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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인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5일 진도군실내체육관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남편을 떠올린 유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 세월호 실종자 양승진 단원고 교사 아내 유백형씨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인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5일 진도군실내체육관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남편을 떠올린 유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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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홀로 남편을 기다린다. 추석을 앞두고 차오른 달에 "빨리 남편을 찾아주세요"라고 빌어보지만 남편도, 달도 아직 답이 없다. 아내는 가장 큰 별을 남편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남편을 기다린다.

세월호 참사로 실종된 단원고 교사 양승진씨의 아내 유백형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8월 21일. 복원된 세월호 CCTV 영상을 보기 위해 광주지법 목포지원을 찾은 유씨는 한 걸음 내딛는 데도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이날 유씨는 진도에 함께 머물고 있는 배의철 변호사(대한변협 세월호 특위위원)의 손을 꼭 잡은 채 법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가슴으로 봤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일 진도군실내체육관을 찾아 다시 유씨를 만났다. 그는 "목포지원에서 소중한 기자가 찍은 사진 잘 봤다"라면서 옅은 웃음을 내보였다. 자신과 배 변호사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2, 3, 4일 유씨와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누워 쉬며 나눈 이야기를 최대한 가감없이 전한다. 호칭은 평소에 부르던 '어머님'으로 대체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준 묵주를 들어보이고 있다.
▲ 교황이 건넨 묵주와 노란리본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준 묵주를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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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첫날] "남편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지난 2일 오후 9시, 어머님은 체육관 한 켠에 누워있었다. 이날 오후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체육관을 찾아 한참 동안 대화하며 눈물을 쏟았던 터라 많이 지쳐보였다(관련기사 : 박영선 만난 실종자 가족 "잊히면 우린 죽어요"). "박 위원장과 어떤 말씀 나누셨어요"라고 물어봤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지. 바른 나라를 만들어달라고도 했고. 아이고, 오늘(2일) 봐요. 유가족들이 청와대 가려고 삼보일배를 해도 대통령은 나와보지도 않아(관련기사 : 흐르는 빗속 유족들 절규 "대통령님, 목소리 들리십니까"). 대통령이 5월에 눈물을 흘리며 발표했잖아.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관련기사 : "구조 실패한 해경 해체하겠다, 사고 대처 최종 책임은 대통령"). 근데 귀 막고 눈 막고 저러고 있으니 안 답답해?"

그러더니 어머님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담긴 세월호 CCTV 영상을 기자에게 내보였다. 영상 중 남편이 나온 부분만 자신의 휴대전화로 찍은 모양이다. 영상에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었다. 영상 속의 남편은 세월호 3층 로비에 놓인 소파에 앉아 학생 두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있다가 애들한테 돈을 줘. 그럼 애들이 '쪼르르' 하고 달려 나간다? 이거 봐, 이거 봐. 맞지? 좀 있으면 애들이 과자 사들고 와서 거스름돈은 남편한테 주고…. 저거 봐, 아휴, 뭐가 저렇게 좋다고 웃어. 30분 뒤에 침몰할 것도 모르고…. 또 머리 만진다(어머님도 영상 속 남편을 따라하며 자신의 머리를 만진다). 저게 남편 버릇이거든(웃음)."

잠시나마 남편의 모습을 보며 밝은 목소리를 냈던 어머님은 영상 재생이 끝나자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한 명 죽어야 대통령이 정신 차릴까. 보물처럼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잃었는데 유가족이 지칠 것 같아? 안 지쳐. 나도 어서 남편 찾은 다음에 서울에 가서 단식도 하고, 삼보일배도 하고 싶어. 지금 심정은 그게 다 부럽다니까. 그런데 몸은 점점 약해지고, 어지럽고, 뉴스만 봐도 아휴. 남편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게 생겼어."

어머님은 "내일(3일) 아침에도 진도군청에 (범정부대책본부의) 브리핑 들으러 가야 돼"라며 잠을 청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나 어디선가 송편 한 접시를 가져와 기자에게 건넸다.

"어디서 바리바리 싸왔는데 우리는 다 못 먹어. 내일 봐."

2일 오후 9시부터 20여 분 <오마이뉴스>와 대화를 나눈 유백형(세월호 실종자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씨가 대화 후 송편을 건네왔다.
▲ 실종자 가족이 건넨 송편 2일 오후 9시부터 20여 분 <오마이뉴스>와 대화를 나눈 유백형(세월호 실종자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씨가 대화 후 송편을 건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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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의 진도군실내체육관 내 자리에 양승진 교사의 그림이 놓여 있다.
▲ '양승진 선생님' 그림 놓인 진도군실내체육관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의 진도군실내체육관 내 자리에 양승진 교사의 그림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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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둘째날] "추석 앞두고 머리 자르고... 마음이 심난하니까"

간밤에 비가 많이 왔다. 수색도 이틀째 중단됐다. 지난 3일 오전 11시 체육관에서 만난 어머님은 "안 그래도 잠을 잘 못자는데 어젠 후두두둑 빗소리 때문에"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님이 체육관 앞문으로 나갔다. 어머님을 따라나섰다. 광주에서 미용봉사단이 와 있었다. 20분쯤 지났을까. 어머님 머리에 까만 염색약이 뒤덮였다. 또 20분쯤 지났을까. 염색약을 씻어내고, 머리까지 다듬은 어머니가 머쓱한 듯 거울 앞에 섰다.

"우리나라 사람들 그렇잖아. 추석 앞두고 머리 자르고, 새옷도 사 입고. 마음이 심난하니까. 마지막으로 머리 자른 게 언제였지? 한 달 하고 열흘 쯤 됐나. 진도읍에서 (잘랐었지)."

옆을 지나던 다른 실종자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이 "아이고, 머리 잘 됐네"라며 한 마디씩 건넨다. 어머님은 "나는 (잘 됐는지) 모르겠어"라면서도 옅은 미소를 내보인다.

비정상이 일상이 돼버린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고 전의 평범한 삶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일이다. 어쩌면 어머님을 비롯한 실종자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일상'일지도 모른다.

3일 미용봉사자들이 진도군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머리를 자른 뒤, 어색한듯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 자른 머리가 어색? 3일 미용봉사자들이 진도군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머리를 자른 뒤, 어색한듯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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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0분 산책을 하며 땀을 흘리라'는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에 따라 유백형(세월호 실종자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씨가 4일 오후 6시 30분께 사고 이후 진도에 머물고 있는 정성신 단원고 교사, 배의철 변호사(대한변협 세월호 특위위원)와 함께 저녁 산책에 나섰다.
▲ 실종자 가족·단원고 교사·변호인의 산책 '하루 40분 산책을 하며 땀을 흘리라'는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에 따라 유백형(세월호 실종자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씨가 4일 오후 6시 30분께 사고 이후 진도에 머물고 있는 정성신 단원고 교사, 배의철 변호사(대한변협 세월호 특위위원)와 함께 저녁 산책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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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셋째날] 일상의 회복, 정신과 전문의의 '특명'

체육관에 상주하며 실종자 가족을 돌보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도 가족들에게 '일상의 회복'을 강조한다. 우울한 감정이 일상을 지배하면 몸도 따라 쇠약해지고, 그러면 '기다리는 일'도 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의가 어머님에게 내린 특명은 두 가지. 하나, 하루 30분 햇볕을 쬐라. 둘, 하루 30분 산책하며 땀을 흘려라.

지난 4일 오후 2시 어머님과 함께 진도군청 뒤편으로 일광욕을 하러 갔다. 사고 후 꾸준히 실종자 가족을 돕던 진도군민 정성주씨의 소형차에 어머님, 단원고 선생님, 기자가 몸을 실었다. 밭이 내다보이는 산책로를 거닐며 어머님은 "이건 울금이야, 이건 옥수수야, 이건 고구마야" 하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소중한 기자, 이거 봐봐. 이거 울금꽃이야. 보기 힘든 건데."

이날 어머님은 고구마를 캐고 옥수수, 고구마줄기를 따다 체육관 옆 실종자 가족 식당에 건넸다. 울금꽃도 꺾어 기자에게 선물했다. 어머님이 딴 작물들은 모두 가족 식당에서 일하는 진도군민의 밭에서 난 것이다. 이 진도군민은 어머님이 일상을 찾길 바라며 자신의 밭을 기꺼이 내줬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는 사고 이후 진도군실내체육관에 머물며 남편이 생각날 때마다 체육관 앞 언덕에 올라 돌을 쌓았다. 5일 유씨가 돌을 더 올리고 있다.
▲ '남편 생각' 하며 쌓은 돌멩이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는 사고 이후 진도군실내체육관에 머물며 남편이 생각날 때마다 체육관 앞 언덕에 올라 돌을 쌓았다. 5일 유씨가 돌을 더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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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는 추석, 가슴 찢어지는 고통"

저녁 밥상에 고구마줄기를 넣은 오리탕이 올라왔다. 찐옥수수와 찐고구마는 후식. 그런데 밥 한 술 뜨던 어머니가 갑자기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기자에게 건넸다.

"이거 왜 이러는 거야?"

카카오톡 '새 친구' 목록에 '남편'이란 두 글자가 떠 있었다. 사고 후 해지한 남편의 휴대전화 번호를 누군가 사용하기 시작했나 보다. 이러한 상황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어머님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난 남편이 살아돌아온 줄 알고. 아니, 어디 무인도에 있나하고. 순간 정말 깜짝 놀랐네. 우리 남편은 스마트폰이 아니고 알뜰폰이거든. 맞아, 카카오톡에 뜰 리가 없지."

그제서야 어머님은 밥술을 다시 들었다. 식사 후, 어머님은 정신과 전문의의 두 번째 특명을 수행하기 위해 체육관 뒷산으로 향했다. 단원고 선생님, 배 변호사, 기자가 어머님의 산책길에 동행했다.

"그래도 우리 변호사랑 선생님이 옆에서 나를 많이 도와주지. 기자들도 힘이 돼. 기자들한테 밥도 많이 얻어먹었어(웃음)."

남편 이야기도 조심스레 꺼냈다.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의 아침밥은 꼭 챙겼던 어머님은 이제 그때가 떠오르는 아침이 싫다.

"애들 공부한다고 서울 보내놓고, 남편과 둘이 산지 한 3년 됐나. 내가 남편 건강검진 할 때 빼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렸거든. 그래서 지금은 아침이 싫어. 그때가 딱 떠오르니까. 이제 차려줄 수가 없잖아."

30분 정도 올라 뒷산 정자에 다다르니 날이 어두워졌다. 살이 부쩍 오른 달은 추석이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아휴…, 남편 없는 추석.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가슴 찢어지는 고통 뿐이네. 내가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정말 싫다. (하늘을 보며) 우리 남편은 저 별이 됐나. 제일 큰 별이 우리 남편 별일까. 달님, 달님. 추석 선물로 우리 남편, 하루 빨리 바다 속에서 나오게 해주세요."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4일 오후 7시께 진도군실내체육관 뒷산에 올라 달을 보고 있다. 유씨는 " 달님. 추석 선물로 우리 남편, 하루 빨리 바다 속에서 나오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 "달님, 우리 남편 꼭 찾게..."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가 4일 오후 7시께 진도군실내체육관 뒷산에 올라 달을 보고 있다. 유씨는 " 달님. 추석 선물로 우리 남편, 하루 빨리 바다 속에서 나오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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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추석 연휴를 닷새 앞둔 2일 전남 목포와 진도를 찾아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날 낮 12시 30분께 박 위원장이 진도군실내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를 만나고 있다.
▲ 텅 빈 체육관, 실종자 가족 만난 박영선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이 추석 연휴를 닷새 앞둔 2일 전남 목포와 진도를 찾아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이날 낮 12시 30분께 박 위원장이 진도군실내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침몰사고로 실종된 양승진 단원고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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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단원고,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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