성장에는 각계에서 보내온 명절 음식들이 도착했다. 그중에는 호주에서 온 송편 세 상자도 있었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는 교포들이 주문한 것이다. 이들은 현지에서 약 3개월 동안  한 회에서 받은 2058명 분의 서명지와 유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도 함께 보내왔다.

'가만히 있으라 in 호주' 회원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보낸 추석 송편.
 '가만히 있으라 in 호주' 회원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보낸 추석 송편.
ⓒ 수잔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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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들을 움직였을까. '가만히 있으라 in 호주'의 수잔 리(54)씨는 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세월호 사고는 인권의 문제"라면서 "사고가 너무 슬프고 정부의 대응에 화가 나서 자연스럽게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주에 보수성향인 교포들이 많은데도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호주 사람들이 '어떻게 정부가 300명을 학살할 수 있느냐'고 물어"

수잔 리씨는 20여 년 전 호주로 건너간 한인 교포다. 한국 뉴스가 거의 나오지 않는 호주지만 지난 4월 16일은 낮부터 뉴스가 나왔다.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 등 300여 명을 태운 채로 여객선이 가라앉았다는 내용이었다.

300명이 누군지 아무도 몰랐지만 그는 남편과 손을 붙잡고 울었다. 자신의 딸과 같은 나이대 아이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바닷속에 있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저며왔다.

사건이 터진 지 3일이 지나자 분노한 교포 10여명이 페이스북에서 모였다. 대부분 서로 처음보는 사람들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아이가 있는 부모들이었다. 수잔 리씨도 여기에 동참했다.

이들은 모임 이름을 '가만히 있으라 in 호주'로 정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침몰 이후 사고를 기억한다는 취지로 생겨난 침묵행진 운동이다. 수잔 리씨는 "5월 21일에 첫 모임을 갖고 호주 시드니 영사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고 2, 3차는 촛불집회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유인물과 피켓으로 호주 시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한국과 한점 관련이 없는 호주인들도 이들의 유인물을 읽어보면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리씨는 "국적을 떠나 인권의 문제라 그런 것 같다"면서 "유인물을 읽어보고는 '어떻게 300명을 정부가 학살을 시킬 수 있느냐'고 물어오는 시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호주 정치인들도 사정을 듣고는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청원에 자신의 이름을 더했다. 수잔 리씨는 "연방의원인 로리 퍼거슨(Laurie Ferguson)과 주의원인 린다 버니(Linda Burney), 린다 볼츠 (Linda Boltz) 등이 서명에 동참했다"고 설명했다.

"코리아 거버먼트는 왜 자기 나라 아이들을 안 구해?"

수잔 리씨가 딸과 함께 만든 세월호 특별법 제정촉구 시위 깃발.
 수잔 리씨가 딸과 함께 만든 세월호 특별법 제정촉구 시위 깃발.
ⓒ 수잔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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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수잔 리씨의 딸은 처음에는 사고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딸이 '엄마의 나라 코리아 거버먼트는 왜 자기 나라 아이들을 구하지 않느냐', '나쁘다'고 묻는데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딸이 수시로 관심을 가지고 '그 아이는 (물에서) 나왔느냐' 물어봐요. 저랑 같이 시위용 깃발도 만들어주고. 아직도 가족 품으로 못 돌아온 희생자가 있다는 것에 대해 너무 가슴아파하죠."

수잔 리씨는 한국에서 최근 '폭식투쟁' 등 반 유가족 여론이 이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현상들에 대해 "시민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편향된 언론들이 세월호 사고를 왜곡하고 있고 그런 언론들의 보도가 여론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수잔 리씨는 "지금 유가족 소식을 왜곡않고 전달하는 방송은 <JTBC>뿐이지 않느냐"면서 "교포들은 방송을 볼 수 없으니 인터넷 신문이나 SNS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그는 세월호가 개인의 일도 아니고 유가족만의 일도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세월호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곪은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수잔 리씨는 "지금이 1970년대도 아니고 1980년대 초도 아닌데 왜 국민들에게 모든 걸 숨기고 보여주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면서 "전 국민이 나서서 정말 기소권과 수사권을 확보한 특별법을 바탕으로 진상을 확실히 규명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모아놓은 서명용지를 한국으로 보냈지만 그는 계속 가만히 있지 않을 작정이다. '가만히 있으라 in 호주'는 오는 21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 세월호 티셔츠를 입고 참가한다. 수잔 리씨는 "노란 배너를 들고 마라톤을 뛰면서 서명을 받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라 in 호주'의 회원 수잔 리(54)씨.
 '가만히 있으라 in 호주'의 회원 수잔 리(54)씨.
ⓒ 수잔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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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만히있으라, #호주, #수잔 리, #세월호,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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