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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도선사에서 경전공부모임 학생들이 젯상에 올릴 송편을 빚으려고 소매를 걷어 붙였다. 학생들이라지만 거개 평균 50대 주부들. 남성들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 삼사십 명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송편 빚는 모습이 다정다감함을 넘어 장엄하기까지 하다. 이 송편은 시루에 들어가기 전 무명천 속에 들어 앉았다. 거룩하지 않은가.

시루에 들어가기전 무명천 속에 들어가 앉은 자태가 거룩^^하기까지 하다
▲ 송편 시루에 들어가기전 무명천 속에 들어가 앉은 자태가 거룩^^하기까지 하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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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을 빚는 손놀림이 저마다 다 다르고 빚어지는 송편 모양 또한 제각각이다. 손 마디만 쓰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쓴다.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숙연해지다가도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 가끔 흥을 돋우려 시키지도 않은 가무를 넉살 좋게 곁들이며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괴짜 학생도 있기 마련이다. 좌판 옆에 다과는 기본이고 요즘은 강장제와 초콜릿이 간식으로 돌기도 한다.

송편빗는 손의 표정들이 송편만큼 다채롭다
▲ 손 송편빗는 손의 표정들이 송편만큼 다채롭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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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은 쌀가루를 반죽하여 빚는다. 속은 지역이나 가정에 따라 팥, 콩, 밤, 깨, 따위를 넣는다. 솔잎을 깔고 찌기 때문에 소나무 송(松)에 떡 병(餠)을 쓰서 송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솔잎을 까는 이유는 들러 붙지 말라고, 솔잎향의 신선함, 솔나무처럼 변치 말라는 거 아니겠는가.

송편 속으로 햇 콩을 넣는다
▲ 울타리 콩 송편 속으로 햇 콩을 넣는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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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반달인 까닭은 백제 마지막 의자왕이 어느 날 궁을 거닐다 거북 등껍질에 새겨진 글자를 발견했다 하는데, '백제는 만월이라 점점 기울 것이고 신라는 반달로 보름달로 점점 커질 거'라는 뜻의 글귀였다. 그 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선조들이 이를 기억하고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빚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쌀반죽을 많이 치대고 힘을 넣을 수록 쫀득한 맛이 살아난다
▲ 송편 쌀반죽을 많이 치대고 힘을 넣을 수록 쫀득한 맛이 살아난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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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양새야 어쨌거나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치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내년 농사의 풍년을 기원할 뜻으로, 송편은 오랫동안 전통 떡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빚는 사람의 마음이요, 떡을 나누는 마음이 아닌가.

쑥가루를 넣어 반죽한 송편은 섬유질이 풍부하고 연두빛이 곱게 살아난다
▲ 쑥송편 쑥가루를 넣어 반죽한 송편은 섬유질이 풍부하고 연두빛이 곱게 살아난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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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는 세월호 참사로 가슴 아파하는 유족들이 눈에 밟힌다. 이들에게는 예년 같지 않은 추석이다. 함민복 시인은 "어른으로서 그런 상황에 놓인 생명을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에 젖어 있으면서도 시대의 아픔을 시로 노래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이것에 대해 글을 안쓰면 내가 시인인가"라고 말했다.

빚는 사람 마음과 손에 따라 제각각이다
▲ 송편 빚는 사람 마음과 손에 따라 제각각이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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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올해 송편을 빚거나 먹으면서 세월호에서 희생된 아이들과 유족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면 목이 메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삼켜야 한다. 꼭꼭 씹어 삼켜 건강을 살리고 힘을 내야 한다. 세월호로 떠나보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것이 국가 권력이 일으킨 '교통사고'라면 재발 방지를 위한 책임도 당연히 물어야 할 것이다.

올해 송편은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안전한 세상을 빚는 마음으로 젯상에 올리고 나누어 먹을 일이다.


태그:#도선사 ,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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