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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는 2015학년도부터 모두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전환시킬 예정이다. 원래 자사고 제도의 기본 취지는 성적에 의해 서열화된, 소위 명문학교가 아니라 각 학교가 갖고 있는 건학 이념이나 여러 가지 교육목적상의 목적을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거나 성적으로 제한함으로 인해 이 학교들이 일반 학교들과 서열화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일반고가 그로 인해 정상적인 운영을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소수의 학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 전체를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자사고의 경우 선발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자율성을 확대한다."

이 발언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한 말이 아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이 지난 2013년 8월 13일에 한 말이다. 당시 그는 자율형 사립고 정책 이후 일반고의 위기가 가속화됐다고 지적하며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을 폐지하는 등 자사고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에서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개선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4일 오후 서울시교육청에서 자사고 운영성과 종합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개선에 대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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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 1년 만에 교육부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4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기준에 미달하는 8곳의 자사고를 지정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결과를 검토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반려'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관련 기사 : 조희연 "제 모교도 자사고 취소...장관 만나겠다")

자사고의 저승사자에서 수호천사로 돌변한 교육부

자사고의 면접선발권까지 박탈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교육부가 어느새 자사고 지킴이가 되어 진보교육감 발목잡기에 혈안이 됐다. 체통도 위신도 다 집어던진 듯한 모양새가 교육부 스스로 생각해도 낯 뜨겁지 않을까? 한 나라의 교육부라면 진영논리와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철저하게 교육적 안목에서 교육의 논리로 교육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말처럼 추태에 가까운 교육 행정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다지만 S극에서 N극으로 180도 돌변한 것은 과하다. 이러한 변화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학생들 보기 창피하고 부끄럽다.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운영 성과 종합평가를 한 결과 올해 평가 대상 14개 학교 중 8개 학교가 기준 점수인 70점(100점 만점)에 미달해,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학교에 통보한 뒤 4일 해당학교 이름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지난 1일 밝혔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은 "나머지 6개 학교에 대해서도 2016년 신입생 모집 때부터 성적 제한 없이 모두 추첨 방식으로 선발토록 할 방침"이라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교육부는 즉각 서울시교육청의 종합평가에 대해 수용 불가 방침을 밝혔다. 또 '장관 사전 동의 시행령 입법 예고'라는 무리수까지 두었고, 더 나아가 성적제한 없이 100% 추첨으로 신입생을 뽑도록 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전형방법에 대해서도 재량권 남용 소지가 있다며 제동을 거는 등 초강수를 두고 있다.

알면서도 '꼼수' 행정을 하는 교육부

그러나 정진후 정의당 국회의원실에 의하면, 지난 2010년 6월 29일 만들어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91조 3은 "자사고는 5년 이내로 지정·운영하고, 시·도 규칙으로 연장 여부를 정한다"고 규정한다. 자사고의 연장 여부는 분명 교육감의 소관사항이었다.

그러나 1년 뒤인 2011년 6월 7일 이 조항은 '연장 여부'라는 말이 삭제됐다. 대신 "지정 목적의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고 바뀌었으며, 현재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는 "자사고를 취소할 때는 미리 장관과 협의한다"는 조항을 추가로 넣었다. 이 정도면 행정부의 입법 권한을 남용한 '꼼수' 행정이요, 더 나아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주호 전 장관은 진보교육감 발목 잡는 일에 주력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송에서 패소했다. 교육부가 지난 4년간 시·도 교육청에 내린 명령 등 처분은 모두 21건이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기간 안전행정부의 명령은 0건이다.

지방자치를 인정하고 존중했던 안행부와 달리 교육 자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교육부의 인식과 태도가 엿보인다. 교육 자치를 식민지화해서 손에 넣고 통제하려는 의도라 의심할 만하다. 작금의 교육부 행태를 보면 당시의 '진보 교육감 발목잡기'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만 같다.

문용린 전 교육감이 이중 삼중의 표적감사, 흠집 내기 평가 등으로 혁신학교를 탄압할 때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던 교육부다. 조희연 교육감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자사고 일부를 지정 취소하겠다고 나서니, 이번에는 법을 바꿔서라도 자사고 지정 취소를 막겠다고 한다.

실제로 교육부는 자사고를 지정 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의 사전 '협의'에서, '동의'를 받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바꾸겠다고 지난 1일 밝혔다. 그러나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교육부 스스로 현행법대로 하면 자사고 취소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다. 교육부 장관의 권한이 확실하다면 왜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하겠는가? 교육부가 마음이 급한 나머지 자승자박, 모순을 저지르고 말았다.

교육부가 입법 예고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은 교육자치를 중대하게 훼손하는 위헌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왜냐하면 자사고 취소가 국가사무라면 기존 시행령에 위배되는 것이고, 지방사무라면 교육 자치를 훼손하는 위헌적 발상이기 때문이다.

또 교육부는 지난 2일, 자사고의 입시전형 방식을 2015학년도 '추첨+면접'에서 2016학년도부터 '100% 추첨' 방식으로 바꾸려는 시교육청의 방안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100% 추첨을 통한 신입생 선발 방식은 지난해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이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을 하나로 도입 추진했던 것이다. 당시 "우수학생 선발권을 없애는 것은 자사고를 고사시키는 것"이라는 자사고 측의 반발에 밀려 시행되지 못한 바 있다.

교육부가 나서서 추진했다가 이루지 못한 내용을 교육감이 해주겠다면 오히려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은가. 그러지는 못할망정 비신사적, 비교육적 대응으로 선발 방식 변경의 장애물, 걸림돌 역할을 하는 교육부가 참으로 안타깝다.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3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반대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면담을 요구 집회에서 자사고교장협의회 회장 김용복 배재고 교장이 발언을하고 있다.
▲ 발언하는 자사고교장협의회 김용복 회장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3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폐지반대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면담을 요구 집회에서 자사고교장협의회 회장 김용복 배재고 교장이 발언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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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 존중하는 통 큰 교육부로 거듭나야

동의 없이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지정 취소를 강행할 경우, 교육부는 지방자치법에 따른 시정명령을 내리겠다며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재평가에 대해 법적 검토를 마쳤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법적 자문 결과 취소 권한은 분명히 교육감에게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교육부가 끝까지 지정 취소를 막을 경우 법적 소송도 강행할 방침이다. 결국 교육부의 몽니와 옹고집으로 소송전이 벌어지면 국민혈세가 낭비될 테다. 교육부는 십중팔구 패소하여 망신을 당할 것이며, 무엇보다 학교 현장의 혼란과 학생들의 피해가 클 것이다. 이렇게 불을 보듯 결과가 자명한데 교육부는 그럼에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려는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8월 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8월 7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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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황우여 장관이 들어선 교육부는 교육과 영혼이 있는 교육부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염두에 둔 교육논리가 작동하는 교육부이기를 소원한다. '지방 교육 자치'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및 지역교육의 특수성을 보장하려는 풀뿌리 교육민주주의다. 

서울시민은 스스로의 의사와 선택에 따라 서울지역의 교육·학예에 관한 사무의 자치권과 행정권을 서울시교육감에게 위임했다. 안행부가 17개 지자체 장과 기관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처럼 교육부도 17개 교육감과 교육청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반쪽 교육자치'나 '무늬만 교육자치'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다.

교육부가 정작 목소리 높여 추상같이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지난 해에 엉터리로 자사고를 감사한 시도교육청을 문책해야 한다. 심각하게 설립 취지를 위반하고 위법·탈법을 자행한 자사고, 특목고 등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재감사에 착수해야 한다.  

교육부는 지난 2013년 10월 23일, 17개 시·도 교육청이 전국 자사고·외고·국제고 등 75교에 대한 최근 3년 간(2011~2013학년도) 입시 및 전·편입학 전형에 대해 자체 감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감사는 영훈 국제중 등 입시비리가 사회적 논란이 된 바,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입학 및 전·편입학 전형 등 운영실태 조사를 통해 입시제도 부실운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시행됐다. 이를 바탕으로 제도개선책을 도출하여 교육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구축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입시전형에 대한 감사 결과, 총 조사 대상 학교의 60%가 위반을 했고 형법상 범죄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있는 위반사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경미한 처분에 그쳤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시민단체까지 나서 교육부의 재감사를 요구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서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책임행정 차원에서라도 즉각 철저한 재감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형태 시민기자는 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기사는 <국민 TV>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사고,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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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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